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터뷰]심재명 대표와 명필름이 세상을 그리는 법

영화 '싱글 인 서울' 제작사 명필름 심재명 대표. 박종민 기자
※ 스포일러 주의
 
PC통신을 소재로 사랑을 이야기하며 멜로 영화의 새 역사를 쓴 '접속'(감독 장윤현), 첫사랑 신드롬을 일으킨 '건축학개론'(감독 이용주), 남북 분단의 비극을 새로운 시각에서 그려내며 평단과 관객 모두를 사로잡은 '공동경비구역 JSA'(감독 박찬욱), 10·26 사건을 소재로 한 블랙 코미디 '그때 그 사람들'(감독 임상수), 2007년 석궁 사건을 토대로 한 '부러진 화살'(감독 정지영), 한국 애니메이션 사상 최고 흥행작 '마당을 나온 암탉' 등 1995년 설립 이후 50여 편에 가까운 영화를 만들어 온 명필름이 걸어온 길은 남다르다.
 
명필름은 로맨스는 물론 장르영화, 독립예술영화, 사회파 영화에 이어 애니메이션으로까지 꾸준하게 다양한 방식으로 세상을 이야기해 왔다. 특히 애니메이션 불모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국내에서 명필름은 다시 한번 애니메이션 제작에 나선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K-콘텐츠' 안에 아직 이름을 올리지 못하고 있는 '애니메이션'이란 장르가 가진 저력이 명필름의 도전을 발판으로 도약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이처럼 명필름은 어려운 시기, 모두가 어렵다고 말하는 길을 주저하지 않고 '명필름'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와 방식으로 돌파해 가고 있다. 심재명 대표는 그것이 명필름의 길이자 '현재'라고 이야기했다.

명필름이 제작 중인 애니메이션 '꼬마' 이미지컷. 명필름 제공

명필름의 애니메이션은 계속된다

 
▷ 축하할 소식이 있다. 얼마 전 명필름에서 제작하는 애니메이션 '꼬마'가 지난해 영화진흥위원회 장편 애니메이션 제작 지원에 이어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장편 애니메이션 제작지원사업에 선정됐다. '꼬마'는 어떻게 시작된 애니메이션인지 살짝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우리가 '마당을 나온 암탉'(감독 오성윤)과 '태일이'(감독 홍준표)를 하고 나니 계속 애니메이션을 제작해야겠다는 욕심이 났다. '태일이'는 코로나19 팬데믹 때 개봉해 성적이 예상보다 낮아 아쉬웠지만,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에서 상(콩트르샹 심사위원특별상)을 받는 등 여러 칭찬과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용기를 얻었다. '태일이'를 제작하면서 한편으로는 '꼬마'도 계속 개발 중이었다.
 
2010년에 서울대공원에서 말레이곰 꼬마가 탈출해 일주일 동안 못 잡은 적이 있다. MBC 뉴스에서 앵커가 "꼬마야! 돌아와라!"고 할 정도였는데, 생포돼서 다시 돌아왔다. 작가님이 그걸 모티프로 삼아서 시나리오를 써서 보내주셨다. 사육사를 엄마로 착각한 꼬마가 엄마를 찾아 떠나는 어드벤쳐인데, 결국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너무 재밌을 거 같아서 오랫동안 시나리오 작업을 하고, 최근에 '태일이'를 만든 홍준표 감독님이 연출을 맡기로 했다. 지금은 한창 프로덕션 중이다.

명필름이 제작한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과 '태일이' 포스터. 롯데엔터테인먼트·리틀빅픽쳐스 제공
 
▷ 어느덧 '마당을 나온 암탉'과 '태일이'에 이어 세 번째 애니메이션이다. 가족 영화와 애니메이션에 대한 관심을 이야기했지만, 녹록하지 않은 국내 시장에서 다시 한번 애니메이션 제작에 나선 것은 대단한 용기로 보인다. '꼬마'를 통해 보여줄 명필름과 국내 애니메이션의 또 다른 새로운 가능성은 무엇일지 궁금해진다.
 
지금도 한국에서 다시 한번 일본 애니메이션 열풍이 일고 있다. 우리나라는 실사 영화가 산업적으로 자리를 굳건히 하고, 성공하고, 'K-콘텐츠'라 말할 만큼 글로벌 경쟁력을 갖고 있다. 그런데 유독 애니메이션에서는 취약한 거 같다. 일본뿐 아니라 미국, 중국도 영화산업 안에서 그 나라 애니메이션이 차지하는 비중이 굉장히 높은데 우리나라만 이례적으로 애니메이션 장르가 취약한 거다. 아직도 '마당을 나온 암탉'의 흥행 성적을 뛰어넘는 애니메이션이 없다.
 
