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한국에서 '아이패드 에어 5세대'를 구매해 가족에게 선물한 차종민(48)씨. 그런데 차씨의 아내는 지난 10월 중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프의 한 공식 애플 서비스센터를 찾았다가 '문전박대'를 당했다. 당시 말레이시아의 직원은 차씨 아내에게 '제품을 구매한 한국에서 수리받아야 한다'고 통보했다.
차씨가 경기 용인시 'A-STORE 이마트 죽전점'에서 아이패드를 구매할 때만 해도 '말레이시아에서도 아이패드를 수리받을 수 있다'고 수차례 안내했던 말과는 정반대였다. 심지어 차씨는 해외 어디에서나 수리받을 수 있다는 안내만 믿고 약 20만 원을 추가로 내고 애플의 제품 수리 보험인 '애플케어 플러스'에도 가입한 상태였다.
문제의 아이패드를 한국에 보내 수리받는 일도 쉽지 않았다. 아이패드는 배터리가 내장된 제품이라 국제 발송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한국 AS센터에 환불 여부를 문의했지만, "당연히 말레이시아에서 고쳐야 한다. 싱가포르에 있는 헤드쿼터에 문의하라"면서도 "(헤드쿼터) 연락처는 알아서 찾으라"는 무책임한 답변만 받았다.
결국 차씨는 한국에 귀국하는 지인을 수소문한 끝에 수리받을 수 있었다. 한국의 애플 공식 서비스센터에서도 "말레이시아에서 무상 수리가 가능한데 잘못 안내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애플코리아의 공식입장은 이러한 현장 안내와 180도 달랐다.
국경을 넘어 해외에서도 애플 공식 서비스센터의 '부실 애프터서비스(AS)'가 선을 넘었다. '글로벌 기업'이라는 위상에 걸맞지 않은 애플의 '월드 워런티' 정책으로 해외 서비스센터로부터 한국 소비자들은 영문도 모른 채 정품 아이패드 수리를 거부당하고 있다.
'월드 워런티'는 글로벌 기업에서 생산된 제품에 대해 전세계 어디서든 동일한 AS를 받도록 하는 제도를 말한다. LG전자, 삼성전자 등 국내 업체는 전 세계 대부분 지역에서 최소 1년간 AS를 보장하기도 한다.
CBS노컷뉴스가 애플코리아 고객센터 측에 차씨의 사례를 토대로 문의해보니, 애초에 한국에서 '애플케어플러스'를 구매했더라도 말레이시아에서는 수리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었다. 센터 측은 "애플 스토어가 없다면 애플케어를 적용받지 못한다"며 "말레이시아 같은 경우는 애플스토어 등이 있는지 확인되지 않았다"고만 설명했다.
실제로 말레이시아에는 애플 직영 판매처인 애플스토어가 없다. 고객센터의 공식 설명이 맞다면, 애초에 해외 수리가 불가능한 제품인데도 '수리받을 수 있다'고 거짓으로 안내하며 제품을 팔아치웠을 뿐 아니라, 차씨로서는 아무짝에 쓸모도 없는 '애플케어'까지 가입하며 헛돈만 날린 셈이다.
그렇다면 이런 일이 차씨만 겪은 예외적인 상황일까. CBS노컷뉴스 취재진이 서울의 한 판매 대리점을 통해 상담을 받아보았지만, 똑같은 안내를 받았다.
이곳에서도 기자에게 "해외에서도 애플 스토어를 방문해 제품을 수리받을 수 있다. 만약에 해외에서 수리를 받지 못할까봐 걱정되면 '애플케어'에 가입하면 된다"며 "(애플 케어는) 월드 워런티라서 2년 동안 전 세계에 있는 애플 스토어 어디서든 (수리가) 가능하다"고 안내했다. 하지만 수리받을 수 있는 나라가 몇 곳이고, 수리받을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도 언급이 없었다.
쉽게 말해, 아이패드에 대한 월드 워런티는 '애플 스토어'가 없는 국가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애플은 자신들의 정책을 부풀려 홍보했을 뿐 제한 조건은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 있다.
애플케어를 안내하는 공식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대부분의 세계 주요 대도시에서 당일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내용은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정작 구체적으로 어떤 국가에서 애플케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홈페이지에서 '아이패드에 대한 애플케어플러스 이용약관'을 따로 내려 받아보니, 문서 끝부분 하단에 작은 글씨로 '본 플랜(애플케어)은 대한민국에서만 제공되며 유효하다. 이 플랜은 국가 및 지역에 따라 제공되지 않을 수도 있으며, 법으로 금지된 곳에서는 이용할 수 없다'고 적혀 있을 뿐이었다.
아이패드처럼 소비자기 직접 수리하기 어려운 제품일수록 제조사가 애프터서비스를 철저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문제는 애플이 '배짱 영업'을 되풀이해 소비자들이 겪게 되는 불편이 심각하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한 IT기기 제조기업 관계자는 CBS노컷뉴스 통화에서 "국내에서 안 쓰는 제품이 있을 수도 있고, 해외에서 기능이나 부품이 없을 수도 있지만 가전제품 같은 기기는 일반인이 고치기 쉽지 않아서 최대한 서비스가 많이 제공돼야 한다"며 "해외에서 사온 물건의 제품 같은 경우에는 더욱 차별화된 서비스를 받는다고 (소비자들에게) 안내해준다"고 애플의 대응은 업계에 통용되는 상식 밖이라고 전했다.
전문가들도 애플의 사내 규정에 관계없이, 제품 판매나 민원 응대 과정에서 소비자들의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인천대학교 이은희 소비자학과 교수는 "전 세계 소비자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서비스 센터 수를 늘릴 필요가 있고, 이용약관에도 책임 회피적인 조항을 넣을 게 아니라 소비자 피해를 예방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예방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애플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로열티가 상당하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처리나 대응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며 "제품에 대한 맹족적은 로열티가 결국 기업이 소비자를 함부로 취급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