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를 국빈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삼성전자 이재용, SK 최태원 회장과 함께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핵심 장비 기업인 'ASML'을 찾았다. 빌럼-알렉산더르 네덜란드 국왕도 동행했다.
'ASML'은 얇은 판에 반도체 회로를 새기는 노광(露光)장비를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생산하는 기업으로, 우리 기업의 핵심 협력대상이다.
윤 대통령이 해외순방 중 현지 기업을 방문한 것은 처음이다. 특히 윤 대통령은 이날 알렉산더르 국왕, 이재용·최태원 회장과 함께 ASML의 반도체 핵심 공정인 '클린룸'을 시찰했다.
ASML가 외국 정상으로는 처음으로 윤 대통령에게 '클린룸'을 공개해 우리나라와의 협력 의지를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과 알렉산더르 국왕은 동반 방문을 기념하는 문구가 새겨진 반도체 웨이퍼에 서명했다. ASML은 양국 협력을 상징하는 서명된 웨이퍼를 본사 클린룸에 전시한다.
윤 대통령은 ASML 본사에서 열린 기업인 간담회에서 "한국과 네덜란드 반도체 동맹이 더욱 굳건해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한·네덜란드 기업의 반도체 협력 프로젝트 성공을 위해 양국 정부 간 직접 소통을 강화하고 필요한 모든 지원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ASML 측에 "오늘 방문은 제 해외 순방 중 첫 번째 기업 방문"이라며 "한국 기업들과 긴밀히 협력해 반도체 혁신과 글로벌 공급망 안정화 노력에 기여해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또 "오늘 이뤄지는 ASML과 삼성·SK하이닉스 간 투자 협력에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며 "ASML과 삼성은 향후 1조 원을 투자해 반도체 연구개발(R&D) 센터를 한국에 건설하고, SK하이닉스는 생산 과정에서 전력 소비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수소 자원 친환경 공정을 함께 개발하기로 했다"고 소개했다.
이와 함께 "내년 2월에 ASML 주도로 한·네덜란드 대학원생 엔지니어가 함께 참여하는 첨단 반도체 아카데미가 개설되는데, 양국이 함께 인재를 키워낸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알렉산더르 국왕과 이재용·최태원 회장 등 우리 기업 인사와 피터 베닝크 ASML 최고경영자(CEO), 벤자민 로 ASM CEO 등 네덜란드 측 기업인들이 참석했다.
윤 대통령의 이번 국빈 방문을 계기로 양국 정부와 기업은 3건의 반도체 분야 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먼저 양국 정부는 최첨단 반도체 생산장비를 활용해 양국 대학원생에게 현장 학습 기회를 제공하는 '한-네덜란드 첨단반도체 아카데미'를 신설하기로 했다.
또 삼성전자와 ASML은 1조 원을 투자해, '차세대 반도체 제조 기술 연구개발센터'를 국내에 짓기로 했다.
SK하이닉스는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내 수소를 재활용하고 전력 사용량도 줄이는 기술을 ASML과 개발하기로 합의했다. EUV 장비 1대당 전력 사용량을 20% 감축하고, 연간 165억원의 비용 절감 효과가 기대된다고 대통령실은 설명했다.
윤 대통령이 수도 암스테르담에서 왕복 4시간 거리의 펠트호번에 위치한'ASML' 본사를 찾은 것은 반도체가 이제 더 이상 기술 부품이 아닌 안보 자산이자 전략자산이 됐기 때문이라는 의미다.
대통령실 박춘섭 경제수석은 전날 현지 브리핑에서 "이번 순방은 한마디로 '반도체 순방'"이라며 "인공지능(AI)·양자·바이오뿐 아니라 첨단 무기까지도 반도체 성능에 의해 좌우된다"고 설명했다.
앞서 윤 대통령은 11일 네덜란드로 향하던 전용기 안에서도 참모들과 반도체 전략회의를 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약 2시간 동안 이어진 회의에서 반도체 관련 논의가 절반 이상이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13일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도 반도체 협력에 대한 논의를 이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