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증원 추진에 반대하며 세력을 총집결 중이었던 대한의사협회(의협) 내부의 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대정부 투쟁 일환으로 총파업 찬반 투표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의협 범의료계대책특별위원회(범대위) 투쟁위원장을 맡았던 최대집 전 의협회장이 사퇴한 것이다.
의협은 14일 오전 최 전 회장 명의로 기자들에게 보낸 문자를 통해 "의협 '대한민국 의료붕괴 저지를 위한 범대위' 투쟁위원장 직의 사임을 표한다"고 밝혔다. 지난 11일부터 협회 전 회원을 대상으로 총파업 찬반 투표를 실시하고 있는 중에 범대위 2인자가 물러난 것이다.
앞서 최 전 회장은 의대 정원 확대 관련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본격화되는 국면에 전면 등판했다.
지난달 21일 정부가 전국 40개 의대를 대상으로 실시한 수요조사 결과를 발표하자, 의협은 같은 달 29일 상임이사회에서 이필수 현 의협 회장을 위원장, 최 전 회장을 수석부위원장 겸 투쟁위원장으로 세우는 범대위를 꾸렸다.
최 전 회장은 이달 6일 범대위가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철야 시위를 벌일 당시 삭발을 단행하며 "어떤 이유를 갖다 붙여도 (의대 증원을) 절대 수용할 수 없다. 전문가적 양심에 따라 투쟁해 잘못된 정책을 저지할 것"이라고 전의를 불태웠다.
오는 17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전국의사 총궐기대회가 예정된 상황에서 최 전 회장의 사임이 갑작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다만, 의료계 내부에서는 어느 정도 예견된 수순이었다는 시각도 있다.
지난 2020년 코로나19 유행 당시 의료계 총파업을 이끌었던 최 전 회장이 주축이 돼 체결한 '9·4 의·정 합의'에 반발하며 그와 반목했던 세력이 상당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대한전공의협의회와 의대생 등은 합의 과정에서 젊은 의사들의 의견이 배제됐다며 절차상 문제를 비판하기도 했다.
실제로 이번 범대위 구성 초반부터 최 전 회장을 반대하는 움직임이 불거졌다.
미래를 생각하는 의사모임은 최 전 회장이 투쟁위원장으로 선임되자 성명을 내고 "지금 의료계가 하나로 일치단결해야 하는 순간에 최 전 회장을 불러온 것은 내부 분열을 조장하는 행위와 다를 바 없다"고 집행부를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미래의료포럼도 "최 전 회장은 2020년 9·4 졸속 합의로 수많은 의사와 의대생에게 큰 고통과 패배감을 안긴 장본인"이라며 범대위에서 그를 배제할 것을 주장했다.
서울시의사회와 경기도의사회 등도 가세했다.
서울시의사회는 "지난 투쟁에서 물의를 야기한 최 전 회장을 투쟁위원장으로 임명한 데에 회원들의 질타가 끊이지 않고 있다"며 최 전 회장이 의대 정원 사안과 무관하게 '정부 때리기'에 치우쳐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경기도의사회도 "의협 집행부가 뒤늦게 투쟁하겠다고 나서면서 3년 전 투쟁 선봉에 섰던 젊은 의사와 의대생을 배신한 최 전 회장을 선임하는 등 의료계 단합을 해치는 인선을 하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일각에서는 이번에 가시화된 의료계 내홍으로, 향후 의대 정원 확대를 둘러싼 의협의 투쟁 동력이 약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공석이 된 범대위 투쟁위원장직은 위원장인 이 회장이 겸임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