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은 있는데 책임은 없다? '원청 무죄' 계속될까

'김용균 사건' 대법 '무죄'…'노동자 안전' 무관심한 대표, 처벌 가능성은 낮다?
중대재해 '솜방망이' 처벌하는 法…중처법·개정 산안법 취지 살릴지 의문
'중처법' 후퇴시키려는 정치권…大法 판결 이후 오히려 강화 필요

대법원이 2018년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발생한 고(故) 김용균씨 사망 사고와 관련해 재판에 넘겨진 김병숙 전 한국서부발전 대표에게 무죄를 확정지은 7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김용균 씨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대표가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황진환 기자

하청 노동자가 산재 사망사고를 당했을지라도 안전 관리 업무를 소홀히 한 원청업체 경영책임자까지 산재 예방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한 중대재해처벌법(김용균법). 그의 죽음으로 세상에 나오게 된 중대재해법의 취지는 정작 그에게는 마지막 재판에서도 구현되지 않았다.
 
이번 판결로 사법부가 중처법이나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의 입법 취지를 무력화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가운데, 이후 산재 사망사고 재판에서도 이러한 형식적인 법리 해석이 반복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전날(7일) 오전,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업무상과실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한국서부발전 김병숙 전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원심 판결에 업무상 주의의무·위반산업안전보건법 위반죄에서의 안전조치 의무 위반, 인과관계에 관한 법리 등을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이유를 밝혔다.
 
이에 대해 노동법 전문가들은 법률 불소급 원칙에 따라 김씨 재판에서 구(舊) 산안법이 적용됐다고 하더라도 법원이 과도하게 소극적인 법리 해석에 그쳤다고 비판했다.
 
쉽게 말해, 법원이 원청업체가 안전 관리 업무를 소홀히 했던 사실은 인정했지만, '도급인(원청) 사업장에서 근무하다가 산업재해를 당한 하청업체 직원에 대한 책임은 수급인(하청)이 진다'는 과거 법리를 형식적으로 따랐다는 주장이다.
대법원이 2018년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발생한 고(故) 김용균씨 사망 사고와 관련해 재판에 넘겨진 김병숙 전 한국서부발전 대표에게 무죄를 확정지은 7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김용균 씨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대표가 기자회견 후 대법원을 향해 외치고 있다. 황진환 기자

김씨 사망 이후 제·개정된 중대재해처벌법과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원청업체의 산재 예방책임 범위가 '도급인(원청) 사업장 전체' 등으로 확대돼 직접 고용 노동자가 아니더라도 원청 사업장 내에서 발생한 산재에 대한 책임을 원청업체 경영책임자가 물을 수 있게 됐다.

문제는 산재에 대한 원청업체의 처벌을 강화하자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지금에서도 사법부가 여전히 산재 사망사고 등 중대산업재해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조차 아닌 무죄 판결을 내렸다는 점이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권영국 변호사는 "원청의 일부 중간관리자 급에서는 업무상 과실치사죄가 일부 인정됐고 하청에서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업무상과실치사 혐의가 일부 인정된 게 있다"며 "문제는 원청 고위 임원이거나 대표이사는 '그러한 위험을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산재 예방책임이 없다'라고 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러한 법리로) 발생하는 문제는 안전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한 대표이사는 책임을 지지 않는 구조가 계속된다는 것"이라며 "오히려 안전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사업장 안전을 도모하려는 대표나 임원들은 위험성을 인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오히려 처벌받게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경영책임자가 자신의 권한을 위임하거나 안전보건관리 체계 구축이 서류상으로만 이뤄지더라도 (법원이) 계속 형식적으로 법을 판단하게 되면 법이 바뀌더라도 '솜방망이 처벌'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사법부가 중처법과 개정 산안법의 입법 취지를 살리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에도 입법부가 입법 보완에 나설 가능성은 요원하다.
 
앞서 상시근로자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 중처법 적용을 유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정부와 국민의힘을 중심으로 나왔다. 여권에서는 중소기업 경영자가 중처법상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하고 이행하는데 비용, 안전관리자 인력 확보 등에서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도 중처법 적용유예와 관련해 '당론이 정해지지 않았다'며 여당과 논의할 가능성을 열어뒀다.
 
고려대학교 김성희 노동대학원 교수는 "사법부의 판례를 바꾸려면 정치권이 입법적 개입을 하는데 (이번 판결이) 정치권에 전향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경종을 울렸다"며 "다만 정치권이 얼마나 무겁게 받아들일지 알 수 없고, 지금 정치권의 흐름은 (중처법의 입법 취지와) 정반대의 흐름으로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현 정부에 대해서도 시행령 등을 통해 (중처법을) 강화해야 할 필요하다는 신호로 볼 수 있지만 (행정부가) 그런 방향으로 움직일지 미지수"라고 덧붙였다.
 
신성장경제연구소 최병천 소장은 "정치권에서 입법적 보안을 논의는 할 수 있겠지만 '노동자의 부주의와 무관하게, 경영책임자의 고의 여부와 무관하게 반드시 처벌해야 된다'라고 입법을 보완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법원의 전향적인 자세를 촉구할 수 있겠지만 말 그대로 정치적인 촉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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