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숨진 비정규직 노동자 고(故) 김용균씨 5주기를 맞아, 시민사회가 대법원의 판결을 규탄하는 동시에 중대재해처벌법 유예를 반대하고 나섰다.
김용균 5주기 추모위원회(추모위)는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에서 '김용균 5주기 추모대회'를 열고 "사법부의 잘못된 판결이, 기업의 이윤을 위해 죽음을 허락하는 정부 여당의 태도가 우리 사회를 망가뜨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서부발전의 하청업체인 한국발전기술 소속으로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던 비정규직 노동자 24살 김용균씨는 2018년 12월 11일 오전 3시 20분쯤 석탄 운송용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채 발견됐다.
김씨의 사망은 이른바 '김용균법'(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으로 이어졌다. '위험의 외주화' 방지를 비롯해 산업 현장의 안전규제를 대폭 강화하고 중대한 산업재해가 발생할 경우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를 처벌하도록 한 것이다.
다만 상시 근로자 50인 미만 사업장과 공사금액 50억 원 미만의 건설 현장에 대해서는 유예기간을 두고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하지 않다가 다음 달 27일부터 적용할 예정이었다.
이처럼 김씨의 죽음은 노동자의 안전과 생명에 대한 사회의 무관심에 경각심을 일깨우는 소중한 계기였지만, 5년이 지난 지금 중대재해를 막기 위한 노력은 후퇴를 거듭하고 있다는 것이 집회 참가자들의 지적이다.
지난 3일 정부와 대통령실, 국민의힘은 중대재해처벌법 유예기간을 2년 더 연장하는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 지난 7일 대법원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업무상과실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김병숙 전 한국서부발전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날 추모대회에서 김씨의 어머니인 김미숙 김용균재단 대표는 "아들을 죽인 회사가 어떻게 무죄일 수 있나, 어느 누가 이 부당함을 그대로 인정할 수 있겠나"면서 "대법원은 잘못된 판결로 우리의 피나는 노력을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들었다"고 외쳤다.
김 대표는 또 "대법원의 판결을 절대로 인정할 수 없다"면서 "법원은 우리가 가는 길을 결코 막을 수 없고, 이 기막힌 세상을 정의롭게 바꾸기 위해 우리가 막힌 길을 뚫고 열어가자"고 소리를 높였다.
권영국 중대재해전문가넷 공동대표는 "고용노동부가 매년 발표하는 산재현황에 따르면 중대재해의 80% 이상이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하고 있고,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사고로만 매일 2명씩 죽어가고 있다"면서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 법 적용을 유예하겠다는 것은 그동안 중대재해를 줄이겠다던 정부와 정치권의 약속이 입 발린 소리요, 국민을 기망한 말장난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중대재해법 시행이 미뤄지면 우리 사회와 기업들에게 안전 문제에 대해 엄격하지 않아도 된다는 신호를 줄 수 있다"면서 "지금도 중대재해법 사건의 기소 사례들을 보면 대기업들은 거의 대부분 빠져 있다. 검찰이 현재까지 기소한 사건은 전체의 약 7%에 불과하고, 그마저도 법원은 집행유예 솜방망이 처벌로 일관하고 있다"고 밝혔다.
권 대표는 "노동자의 목숨은 모두 하나"라며 "규모를 이유로 법 적용을 하지 않는 것은 인간을 차별하는 반사회적 행위"라면서 중대재해처벌법 유예를 반대했다.
추모대회에 자리한 이들은 '내가 김용균이다'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일하다 죽지 않게 책임자를 처벌하라! 모두가 안전하게 책임자를 처벌하라!"고 소리 높여 외쳤다.
이날 추모위는 "산업재해와 시민재해는 같은 이유의 참사이고 재난"이라며 서울시청 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분향소를 향한 행진에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