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피해를 주장한 교수에 대해 영남대가 명예훼손을 이유로 해임 징계위원회를 열 예정인 가운데 지역 시민단체 등이 이를 규탄하고 나섰다.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이하 여성단체연합)은 11일 오전 영남대학교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영남대의 성폭력 피해자 해임 시도를 규탄했다.
여성단체연합은 "학내 성폭력과 성희롱을 예방하고 피해자를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는 영남대가 '성폭력 역고소'로 더욱 고통스러운 피해자를 해임하겠다고 한다"며 "피해자 해임을 즉각 철회하고 피해자 보호 조치를 실시하라"고 촉구했다.
이 단체와 영남대에 따르면 영남대는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성폭력 피해와 대학 측의 은폐를 주장한 피해자를 대상으로 학교와 관리자의 명예훼손을 이유로 징계위를 열 예정이다.
앞서 피해자는 지난 2021년 5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동료 교수에게 성폭행을 당했고 대학이 사건을 은폐하려 한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이에 관리책임자인 센터장 A 교수가 피해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고 최근 대법원에서 피해자의 벌금형이 확정됐다.
이 판결에 따라 영남대는 오는 13일 피해자에 대한 해임 징계위원회를 열 계획이다.
그러나 여성단체연합은 영남대가 해임의 근거로 들고 있는 판결이 '직장 내 성폭력 사건 피해 호소'라는 내용이 아닌 형법 307조 명예훼손 여부만 따진 판결이라고 지적했다.
이 단체는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를 고소해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했다고 해서 피해 사실 자체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라며 "피해자가 허위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폭행 또는 협박으로 항거가 현저하게 불가능할 때만 성폭력 범죄 성립을 인정한 최협의설이 현재 폐기됐지만 영남대 성폭력 사건은 그 이전에 사법부의 판단이 내려져 피해자의 피해가 성범죄로 인정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여성단체연합은 "성폭력과 성희롱의 판단 기준과 처리 내용은 다르며 사법적으로 무죄라 하더라도 조직 내에서 기관장은 피해자 보호 등 주어진 책무를 다해야 한다"며 "영남대는 지금까지 행위자에 대해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이제서야 피해자 징계 절차와 함께 행위자 징계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이 단체는 법적으로 성폭력 피해를 인정받지 못하면 피해를 호소한 사람을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피해자로 보지 않고 해임까지 해도 되는지에 관한 문제를 제기했다.
이 단체는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양립지원에 관한 법률, 성폭력방지법에서는 피해자와 신고인에 대해 불이익 조치를 할 수 없도록 금지하고 있고 최근 피해자가 민사 소송에서 배상 판결로 일부 승소했다"며 "현행 법제도의 내용이나 사법적 판단를 볼 때 영남대 성희롱 피해자는 피해자임이 분명하다"고 밝혔다.
이어 "영남대가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피해자를 해임하는 것은 법률 위반이며 만약 해임한다면 영남대는 법적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며 "지금이라도 영남대는 직장 내 성희롱 사건에 대한 법제도를 다시 검토해 기본적인 조치를 취하고 2차 피해에 대한 조사도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영남대는 "관련 법과 규정에 따라 징계 절차가 적법하게 진행되고 있다"며 "이번 징계 건은 대법원 판결 결과를 기반으로 무고한 동료 교원과 대학에 대해 허위사실을 유포한 명예훼손 건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성폭력과 관련된 사안이 아니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