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B컷]'30년 지기' 위해 조직적 선거개입…'공정' 내건 文정부 민낯

송철호 전 울산시장. 연합뉴스

노무현, 문재인 전 대통령과 함께 부산 지역 인권 변호사 3인방으로 꼽혔던 사람이 있습니다. 송철호 변호사입니다. 8전 9기 끝에 울산시장에 당선돼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노무현보다 더 바보'라고도 불렸던 사람입니다.

20년 가까이 낙선만 한 친구가 대통령으로서는 마음 한편에 늘 걸렸을지도 모릅니다. 청와대에서 근무하는 문 전 대통령의 측근들이, 일명 광흥창팀 멤버들이 송철호 변호사의 경쟁자였던 현역 시장 측근 비위 수사를 사실상 주문하고 십수번 수사 상황을 보고받게 된 것도 이 때문일지 모릅니다.

문 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기회는 평등할 것이고, 과정은 공정할 것이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했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국민에게 약속한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1심 법원 판결을 보면, 취임 직후 치러진 2018년 지방선거 때부터 이미 이 약속은, 적어도 울산에서만큼은 공허한 문구로 전락했던 것 같습니다. 이번주 법정B컷에서는 공정과 상식을 기치로 출범했던 문재인 정부 사람들이 공직선거법 위반 및 직권남용 재판의 법정에서 어떤 모습을 보였는지 찬찬히 살펴보겠습니다.


지역 리더인줄 알고 만났다? 法 "대통령과 친분 알고 만나"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은 표준 법정과 달리 유독 넓고 천정도 높습니다. 피고인석과 법대는 유독 더 멀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전두환·노태우·박근혜 전 대통령도 이곳에서 재판을 받았고, 대기업 오너들의 형사 재판도 이 법정에서 자주 열렸습니다. 이런 법정에 지난달 29일 오후 2시 문재인 청와대를 움직였던 사람들이 피고인석에 속속 착석했습니다. 피고인은 무려 15명, 자리가 부족할 지경이었죠.

사실상 하명수사를 진두지휘했다고 법적 판단을 받은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은 계속 고개를 숙인 채 있었고 하명수사를 충실히, 아니 더 과하게 이행한 황운하 당시 울산경찰청장은 법정을 두리번거리며 재판부를 기다렸습니다.

재판부(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3부)는 입정하자마자 공소장 일본주의 위반과 공소시효를 도과했다는 피고인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한 뒤 법정에 화면을 띄웠습니다. 공소사실을 6개로 나눈 표로, 공직선거법 위반과 직권남용 등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이 비교적 간략하게 담겨 있었습니다. 결과는 유죄 5, 무죄 1로 한병도 의원을 제외한 대부분의 피고인들이 유죄였죠.

재판부는 가장 먼저 송 변호사가 울산시청 사정을 잘 아는 송병기 전 부시장과 함께 황 의원에게 김기현 당시 울산시장(현 국민의힘 대표)의 측근 비리 수사를 청탁한 사실을 살펴봤습니다.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과 관련해 재판에 넘겨진 황운하 의원. 연합뉴스
2023. 11. 29 청와대 울산시장 하명수사 선고 中
재판부: 송철호가 황운하와 만나기 이틀 전인 2017년 9월 18일, 송병기가 (김기현 형제 비위 의혹) 고발인과 통화하면서 김기현의 동생과 용역 계약 30억원을 체결했다는 등 구체적인 정보를 확인한 게 인정됩니다. …황운하는 2017년 9월 20일 송철호를 만난 뒤 갑자기 고발인과 김기현 형제가 어떤 관계인지 알아보고… 수사가 시작될 무렵 다시 송철호와 식사 자리를 가진 점을 종합해 보면 송철호, 송병기는 김기현 형제 관련 비위를 황운하에게 제공해서 그에 관한 수사를 청탁하기로 공모하고… 황운하는 관련 수사를 진행한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황 의원은 공판 과정에서 2017년 9월 20일 저녁자리에 대해 "지역 오피니언 리더를 만나는 줄 알았다"는 취지로 주장했습니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 "송철호는 2017년 7월부터 자신의 과거 선거캠프 사람들을 모아 모임을 조직했다"며 "송철호가 대통령과 막역한 친분이 있고 이 사건 선거의 민주당 측 유력 후보라는 사실을 알고 만났다고 보인다"며 항변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재판부는 또 울산청장이던 황 의원이 송 변호사와의 첫 저녁식사 뒤 울산청 지능범죄수사대장과 수사과장 등을 불러 '김기현 형제와 고발인과의 관계 등을 확인해 보라'는 등의 지시를 했다고도 판단했습니다.

