[뒤끝작렬]'힘'과 '평화'… 조총련·조선학교엔 뭐가 먼저일까

13특수임무여단의 훈련 모습. 육군 제공

지난 13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북한 공작원으로 추정되는 인물에게 비트코인을 받고 군사기밀을 팔아넘긴 혐의를 받는 육군 특수전사령부 13특수임무여단 소속 김모 대위의 2심 선고공판에선 '적(敵) 인물·장비 식별 평가'라는 문건이 거론됐다.

피고인 측은 그 내용이 통일부 공개 자료나 언론 기사 등에도 나오니 군사기밀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실이 국방부로부터 제출받은 1심 판결문을 보면 "여단의 전시 임무 수행을 위해 필요한 전시 타격·제거 대상인 인물과 업무 수행에 필요한 장비가 기재돼 있는데, 인물의 경우 사진·이름·직책이 명시돼 있고 여단이 임무 수행 시 제거해야 할 우선순위가 번호로 부여돼 있다"고 한다. 군사기밀에 해당한다는 근거다.

수뇌부를 제거해 지휘체계를 마비시킨다는 '참수작전(decapitation strike)' 개념은 2015년 박근혜 정부 당시 국방부 조상호 군구조개혁추진관이 한 세미나에서 주장하면서 본격적으로 화제가 됐다. 2년 뒤인 2017년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고, 그해 12월 특전사는 13공수특전여단을 13특수임무여단으로 확대개편했다. 실제 '김정은 암살 작전'을 수행하는 707특수임무단 등의 임무를 돕고, 필요에 따라 독자적으로 직접타격(DA)하는 역할을 부여했다.

이 문건이 김 대위에 의해 유출된 것은 2022년 3월. 아직 문재인 정부가 집권하던 때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추진하던 정부였지만 집권 초 '김정은 참수작전부대'를 창설하고, 유사시엔 누구를 먼저 제거해야 할지 "매년 여단의 임무 목표 및 상황 변화 등을 분석·평가하여 작성"했던 셈이다. 그 '번호' 앞자리에 누가 올라와 있을지는 뻔하다.

문재인 정부 시절엔 국방백서가 북한 정권과 북한군을 직접적으로 '적'이라고 하지 않아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군은 당연히 북한군을 적으로 상정하고 이들의 위협에 대비해야 한다. 누군가는 냉전의 유산이자 시대착오적이라 할 수도 있지만, 안보 위협 속에서 평화를 추구하면서도 전쟁을 준비하는 일은 필요하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윤석열 정부가 '힘에 의한 평화'를 외치지만 때로는 '힘'을 내세우고, 때로는 '평화'를 내세울 때가 있는 법이다.

국방부가 전쟁을 준비하고 힘으로 전쟁 발발을 억제한다면, 외교부와 통일부는 전쟁을 할 일이 없게 관계의 흐름을 조율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최근 취재 과정에서 접한, 일본의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조총련)나 조선학교에 대한 태도를 보면 정말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배봉기 할머니가 자신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상세하게 고발한 1977년 조선신보 기사. 일본군 위안부문제연구소 웹진 '결'

조총련은 1945년 광복 이후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은 이들에게 일본 정부가 일괄적으로 부여한 분류인 조선적(朝鮮籍)들이 세웠다. 친북 성향이 짙다. 대법원 판결에 의해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로 취급된다. 하지만 조선학교를 통해 재일교포들에게 민족교육을 하기도 한다. 1975년 일본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첫 폭로한 배봉기 할머니도 조총련 도움을 받았다. 조선학교에 김일성·김정일 초상화가 걸려 있는 등 친북 성향인 점이 문제라 치더라도, 민족교육을 아예 하지 않는 것보단 낫다.

2023년 현재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이 지원하는, 일본 내 한국학교를 모두 합쳐도 도쿄, 오사카(2곳), 교토까지 4곳뿐이다. 반면 조선학교는 60여곳으로 추산된다. 일본 학교에 가면 그러잖아도 우리나라에서 '역사 왜곡'으로 비판하는 일본 교과서로 '일본사'를 배워야 한다. 재일교포 모두가 도쿄, 오사카, 교토에 살 수는 없는 노릇인데 2·3·4·5세들이 우리말·글과 역사를 배우려면 어디에 가야 할까. 국내에서 걸그룹 '레이디스 코드'로 데뷔해 활동하다 작고한 권리세씨도 후쿠시마에서 조선학교를 나왔다.

