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범 이후 청구한 구속영장이 모두 기각되는 등 수사력 부족 비판을 받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를 정상화하려면 공무원 신분인 참고인의 소환을 강제하는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피의자와 달리 참고인은 수사기관에 출석할 의무가 없다. 고위공무원에 한해 입건할 수 있는 공수처 특성상 하위 공무원이 참고인 소환에 불응할 경우 대응할 방법이 사실상 없는 등 한계점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이근우 가천대 법학과 교수는 15일 대한변협 회관에서 열린 '국가 형사사법제도의 평가 및 개편 방향' 학술대회에서 "암행어사 이몽룡이 몽둥이를 든 나졸을 데리고 변학도 정도야 잡겠지만 왕은 고사하고 정승, 판서를 잡을 수는 없다"며 이같이 밝혔다.
특히 이 교수는 직권남용죄 등 혐의를 수사하는 데 공수처의 한계가 명확히 드러난다고 꼬집었다. 그는 "고위 공무원의 직권남용죄는 외관상으로는 완전히 합법적인 행정 행위로 보인다. 최고위층이 암시를 주면 밑에서 문서화하고 행정 처분까지 이뤄지는 식"이라면서 "이런 권력 관계와 부당한 지시 등 실체를 제일 잘 아는 게 하위직 공무원인데 이들을 수사하지 못하면 윗선 수사도 못한다"고 진단했다.
이어 "한국의 조사·감사제도를 보면 공무원이 감사권에 응할 의무가 있지만 수사 기관에는 출석하지 않더라도 아무런 불이익이 없다"며 "적어도 공수처는 공무원에 한해서 참고인 소환을 명령으로 강제하는 제도가 필요해 보인다"고 강조했다.
이런 현상은 최근 공수처가 '표적감사 의혹'을 수사하는 과정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의 사퇴 압박을 위한 표적 감사를 주도했다는 의혹을 받는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은 공수처의 피의자 소환 요구에 5차례 불응한 뒤 출석했다. 이 과정에서 공수처는 감사원 사무처의 다른 공무원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했지만 대다수가 응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참고인을 강제 소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위헌 소지가 있어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박용철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단순히 참고인이 출석에 응하지 않았다고 해서 형사처벌하거나 불이익을 준다면 여러 형사소송법상 대원칙에 위배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성은 법무법인 동민 변호사는 "공수처의 수사력 부족이 심각한 상황에서 수사권을 확대하는 것은 오남용의 위험만 키울 수 있다"며 "가장 시급한 것은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는 것이고, 그 다음이 수사력 제고"라고 했다.
대한변호사협회와 한국형사소송법학회가 공동 주최한 이날 학술대회에는 김영훈 대한변협 회장과 정웅석 한국형사소송법학회장, 이완규 법제처장, 이노공 법무부 차관, 박종민 국민권익위 부위원장 등이 참석해 축사를 했다.
이 처장은 "2020년 이후 수사권 조정과 검찰 개혁이란 명목 하에 건물의 서까래와 기둥 역할을 하는 법안들을 충분한 논의 없이 만들었다"며 "결과적으로 여러 부작용이 드러나는 결과로 이어졌다. 현 정부가 시행령 개정 등으로 부작용을 바로잡고 있지만 역부족이라 법 개정 등을 통해 구조적 문제를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