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의원들이 '김기현 사퇴' 문제를 놓고 갈라졌다. 서병수(5선)‧하태경(3선) 의원이 지난 주말 사퇴론에 불을 지폈다면 영남권 초선 의원들을 중심으로 '김기현 체제 존속'에 방점을 찍고 사퇴론에 반발했다.
흥미로운 지점은 김 대표 측에 선 의원들 상당수가 이른바 '친윤(親尹‧친윤석열)' 성향으로 분류돼왔던 인사들이라는 점이다. 김 대표가 지난 전당대회에서 '윤심(尹心‧윤 대통령의 의중)'을 등에 업고 당선된 데 역할을 했던 의원들과 지도부 구성원들이 편을 들고 나섰다.
김 대표를 정리해야 한다는 의견이 비단 '비윤(非尹‧비윤석열)' 혹은 '반윤(反尹)' 인사들만의 주장이 아니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제 '친윤'이라는 계파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묘한 지적이 당내에서 흘러나온다.
한때 '친윤'을 대변했던 의원들이 정작 공천 문제에 봉착하자, 김 대표에게 줄을 섰다는 얘기다. 김 대표가 혁신위원회와의 '용퇴' 논박에서 판정승을 거뒀듯이 공천 국면에서 주도권을 쥐어간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이른바 '김건희 여사 특검' 법안의 국회 처리와 용산의 거부권 행사, 거부권을 재의하는 과정에서 당에 협조를 받아야 하는 윤 대통령의 난감한 사정이 깔려 있다.
김기현 '사퇴론' 일축…"혁신위 의견, 현실 정치에 적용 어려워"
김 대표는 1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현실 정치에 그대로 적용하기에 까다로운 의견이 있지만, 방향성과 본질적 취지에 적극 공감한다"고 혁신위 활동 종료에 맞춘 소회를 밝혔다. 그는 "혁신위의 소중한 결과물이 당헌‧당규에 따라 조만간 구성 예정인 공천관리위원회를 포함한 당 여러 공식 기구에도 질서 있게 반영되고 추진될 수 있도록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혁신위는 이날 최고위에 최종 보고를 마치고 공식 해산했다. '대통령과 가까운', '지도부', '중진의원' 등의 인사들에게 불출마 혹은 험지 출마 등 '용퇴'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결과다. 김 대표의 발언은 이 같은 결과를 재확인한 발언이다.
최고위회의에서는 김 대표 체제를 존속시켜야 한다는 발언이 이어졌다.
김석기 최고위원은 "정말 김 대표가 당장 물러나는 것이 총선에서 이기는 길인가"라고 되물은 뒤 "김 대표가 물러나면 누가 당 대표가 돼야 누가 총선에서 이긴다는 건가. 대안 없는 지도부 흔들기를 멈춰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이어 "(총선에서) 이기는 길은 김 대표가 당장 물러나는 게 답이 아니고 결국 지금부터 시작되는 공천을 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가람 최고위원도 "당 대표가 물러나는 것에 어떤 대안 있느냐"며 "혁신위가 바란 것은 자발적 희생. 본인들의 희생 없이 당 대표를 밀치려는 것에서 무슨 혁신이 있느냐"고 거들었다.
두 사람의 작심 발언에 앞서 하태경, 서병수 의원 등은 "불출마가 아니라 당 대표가 사퇴가 혁신"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지도부 및 영남권 초선들 '김기현 옹호'…"퇴출 대상자의 적반하장"
앞서 국민의힘 의원들의 SNS 단체 대화방에는 좀 더 노골적인 김 대표 옹호, 사퇴론 주장자에 대한 험담 등이 오갔다.
복수의 국민의힘 의원들에 따르면 초선인 태영호(서울 강남갑), 강민국(경남 진주을), 최춘식(경기 포천가평), 전봉민(부산 수영), 박성민(울산 중), 윤두현(경북 경산), 양금희(대구 북갑) 등 의원들은 하태경, 서병수 의원 등을 향해 "지도부 흔들기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을 김 대표 사퇴를 주장한 두 의원을 겨냥해 "자살특공대가 불난 집에 부채질한다", "퇴출 대상자가 적반하장" 등의 발언으로 비난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전날에도 대구 초선인 김승수(북을) 의원이 같은 방에서 두 중진 의원을 향해 "도를 넘는 내부 총질에 황당할 따름"이라고 공격했었다.
초선 의원들의 집단 움직임에 비판적인 다른 의원들은 "수도권 선거가 그리 어렵나"라는 등의 글을 올려 우회적으로 지도부를 비판했을 뿐 적극적으로 반대 의견을 개진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지켜본 한 의원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비단 단체 대화방뿐 아니라, 의원 총회를 열어도 이들 초선들이 똘똘 뭉쳐 의제를 장악하는 바람에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없는 분위기"라며 "이제 우리 당은 운명을 다한 것 같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