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강등!, 수원 강등!"
지난 2일 경기가 끝난 뒤 수원월드컵경기장 원정석에선 이 같은 구호가 울려 퍼졌다.
수원은 이날 하나원큐 K리그 2023 38라운드 강원FC와 최종전에서 0 대 0으로 비겼다. 같은 시간 수원과 강등 경쟁 중인 수원FC가 제주 유나이티드와 1 대 1로 비기면서 수원은 최하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최종 순위 12위를 기록한 수원은 자동 강등과 함께 내년 시즌을 2부 리그인 K리그2에서 보내게 됐다.
수원 팬들은 특유의 카드섹션과 우산 응원 등 경기가 시작하기 전부터 끝날 때까지 노래를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는 순간부터 침묵에 빠졌다.
원정석에서 들려오는 '강등 구호'를 곧이곧대로 듣고 있어야 하는 굴욕의 순간이었다. 목이 터져라 응원했던 수원 팬들이 왜 조롱을 듣고 있어야 했을까.
투자+성적+응원…최고 인기 구단이었던 '과거' 수원 삼성
수원은 1995년 창단 이후 줄곧 K리그 최고 인기 구단 중 하나로 군림해 왔다. 수원이 선풍적인 인기를 이끈 요인은 비단 선수들의 축구 실력뿐만이 아니었다.
수원 팬들의 응원 문화도 이에 못지않은 큰 역할을 했다. 창단 첫 시즌인 1996시즌을 앞두고 당시 유럽 스타일 응원을 선망해 오던 축구팬들이 신생팀 수원으로 몰려 들었다. '윙즈 팬클럽'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한 수원의 소규모 서포터즈는 한 시즌 만에 몸집을 불렸고, 1999년부턴 '그랑블루'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그랑블루의 응원 방식은 일반인들에게도 충격적일 만큼 눈에 띄었다. 큰 목소리는 물론, 가독성이 좋은 걸개와 각종 퍼포먼스까지 이전까지 한국에선 볼 수 없었던 응원을 선도했다. '프렌테 트리콜로'로 이름을 바꾼 이후에도 수원 서포터즈의 응원은 언제나 최고였다.
모기업의 적극적인 투자가 좋은 성적으로도 이어졌다. 이런 과정을 속에서 수원은 프로스포츠를 범위로 넓히더라도 명실상부 최고 인기 구단으로 발전했다.
투자 어디 가고 응원만 남았나…강등 '굴욕' 떠안은 팬들이 무슨 죄?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투자와 성적은 빠지고 응원만 남았다. 2016년 삼성 산하 스포츠 구단들이 전부 제일 기획으로 편입되면서 수원 삼성은 고꾸라지기 시작했다. 2017시즌 3위를 기록한 것 말고는 '파이널A(상위 스플릿)'면 다행인 수준의 성적을 거듭했다.
염기훈 감독대행은 경기가 끝난 뒤, "많은 문제점이 있었지만, 팀에 대한 투자가 부족했다"며 "투자가 있어야 팀이 좋아지고, 외부 선수들도 들어와야 조화가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제가 처음 수원에 왔을 때와 지금의 수원은 스쿼드에서 큰 차이가 난다. 과거엔 이름 있는 선수들이 많았고, 예산도 많았는데 그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열악하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수원 팬들은 매 시즌 응원석을 가득 채웠다. 팀이 과거의 영광을 되찾길 바라며 끊임없이 응원의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심지어는 지난 시즌 강등의 위기를 겪었는데도, 올 시즌 결집력은 더 강해졌다.
실제로 홈, 원정 경기 모두 수원 응원석 티켓은 구하기도 힘들 정도였다. 최악의 성적이 이어지며 상대팀 팬들에게 '수원 강등'이라는 조롱을 받아 가면서도, 수원 팬들은 악에 받친 듯 노래를 불렀다.
그러나 팀의 성적은 돌아오기는커녕 퇴보했다. 그리고 이날 최고 서포터즈를 보유한 구단은 강등됐다.
상대팀이던 정경호 수석코치도 경기가 끝난 후 "수원 팬들의 응원으로 인한 분위기가 K리그1에서 계속 나와야 한다. 이런 중요한 팀이 떨어진 건 너무 안타깝다"며 "경기 끝나고 모든 팬들이 침묵하는 모습을 보고야 실감이 났다"고 안타까워했다.
사실 수원 팬들은 이번 시즌 내내 프런트에 경고의 메시지를 던졌다. 프런트에 항의하는 성명서만 두 번을 냈다. 또 홈, 원정 경기를 가리지 않고 프런트를 향한 비판적인 메시지가 담긴 걸개를 걸어두었다. 그럼에도 프런트의 명확한 피드백은 팬들이 원하는 수준으로 나오지 않았다.
'하얗게 눈이 내리던 그날'은 돌아올 수 있을까
오전 10시 40분경 수원월드컵경기장 주변엔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수원 팬들에게 '눈'은 남다른 의미를 가진다. 2008시즌 수원은 엄청난 투자로 국가대표급 선수들을 끌어모았다. 돈을 많이 쓴다고 타팀으로부터 비판받을 정도였다. 결국 이 시즌 수원은 정규 시즌을 1위로 마무리했고, 챔피언 결정전에서도 최대 라이벌 FC서울을 꺾고 챔피언이 됐다.
종료 휘슬이 울릴 때 거짓말처럼 하얀 눈이 수원월드컵경기장을 뒤덮었다. 이후 수원 서포터즈 그랑블루(현 프렌테 트리콜로)는 이날을 기억하겠다는 의미에서 응원가까지 만들었고, 이 곡은 아직까지도 울려 퍼진다.
강원과 경기 전 눈이 내리기 시작하자, 온라인 속 일부 수원 팬들은 "눈이 온다", "좋은 징조다"라는 글을 썼다. 아쉽게도 이날 내린 눈은 수원에 좋은 소식을 가져다주지 못했다.
수원 프런트의 수장 오동석 단장은 경기가 끝난 뒤 화난 팬들 앞에서 사퇴를 선언했다. 시즌 내내 원하는 만큼의 피드백을 받아오지 못했던 수원 팬들은 오 단장의 선언에 환호성을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