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SSG 랜더스 팬들이 '인천 야구의 죽음'을 선언한 이유가 무엇일까.
SSG 팬들은 지난달 29일부터 홈 구장인 'SSG랜더스필드' 북문 주차장 주변으로 근조 화환을 보내기 시작했다. 근조 화환은 죽음에 대해 슬픈 마음을 나타낼 때 사용하는 화환이다.
하루가 지난 30일 현장을 찾았을 땐 화환은 무려 50여 개가 줄지어 있었다. 일부 화환엔 '삼가 인천 야구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문구도 쓰여 있었다.
그동안 SSG에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무엇 때문에 팬들은 집단행동까지 하게 된 것일까.
'통합 우승' 이뤄낸 사령탑 경질…"성적 때문 절대 아니다"
우선 김원형 감독의 경질이 이번 사태의 도화선이 됐다. 김 감독은 지난 2021년 SSG의 지휘봉을 잡았다. 전신 SK 시절까지 합치면 팀의 8대 감독이다.
부임 첫 해 2021시즌 성적은 기대에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144경기 66승 64패 14무를 기록하며 정규시즌 6위를 기록, 가을 야구를 치르지 못했다.
그러나 2022시즌 김 감독과 SSG는 KBO 리그를 평정하고 역사를 썼다. 정규 시즌 개막부터 마지막까지 1위로 마무리하며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을 달성한 것. 이는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최초의 기록이다. 게다가 한국시리즈에서도 막강한 기세를 이어가며 SSG 창단 2년 만의 첫 우승이자 전신 SK 시절을 포함해 12년 만의 통합 우승을 일궈냈다.
김 감독의 지휘 하에 SSG는 2023시즌도 우승을 향해 달렸다. 그러나 올해 정규 시즌은 3위로 마무리했다. 가을 야구에서도 준플레이오프에서 NC 다이노스에 3연패로 무릎을 꿇으며 시즌을 마쳤다.
그런데 SSG 구단은 지난 10월 31일 김 감독을 전격 경질했다. 구단의 명분은 '변화와 혁신'이었다. 이후 일각에선 '성적 때문에 김 감독을 너무 쉽게 내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빗발쳤다.
논란이 일자 SSG 측은 지난 10월 31일 계약 해지의 이유가 성적 때문은 아니라는 입장을 냈다. SSG는 "먼저 지난 3년간 팀에 공헌해주신 감독님께 감사드린다. 이러한 결정을 내린 부분에 대해서 매우 송구스럽다. 어렵고 힘든 결정이었다"며 단언컨대 성적으로 인한 계약 해지는 절대 아니다"는 입장을 전했다.
새 감독, 코치진 구성 과정서도 '시끌시끌'
김 감독 경질 이후 새 사령탑을 찾는 과정에서도 잡음이 이어졌다. 코치진을 꾸리는 과정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난 한국시리즈 1차전을 앞둔 시점. 김성용 당시 단장은 차기 감독 후보로 LG 트윈스 이호준 코치를 언급했다. 이에 29년 만의 통합 우승을 목표로 한국시리즈를 준비하고 있는 LG를 고려하지 않은 부적절 발언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후 SSG 구단은 지난달 17일 이숭용 감독을 선임했다.
이 감독 선임 이후엔 코치진 물갈이를 시작했다. 송신영 1군 수석 코치, 배영수 1군 투수 코치를 영입한 것. 절차상 어긋난 점은 없는 영입이다. 하지만 이들이 전 소속 팀에서 이미 내년 시즌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다.
또 채병용, 손지환, 이진영, 조웅천, 정상호 코치 등은 팀을 떠났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과거 SK 출신이었다는 점이다. 이에 구단이 SK 색깔 지우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비판에도 직면했다.
'구단 최고 레전드' 김강민의 이적, 결국 팬들 분통 터졌다
정점을 찍은 건 단연 '레전드' 김강민(41)의 이적이다. SSG는 김강민의 은퇴를 고려하고 35인 보호 선수 명단에 포함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화 이글스가 지난달 22일 열린 KBO 2차 드래프트에서 4라운드 22순위로 김강민을 호명했다.