일본 당국은 2010년부터 추진한 고교 무상화 정책에서 일본인 납치 문제 등을 이유로 대상에서 조선학교를 쏙 뺐다. 이들은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청구했고 그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가 '차별'이다.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은 올해 국정감사에서 영화진흥위원회가 2022년 이 영화 지원에 3200만원을 쓴 점을 문제삼았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애시당초 이런 일이 없게 우리가 신경썼어야 하는 문제 아닐까 싶다. 그만큼 우리 정부는 여태껏 재일교포 문제에 무관심했고 그 틈새를 북한이 파고들었다. 무관심하기만 하면 또 모를까, 이제는 조선학교 지원 시민단체는 물론 배봉기 할머니를 연구하기 위해 조총련 관계자를 접촉하겠다는 개인 연구자의 사전접촉신고까지 봉쇄하고 있다. 영화를 찍으며 수많은 사람들을 만날 텐데 '그 사람들이 조총련 관계자인지 아닌지 소명하라'며 경위서 제출도 요구했다. 조총련 사람들이 소속이나 국적을 써 붙이고 다니지는 않는다.

영화 '차별' 포스터

사실 조선학교와 조총련은 요즘 재정난에 시달린다고 한다. 조선학교가 모두 조총련의 지령을 받는 것도 아니다. 영향력도 줄어들어 조선학교는 물론 조총련 구성원조차도 70% 정도는 한국 국적이라고 한다. 조선적은 국제법상 무국적자로, 본인 의지만 있다면 한국이나 일본 등 국적을 취득할 수 있다. 우리 외교당국도 이들에게 한국 국적 취득을 권하고 있다. 일본에서 살면서도 '일본인'이 아니라 '한국인'을 택한 이들에 대한 배려는 어디 갔을까.

기자는 이번 보도 직후 통일부에 '조선학교 지원이 위법인지' 물었다. 2020년 통일부는 더불어민주당 김홍걸 의원실의 같은 질문에 "해당사항 없음"이라고 답했다. 2023년 12월에 같은 질문을 하자 통일부 당국자는 "조총련과 관련된 기관은 남북교류협력법에 따라 절차가 필요하다"며 "과거에 북한 주민 접촉과 관련해서 교류협력법 절차가 다소 느슨하게 운영된 측면이 있어서 이를 정상화하고 있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3년만에 해석이 달라졌다.

이번엔 외교부에 '조선학교 지원이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위반인지' 물었다. 2020년 외교부는 김홍걸 의원실에 제출한 답변에 "안보리 제재 대상 목록에는 재일조선학교가 포함돼 있지 않지만 결의는 북한 정부 또는 노동당의 지시를 따르거나 통제를 받는 단체에 대한 자금 동결 및 재원 이전 금지 의무를 각 회원국에 부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2023년 12월 같은 질문을 하자 외교부 당국자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위반에 관한 검토는 동 학교 및 지원에 대한 구체적 사실관계에 입각하여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사실 조선학교에 대한 지원을 하는 것 자체만으론 안보리 결의 위반으로 보기 어렵다는 해석이 대체적이다. 제재의 목적을 생각해 보면 결국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 개발을 도울 수 있는지 여부가 핵심일 터.

조선학교가 모두 조총련의 지령을 받는 것도 아닌데다, 설사 몇몇 시민단체 지원이 있다고 쳐도 재정난을 겪는 상황에서 그렇게 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 든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무슨 죄일까. 결국 이는 복잡미묘하고 '법과 원칙'으로 두부 자르듯 할 수 없는 한반도 문제의 속성이 반영된 현실이다.

취재 과정에서 기자와 만난 시민단체, 연구자, 다큐멘터리 감독 등은 공통적으로 "윤석열 정부 이전 보수정권인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도 통일부는 우리들 활동에 매우 협조적이었다"고 털어놨다. 통일부라는 곳 특성상, 가족이 실향민이라는 등 이유로 남북 문제에 사명감과 소명의식을 가진 공무원들이 꽤 많다는 이유가 작용했을 터. 남북교류협력법 또한 1조에 "이 법은 군사분계선 이남지역과 그 이북지역 간의 상호 교류와 협력을 촉진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요즘 한국 문화의 인기로 일본 번화가에 있는 한국 가게들을 보면 여기가 일본이 맞는지 헷갈릴 정도라고 한다. 우리 민족의 피를 이어받은 재일교포 아이들이 한국에 자부심과 호감을 가지기 더없이 좋은 때다. 그런데 이들은 우리나라를 어떻게 생각할까. '할머니 할아버지와 엄마 아빠의 고국'이라고 생각할까, 아니면 '그런 동포들에조차도 무관심한, 나와 상관없는 나라'라고 생각할까.

윤석열 정부는 '재외동포청'까지 만들어 재외동포 문제를 더 신경쓰겠다고 약속했다. 이제 5세에 접어든다는 재일교포들은 정부의 그런 약속을 믿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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