수사 경찰들은 원하는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고, 결국 좌천성 전보조치를 당했습니다. 관내 파출소로까지 쫓겨났던 경찰도 있었습니다. 인사위원회도 거치지 않은 인사로, 재판부는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불법적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절차적 요건도 갖추지 못한 인사를 했다"고 봤습니다.


울산청→청와대→경찰청→울산청 오간 첩보서

박종민 기자

그런데 왜 청와대까지 수사에 개입하게 됐을까요? 울산청장이 직접 나서 지수대에 수사를 지시했는데 말입니다. 수사 경찰들을 좌천시키면서까지 무리를 했는데도 수사가 예상대로 진행되지 않아서였습니다. (해당 사건은 최종적으로 무혐의 처분 났습니다)

1심 법원이 인정한 사실은 이렇습니다. 송병기 전 부시장은 2017년 9월 하순 경 울산 지역 토박이인 문해주 당시 청와대 민정비서관실 행정관과 통화하면서 김기현 시장 측근 비위를 알려줍니다. 통화를 끝낸 뒤엔 '울산광역시장 비리 개요'라는 문건을 전달했고, 문 전 행정관은 이를 바탕으로 첩보서를 작성해 선임행정관에게 보고, 결국 백 전 비서관에게까지 보고가 됐죠.

2023. 11. 29 청와대 울산시장 하명선거 선고 中
재판부: 피고인 문해주는 대통령 비서실 업무 권한에서 벗어나는 것을 알면서도 송병기의 청탁에 따라 경찰 수사를 전제로 김기현 측근 비리 범죄 첩보서를 작성해서 선임행정관을 통해 백원우에게 보고했고, 백원우는 이를 경찰에 이첩해 달라고 하며 박형철 반부패비서관에게 첩보서를 전달했습니다. 피고인 백원우와 박형철은 지자체장 비위에 대해 청와대 비서실은 감찰 권한이 없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반부패실에서 경찰청으로 이첩되는 범죄 첩보의 경우 경찰 수사 개시 여부나 결과에 (경찰이) 부담 갖는 것을 이용해, 적극적인 수사 진행을 위해 적법한 감찰 결과를 이첩한 것처럼 반부패실을 통해 직접 인편으로 경찰청에 이첩한 것을 인정합니다.

대통령비서실의 감찰대상은 대통령이 지명한 고위공직자나 친인척 등으로 지방자치단체장인 울산시장은 포함되지 않습니다. 물론 감찰대상이 아닌 사람에 대한 민원이나 진정이 접수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 때에는 공문 송부 등을 통해 절차대로 처리하고 있다고 합니다.

재판부는 "백 전 비서관은 '울산지역 비리에 관한 것인데 경찰에서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 엄정한 수사가 필요하다'는 취지로 말하면서 이를 박형철에게 직접 전해줬다"며 "박형철은 이 사건 첩보서를 그 자리에서 읽어보고 공문 송부 등의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대통령비서실의 권한 범위 내 감찰사건을 이첩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첩보서를 경찰청 특수수사과장에게 전달하게 했다"고 봤습니다.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첩보서를 2017년 12월 28일 울산청에 다시 이첩했고요.

송 변호사 당선에 도움이 될 김기현 형제 비위 첩보는 송철호 후보 당사자→황운하 울산청장→청와대 민정비서관→경찰청→울산청의 경로로 흘러갔다는 게 법원이 인정한 울산시장 청와대 하명수사 사건의 개요입니다.

송병기 전 부시장과 문해주 전 행정관, 즉 진정서를 청와대에 전달하고 전달받아 '첩보보고서'로 탄생시킨 두 핵심인물은 공판에서 해당 첩보가 '지역 민심과 동향에 관한 내용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업무 범위 내에 있었다는 항변을 한 겁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특정 지자체장의 비위 의혹에 관한 정보를 단순 지역 민심과 동향으로 보게 된다면 민심 파악이라는 명목으로 대통령비서실을 통한 선출직 공무원 등에 대한 감찰, 나아가 민간인 사찰을 사실상 허용하게 되는 결과를 낳을 우려가 있다"며 단호하게 배척했습니다.