이후 김강민은 한화의 끈질긴 설득에 선수 생활 연장의 뜻을 밝혔고, 한화는 25일 KBO에 제출할 보류선수 명단에 김강민을 포함하기로 했다. 김강민의 한화 이적이 확정된 것이다.
김강민은 23년 동안 한 팀에서만 뛴 구단 역사상 최고의 레전드다. 팬들은 물론 야구계 전체의 충격은 엄청났다. 김광현과 한유섬 등 SSG 동료 선수들이 구단의 결정에 공개적으로 불만을 드러내기에 이르렀다.
SSG는 25일 "김성용 단장에 대한 인사 조치를 단행했다"고 소식을 알렸다. 이어 "SSG는 최근 감독 및 코치 인선과 2차 드래프트 과정에서 생긴 논란에 대한 책임을 물어 김성용 단장을 R&D 센터장으로 보직을 변경한다"고 밝혔다.
김강민 이적 아쉽긴 하지만…구단 미래에 대한 걱정도
SSG 팬들이 집단행동을 나서기 시작한 것도 김강민의 이적 이후부터다. 팬들은 지난달 29일부터 홈 구장 주변에 근조 화환을 보냈다.
현장을 지키고 있는 한 팬은 "하루에도 수많은 팬들이 왔다 가신다"며 "굳이 인원수를 세어본 적은 없지만 정말 많은 팬들이 오셨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밤에 퇴근하고도 오시고, 추운데 고맙다는 말을 하시고 가시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많은 SSG 팬들이 현장을 찾는 가장 큰 이유는 김강민의 이적에 대한 짙은 아쉬움과 그리움 때문이다. 하지만 구단의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에 현장을 찾은 팬들도 많았다.
또 다른 팬은 "구단이 과거 SK의 색깔을 억지로 지우고 있다고는 생각하진 않는다"면서도 "이전과 기조가 달라지고 있고, 대부분의 색깔들이 조금은 희미해진 것 같긴 하다"고 느낀 점을 말했다. 이어 "SK 시절부터 있던 기존 팬들은 이 구단만 계속 응원해 왔는데 운영 방식이 완전히 달라지다 보니 반발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이어 "가장 큰 불만은 너무 빠른 변화"라면서 "만약 변화가 있어야 할 팀이었다고 하면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작년에 통합 우승을 했고, 올해도 6월까진 1등 경쟁을 하다 3위로 시즌을 마쳤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과연 변화를 지금 추구할 필요가 있는가에 대해서는 한 번 생각을 해봐야 될 필요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역시 SK 시절부터 응원했다는 팬은 "클럽 하우스를 바꿔주는 등 전폭적으로 지원과 투자를 해준 건 알고 있다"며 "덕분에 그만큼의 역사적인 성과도 냈다"고 일깨웠다. 그러면서도 "선수들에게 마음 아픈 일은 이제 없었으면 좋겠다"며 "선수들이 서운하지 않게 신경을 많이 써주면 좋겠다"고 바랐다.
이숭용 신임 감독 "초보 감독이지만 '원팀' 돼 잘 준비하겠다"
SSG 구단 측은 지난달 29일 인천 연수구 송도컨벤시아에서 2024시즌 대비 전력 강화 세미나를 실시했다고 30일 발표했다. 이숭용 감독을 포함한 코치진 28명과 프런트 21명 등 총 49명이 참석해, 팀 상황을 공유하고 팀 발전과 선수 성장을 위해 코치진과 프런트가 내년 시즌 방향을 잡기 위한 자리였다.
이숭용 감독은 "코치진과 프런트가 파트별로 다양한 의견을 내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해야만 하나가 된 방향성을 도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전달했다. 이어 "이번 기회를 통해 각자가 가지고 있는 고민과 내년 시즌 계획에 대해 파악할 수 있어 뜻깊은 자리였다"며 "나 또한 초보 감독인 만큼 주위 구성원과 함께 원 팀이 돼 내년 시즌 준비를 잘하겠다"고 강조했다.
팬들이 직접 설치한 근조 화환은 1일 오후 철거될 예정이다. 현장을 지키던 또 다른 팬은 "저녁 6시쯤 철거하기로 계획이 돼 있긴 한데, 날씨에 따라서 시간이 변경될 수도 있다"고 알렸다. 그러면서 "시민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첨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