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지 아파트와 대규모 상권의 기대를 품고 신도시에 들어선 건물에 빈 상가들이 늘어나고 있다. 주변에 수천 세대 아파트가 자리 잡았거나, 지하철 역이 있어도 역부족이다.
임대인들은 빚을 내며 상가를 분양받고, 이를 메우기 위해 임대료를 높게 책정한다. 견디지 못한 임차인들은 떠나고, 뒤늦게 임대료를 낮출 때 쯤이면 이미 상권은 침체돼 있다. 들어오려는 임차인은 없고, 어려운 경제사정까지 겹치며 공실은 악순환처럼 이어지고 있다.
위례, 광교, 배곧 등 신도시에도 '불 꺼진 상가'가 늘어나고 있다. 임대인도, 임차인도 마땅한 방안이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대학병원, 레저시설 보고 들어왔지만"…결국 '임대문의'
지난달 28일 경기도 시흥 배곧신도시. 한 주상복합 아파트에 자리 잡은 상가 건물은 중심상권으로 묶이는 곳이지만, 상가 상당수는 텅 비어 있었다. 유리문 곳곳에는 '임대문의' 스티커가 붙었다. 색이 바래거나 말라붙은 스티커에서 상가가 비어있는 기간이 짐작됐다.
이곳은 2019년 준공될 당시만 해도 "강남보다 비싸다"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인근에 서울대병원이 들어서기로 하면서 개발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주변에는 '메디컬'이라는 이름이 붙은 건물까지 생겼고, 분양가도 치솟아 19평 규모 상가가 12억원 상당에 팔렸다. 분양가가 높다 보니 임대료도 함께 올랐다. 보증금 1억원에 월세는 400만원 수준.
하지만 병원 외에는 유동인구가 생길 변수가 없는데다, 병원도 2027년 준공 예정이다 보니 하나 둘 공실이 늘어났다. 현재 상가 전체 160곳 중 공실은 40여곳. 길 건너편에 있는 10층 높이 건물 역시 상가 165곳 중 60여곳이 비어 있다.
기존에 있는 상인들도 걱정이다. 다른 곳으로 옮기고 싶지만, 새로 들어오겠다는 임차인이 없어 나가지 못하고 있다. 상인 김모(57)씨는 "가게를 내놨었는데 아무도 안 들어오려고 해서 우선 계속 하고 있다"며 "주변에 아파트단지가 많긴 한데 상가가 너무 많아서 공실이 늘어나는 거 아닌가 싶다"라고 말했다.
'해양관광 클러스터'를 표방하는 시흥 거북섬 일대 역시 침체돼있기는 마찬가지다. 이곳은 인공서핑장인 '웨이브파크'를 중심으로 상권이 형성됐다. 주변으로 다이빙이나 해양레저 관련 업체들까지 생겼지만, 상가는 대부분 비어있다.
올해 4월 준공된 438개 규모의 한 대형 상가는 공실률이 95%에 달한다. 상가가 운영된 지 7개월이나 지났지만, 이날 광장을 지나다니는 사람이라곤 건물 관계자가 전부였다. 상인도, 손님도 없다 보니 복도 전체 조명이 꺼져있는 구역도 있었다.
한 상인은 "이곳이 해양레포츠 단지로 개발된다고 해서 높은 가격으로 분양을 받았다"며 "하지만 들어오겠다는 임차인이 없어서 우선 내가 들어와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근 공인중개사는 "주변에 아파트단지가 아직 들어서는 중이다 보니 수요에 비해 상가가 과잉공급 됐다"라며 "이곳에 오려면 차량을 이용해야 하는데 교통이 열악하고, 기존에 예정됐던 공원이나 대관람차가 늦어지다 보니 사람들이 굳이 여기까지 올 이유가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위례 역세권도 공실…"상가비율 5%, 너무 많아"
서울 송파구와 경기 성남시를 아우르는 위례 신도시에선 지하철역 앞 상권에서도 빈 상가가 나왔다.
지난달 30일 찾은 지하철 8호선 남위례역. 지하철역 출구 앞으로 주상복합과 오피스텔 건물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다. 길거리에는 시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돌아다녔다.
하지만 바로 앞 주상복합 상가로 들어가자, 1층 상가 11곳 중 6곳이 비어 있었다. 이곳 유리문에도 역시 '임대문의'가 붙었다.