개인적으로 애니메이션을 굉장히 좋아한다.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이 더 많이 만들어지고, 대중적으로도 평가받고 상업적으로도 성공하는 토대와 환경을 마련하는데 명필름에서 만든 애니메이션이 일조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고 또 직접 제작에도 뛰어들었다. '애니메이션'만이 보여줄 수 있는 '마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실사 영화와 달리 마법의 순간을 제공하는 게 애니메이션인 거 같다. 상상하고 꿈꾸는 것을 보여주는, 실사 영화에서는 할 수 없는 지점이 있다. 그런 면에서 마법적인 순간을 온전히 경험하게 해주는 것이야말로 애니메이션이 지닌 장점이다.

명필름이 제작한 영화들의 포스터. 다음영화 제공

영화의 위기 속 명필름이 세상을 이야기하는 방식

 
▷ 팬데믹 이후 영화의 위기가 거듭 이야기되고 있고, 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현재 영화계를 위기라고 부르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미국이나 중국, 프랑스 등 영화 강국들은 팬데믹 이전 규모를 회복했다고 들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극장용 영화, 특히 영화관 매출이 아직도 급감한 상태에서 회복세로 돌아서지 못하고 있다. 굉장히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플랫폼은 물론이고 지상파에서도 많은 영상 콘텐츠가 나오면서 경쟁이 심화된 상황이다. 훨씬 더 적은 비용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누릴 수 있는 환경에서 다시 극장으로 돌아가기에는, 피부에 와 닿는 요금이 굉장히 비싸다고 관객들은 느끼고 있는 것도 같다.
 
나도 이제 30년 가까이 영화를 제작했지만, 이때처럼 위기인 적은 없는 거 같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오징어 게임'처럼 정말 대단한 글로벌 콘텐츠가 나왔다는 건 기회이기도 하다. 이런 걸 보면, 양극화가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상황에서 내년도 영화진흥위원회 예산, 특히나 영화 산업에서 산업의 의미를 떠나 영화의 근간이 되는 독립예술영화에 대한 지원 규모가 많이 줄었다. 그러다 보니 내년에는 더 어려운 지점이 있겠다고 생각한다.
 
▷ 그렇다면 이러한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명필름만의 방안은 어떻게 그리고 있나?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극장에서) 볼만한 영화를 만들면 되지 않느냐고 하는데, 사실 건강한 영화 생태계 조성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거 같다. 그러려면 일단 정부 지원은 물론 공적 차원에서의 정책 마련이라든가 이에 대한 해법을 서로 머리를 맞대고 내놓아야 한다.

명필름이 제작한 개봉 예정 영화 '길위에 김대중'(사진 왼쪽) '해야 할 일'(오른쪽 위) '옆에서 숨만 쉬어도 좋아'(오른쪽 아래) 스틸컷. 명필름 제공

▷ 정말 이렇게 어려운 시기임에도 명필름은 로맨스, 사회파 영화, 애니메이션 등 지금 해야 할 이야기를 여러 다양한 방식으로 하고 있다. 명필름은 앞으로도 어떤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선보이고 싶은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보여주고 싶은지 궁금하다.
 
영화계의 어려움에 대한 고심 차원에서 다양한 시도를 하는 것 같다. 내년 1월에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길위에 김대중'(감독 민환기)은 상영 공간 마련이 어려울 것이라 예측해 텀블벅 펀딩도 진행하고, 특별시사회 신청도 받으면서 많은 관객에게 보여줄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꼬마'도 또 다른 장르를 돌파해 보려는 시도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해야 할 일'(감독 박홍준)처럼 저예산 독립영화로도 헤쳐 나아가고자 한다.
 
여러 어려움을 돌파할 정답이 눈에 구체적으로 와 닿지는 않지만, 우리 나름대로 돌파하기 위해 여러 다양한 시도를 하는 거다. 극장 장편 영화, 대작을 만들어내는 것만이 정답이 아니기도 하고, 그걸 만들어낼 자신이 없기도 하고. (웃음) 그런 측면에서 명필름이 할 수 있는 다양한 시도를 통해 지금의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려고 한다.
 
▷ 명필름이 그리고 있는 2024년 그림에 관해 짧게나마 들어볼 수 있을까?
 
내년에 '길위에 김대중' '해야 할 일' 그리고 김향기 주연 로맨스 '옆에서 숨만 쉬어도 좋아'(감독 고형주) 개봉을 준비하고 있다. '꼬마'는 한창 제작 중이다. '옆에서 숨만 쉬어도 좋아'는 숨쉬고 자고 먹고 싶어서 어렵게 전셋집을 구했는데, 전세 사기를 당하고 고군분투하는 내용이다. 내용은 갑갑한 것 같아도 되게 경쾌하다. (웃음) 이처럼 다양한 영화 개봉을 계획하고 있고, 그게 현재 명필름의 모습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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