그러면서 "대통령비서실이 감찰 대상이 아닌 민간인에 대한 비위 정보를 수집해 수사기관으로 이첩하게 된다면, 중립성과 객관성을 유지해야 하는 수사기관의 업무에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해 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우리 사회의 기본 질서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고 꾸짖다시피 했습니다.


"범행 뉘우치지 않아" 꾸짖은 재판부…얼굴 붉힌 황운하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과 관련해 재판에 넘겨진 송철호 전 울산시장(왼쪽부터)과 더불어민주당 황운하 의원,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 더불어민주당 한병도 의원. 연합뉴스

이날 선고공판은 피고인들이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는지 법적 판단을 받은 자리였습니다. 이 모든 일의 발단은 송 변호사 본인이지만, '하명수사'를 이뤄지게 한 것은 황 의원과 백 전 비서관이죠. 자신의 비위가 하나씩 인정되자 황 의원의 얼굴은 점점 붉어졌고, 두 손을 책상 위에 올려놓은 채 허공만을 응시했습니다. 백 전 비서관은 방청석에서도 보일 만큼 마른침을 계속 삼키고 있었고요.

재판부는 그런 황 의원을 똑바로 쳐다보며 "특정 정당을 위해 수사 권한을 남용했고 부당한 업무를 지시했고 인사권을 남용했다. 자신의 범행을 전혀 뉘우치지 않아 죄책이 매우 무겁다"며 총 징역 3년을 선고했고요. 백 전 비서관에 대해서도 "(자신은) 정상적인 업무를 수행한 것이고 첩보 이첩은 전적으로 다른 비서관이 결정한 것이라며 범행을 뉘우치지 않는다"며 징역 2년을 선고했습니다.

법정의 무거운 공기 탓이었을까요, 방청석 첫번째줄에서 보기에는 선고 말미로 갈수록 황 의원의 눈가가 조금 촉촉해졌습니다. "납득할 수 없는 판결"이라고 한 만큼 억울하고 분해서였겠지만, 그에게 인사 조치를 당한 경찰관들도 그만큼 억울하고 분했겠지요.

이 사건 여파로 억울한 인사조치를 당한 사람들은 또 있습니다. 2019년 11월 울산지검에서 사건을 넘겨받아 수사에 돌입했던 수사팀 검사들입니다. 이성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은 수사팀의 '불구속 기소' 방침에 결재를 하지 않았습니다.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이 기소를 결정했지만, 그 뒤로도 '윗선' 수사는 녹록지 않았습니다.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국 전 민정수석에 대한 추가 수사가 진행되던 중 수사 검사들은 지방으로 인사조치됐고 수사팀은 공중분해 됐습니다. 따지고 보면 백 전 비서관 선에서 보고가 멈췄다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과연 백 전 비서관이 모든 일을 결정한 게 맞는지, 그 윗선인 조 전 수석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등에 대해 의문이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황 의원 등이 항소했으니, 항소 과정에서 또다른 사실이 드러날지도 모르겠습니다.

공판 과정 역시 순탄치 않았습니다. 6번의 공판준비기일을 거치면서 1년 넘는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비슷한 정도의 언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대장동 사건도 이렇게까지 지연되진 않았습니다. 이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공판 일정이 잡힌 뒤 해당 재판부 부장판사는 휴직했고, 재판은 또 멈춰섰습니다.

경찰을 동원한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이를 수사하던 수사팀의 부침, 재판 지연까지 이 일련의 과정들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더욱이 피고인 황 의원은 경찰 신분으로 이 사건 수사를 받으면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죠. 비위 관련 조사나 수사를 받으면 의원면직이 되지 않는다는 대통령 훈령 때문에 경찰직을 그만 두지 못해 '조건부 의원면직'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임기를 시작했고요. 이러한 결과를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1심 판결이 선고되던 날 대법정 방청석엔 황 의원과 가까운 의원 몇몇이 함께 했습니다. 그 중엔 문재인 청와대에서 일했던 의원도 있었습니다. 그 의원은 피고인들보다 오히려 더 분한 듯 인상을 잔뜩 쓴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눈을 부릅 뜬 채 인상을 써야 할 사람들은, 공정한 과정을 담보로 적폐 청산이라는 결과를 약속받았던 '국민들' 아닐까요? 청와대 사람들이 "허용될 수 없는 일"을 저질렀다는 법적 판단을 받은 뒤 피고인들은 물론 문재인 정부 관계자 그 누구도 '국민들'에게 사과 한마디 하지 않고 있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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