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세관 당국이 한국에 수출하려던 요소 선적을 막아섰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비상이 걸린 지난 4일. 윤석열 대통령은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내정했다.
최 후보자는 지난해 6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에 참석한 자리에서 소위 '탈중국' 발언으로 논란을 빚은바 있다는 점에서 이날 요소 수출 통제 사태와 그의 영전은 묘한 수미상관을 이뤘다.
그는 당시 "지난 20년간 우리가 누려 왔던 중국을 통한 수출 호황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우리가 중국의 대안이 되는 시장이 필요하고 다변화가 이뤄져야하는 실정이다"라고 말했다.
최 후보자의 말을 곱씹어보면 틀린 말도 아니다. 중국이 한국의 수출 전진기지를 넘어서 수출 경쟁국이 된지 오래고, 미국이 추진하는 대중 견제에 한국도 발을 들인 만큼 싫으나 좋으나 시장 다변화는 필요하다.
문제는 중국이 두눈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는 미국과 EU 등 서방진영의 군사동맹 회의에서 탈중국 선언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발언을 할 필요가 있었냐는 것이다.
백번 양보해 이미 엎어진 물이라면 차근차근 실행을 준비해야 하지만 이번에 터진 요소 사태를 지켜보자니 헤어질 결심을 동네방네 떠들어 놓고 실제로는 더 엮여버린 꼴이됐다.
2년 전으로 돌아간 요소 중국 의존도…그동안 뭘했나?
한국은 이미 지난 2021년 말 중국의 수출 통제 조치에 따라 요소수 대란을 겪은 바 있다. 수출 통제 조치 전인 2021년 1~9월까지 중국산 요소 의존도는 97%에 달했기 때문이다.이후 공급선 다변화 요구가 쇄도하며 이듬해인 2022년에 중국산 요소의 비중은 67%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올해들어 다시 중국산 비중이 높아지더니 지난 10월까지 중국산 비중은 91.8%로 다시 2년 전으로 돌아갔다.
2년 전 정부의 무능이 고스란히 드러나 온갖 질타를 받은데다, 그 사이 바뀐 정부는 시장 다변화까지 공언한 마당에 도대체 무엇을 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더 큰 문제는 최근 몇달간 중국의 요소 수출 통제 조치가 임박했다는 경고음이 곳곳에서 감지됐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중국 최대 요소 생산·수출업체인 중눙그룹은 지난 9월 2일 위챗(중국판 카카오톡) 공식 계정을 통해 요소 가격 상승 소식을 전하며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수출량을 줄이겠다"고 공언했다.
당시 외신들도 앞다퉈 이 소식을 전했고, 한국 대부분의 언론사들도 이를 보도하며 요소의 대중국 의존도가 더 커진 상황에서 제2의 요소수 대란을 우려한 바 있다.
이에 산업통상자원부 등 관계부처는 수출이 제한된 품목은 산업용이 아닌 비료용이며, 중국 정부의 공식 조치도 아니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또, 당시 정부가 밝힌 비축량은 60일분 이상이었다.
하지만 3달뒤 중국 당국이 개입된 산업용 요소 수출 제한 조치가 나오자 우리 정부는 허겁지겁 대책회의를 열고 중국 정부에 통관절차 재개를 요구하는 등 호들갑을 떨고 있다.
이번에 정부가 밝힌 요소 비축량은 70일치. 중국외 지역으로부터 수입 예정인 분량까지 합치면 90일까지 버틸 수 있다고 한다. 경고음이 켜진 이후 3달동안 비축량을 그나마 10일치 늘렸다니 잘했다고 박수를 쳐야하나, 한숨만 나오는 대목이다.
요소 사태 잘 넘겨도…중국 의존도 높은 핵심원자재 수두룩
중국 화학비료업계 온라인 플랫폼인 중국화학비료망 홈페이지에 지난 1일 게시된 산업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중농과 중화 등 15개 주요 요소 수출 기업들은 내년도 요소 수출량을 94만 4천 톤으로 제한하기로 했다.올해 1~10월 중국의 요소 수출량이 339만 톤에 이른다는 점을 고려하면 내년에 중국의 요소 수출량이 올해의 1/3 이하로 줄어들 수도 있는 상황이다. 여기다 수출 제한 조치가 내년 1분기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현재 한국의 요소 비축량이 수입 예정량까지 합쳐 90일분이니 사재기 현상만 벌어지지 않는다면 내년 3월 초까지는 버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다 그동안 민간 기업이 뚫어놓은 중국외 수입처가 다수 존재한다고 하니 2년 전과 같은 요소수 대란은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힘겹게 요소 대란을 막더라도 중국 의존도가 높은 주요 원자재가 수두룩 하다는 점에서 앞으로 제2의 요소 대란 같은 사태는 언제든 벌어질 수 있다.
중국은 올해들어 미국에 맞서 첨단 반도체 등에 쓰이는 갈륨과 게르마늄, 그리고 이차전지 핵심 원료인 흑연의 수출을 통제하고 있다. 한국의 갈륨.게르마늄 중국 의존도는 87.6%, 인조흑연은 93.3%에 달한다.
첨단 산업에 쓰이는 또 다른 핵심 원자재인 망간은 95%, 코발트는 73%, 리튬은 67%, 니켈은 63%, 희토류는 79.4%를 중국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중국과 헤어질 결심의 딜레마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