바로 옆 건물도 공실을 피해가진 못했다. 9평 상가 기준 분양가는 7억 5천만원. 임대료는 보증금 2천만원에 월 120만원 선이다. 다른 신도시에 비하면 임대료가 저렴한 편이지만, 역시나 비어 있다.
공인중개사들은 '상가 과잉공급'을 문제로 꼽았다. 인근 공인중개사는 "유동인구보다 상가 비율이 높다 보니 공실이 생기는 것 같다"며 "지역에서 상가가 잘 되려면 상가비율이 2% 수준이어야 하는데, 이곳은 5%정도로 알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주변에 아파트단지도 있고 심지어 지하철역도 있지만 그보다 상가가 더 많으니까 안 되는 것"이라며 "모든 소비가 온라인으로 간 영향도 있는 것 같다"라고 했다.
"한 건물에 상가가 600곳…많아도 너무 많아"
수원 광교 신도시에선 단일 상가에 600곳이 넘는 개별상가가 모여 있다 보니 수년째 공실이 발생하는 곳도 있었다.
지난달 29일 찾은 광교의 한 주상복합 상가. 이곳은 현재 상가 630곳 중 150곳이 공실이다. 유동인구가 많은 1층 일부 구역엔 제법 사람들이 많았지만, 지하 층이나 동선이 먼 곳은 어김없이 비어 있었다.
빈 상가 유리창에는 내부가 보이지 않을 만큼 임대문의를 알리는 스티커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2019년 준공된 이후 수년째 공실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주변에 백화점과 할인마트, 아파트단지와 학교까지 모두 모여있는 곳이지만 공인중개사들은 "상가가 많아도 너무 많다"고 입을 모았다. 한 공인중개사는 "한 건물에 상가가 600곳씩 있는 곳은 찾기 힘들 것"이라며 "그나마 사람들이 다니는 동선에 있는 곳은 임차인이 있지만, 아닌 곳은 몇 년째 그대로 비어있다"라고 설명했다.
높은 임대료도 원인으로 꼽혔다. 20평 규모 상가의 분양가는 15억원 상당. 임대료 역시 함께 올라 보증금 1억5천만원에 월세는 600만원 수준이었다.
또다른 공인중개사는 "월세로 600만원을 내려면 그 이상을 벌어야 수익이 되는 건데 그럴 수 있는 업종이 얼마나 되겠나"라며 "상가가 많기도 너무 많다. 굳이 건물 안 쪽까지 들어갈 손님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 "상가는 '분양상품' 아닌 '운영상품'이 돼야"
신도시에서 공실이 발생하는 데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 수분양자들은 신도시 조성에 대한 기대감으로 높은 가격으로 상가를 매입한다. 이런 수분양자들 상당수는 은행에서 빚을 내서 상가를 매입하는데, 은행 이자를 만회하고 수익까지 올리기 위해 임대료를 높게 책정한다.
수백만 원에 달하는 임대료 부담에 공실은 늘어나고, 임대인들이 뒤늦게 월세를 낮춰도 이미 상권이 죽어서 들어오는 임차인이 없다.
광교, 배곧, 위례 역시 이런 경향을 보였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3분기 전국 집합상가 공실률은 9.4%다. 매년 상가 등 임대동향을 조사하는 한국부동산원 역시 공실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고 짚었다.
한국부동산원 관계자는 "상가 수분양자 대부분은 상가를 살 때 대출을 받아 사는데, 금리까지 고려하다 보니 임대료를 높게 책정할 수밖에 없다"며 "반면 임차인 입장에선 높은 월세를 버티기 어려우니 나가고, 공실이 반복되는 걸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상가를 분양받는 데 그치지 않고 '수익 관리'까지 할 수 있는 매니징 문화가 생겨야 한다고 강조한다. 건국대학교 부동산학과 이현석 교수는 "상가는 '분양상품'이 아니라 '운영상품'이어야 한다"며 "재래시장이 백화점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없는 이유는, 시장은 개별 상인들이 모여만 있지만, 백화점은 매니징 주체가 마케팅부터 운영까지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마찬가지로 수분양자들이나 시행사에서라도 상가운영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상권도 분석하고 업종도 고려할 수 있다"며 "단순히 '상가를 분양받으면 끝'이라는 생각으로 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공실이 발생하는 것이며, 상가를 직접 운영할 수 있는 교육이나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한다"라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