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알았는데 정부만 몰랐다…'부산 엑스포 참패' 막전막후

아쉬운 표정의 2030 세계박람회 대표단. 연합뉴스

우리나라가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전에서 사우디아라비아에 참패를 당한 가운데 정보수집과 판세분석 측면에서 허점이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제계 내부에선 사우디에 맞서 결과를 뒤집기엔 역부족이라는 게 중론이었지만, '막판 대역전' 등을 언급하는 정부의 눈치를 보느라 직언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30일 재계와 정부 등에 따르면 부산이 엑스포 유치전에서 29표를 얻으며 참패를 당하면서 후폭풍이 이어지고 있다. 엑스포 유치전을 직접 주도하며 기대를 끌어올렸던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9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고개를 숙였다.
 
윤 대통령은 담화에서 "저 역시 96개국 정상과 150여 차례 만났고 수십개 (나라의) 정상과 직접 통화도 해 왔지만 민·관에서 접촉하면서 저희들이 어떤 느꼈던 (각 나라의) 입장에 대한 예측이 많이 빗나간 것 같다"고 참패 이유를 설명했다.
 
엑스포 개최지 선정 1차 투표는 전체 참가국(165개) 중 3분의 2 이상 득표에 성공하지 못할 경우, 상위 1‧2위끼리 2차 결선 투표를 진행하는 구조다. 이 때문에 사우디에 비해 열세인 우리나라는 1차 투표에선 2위를 차지한 이후, 2차 투표에서 역전을 노린다는 전략을 준비했다.
 
지난달 28일 오후(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외곽 팔레 데 콩그레에서 열린 제173차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에서 2030년 세계박람회 개최지 선정 투표결과가 프레스센터 모니터에 표시됐다. 연합뉴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1차 투표에서 사우디가 압도적인 득표력을 보이며 투표는 싱겁게 끝났다.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는 119표로 1위를 차지했고, 부산은 29표를 얻으며 2위, 로마는 17표로 3위에 그쳤다.
 
우리나라가 사우디에 비해 뒤늦게 엑스포 유치전에 뛰어든 데다, 풍부한 에너지 자원을 바탕으로 한 '오일 머니' 공세를 감안해도 득표 격차가 지나치게 컸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실제로 엑스포 개최지 경선 역사상, 3곳 이상 후보군들이 경쟁한 사례 중 1차 투표에서 끝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통령실과 유치위원회를 주도한 국무총리실 등 정부 측에선 이같은 참패 결과를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 당황한 분위기가 역력했다. 반면 경제계 내부에선 '어느 정도 예상했다'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기업들 역시 예상한 득표보다 더 저조한 결과였다고 진단했지만, 1차 투표에서 사우디가 승리할 것이라는 전망은 크게 빗나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와 경제계가 투표 결과 전망을 두고 이처럼 큰 시각차를 보인 가운데 민간 기업들은 정부의 눈치를 보느라 객관적인 의견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무엇보다 대통령실이 직접 나서 유치전을 이끄는 마당에, 부정적인 의견을 냈다가 자칫 향후 책임론에 휩싸일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한 재계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해외에선 이미 상당수 표가 사우디 쪽으로 넘어간 흐름이었는데 나중에 책임론이 발생할 수 있어 아무도 직언을 하지 않은 것 같다"며 "가만히 있으면 묻어 가는 건데, 정부와 다른 기류의 얘기를 했다가 얻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고 판단한 것 아니겠냐"고 했다.
 
연합뉴스

특히 권력의 정점으로 꼽히는 대통령실이 엑스포 유치를 주도한 것 자체가 이같은 사태를 유발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독립적인 조직을 중심으로 유치전을 진행하면 우리나라의 홍보 전략에 대해 상대적으로 객관적인 시각에서 비판도 가능하지만, 대통령실이 과도하게 개입하면서 권력에 줄을 서는 분위기가 형성됐다는 설명이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통화에서 "하나의 조직이 어떤 일을 추진하면서 동시에 견제까지 병행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다른 곳도 아니고 대통령실이 주도권을 쥐고 밀어 붙이는 상황에서 당연히 긍정적인 전망이 담긴 보고서가 많이 올라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엑스포 유치 실패보다 우리나라 정부가 예상했던 판세 분석이 크게 어긋났다는 점은 더 뼈아픈 대목이다. 투표 당일까지도 정부와 유치위 내부에선 1차 투표에서 우리나라가 60~70표가량 득표할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린 것으로 전해졌다.
 
올해 초만해도 우리나라가 사우디에 밀리고 있다는 다소 객관적인 분석이 담긴 의견이 대다수였다. 지난 10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 전쟁이 발발한 상황에서 사우디가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듯한 행보를 보인 데다, 최근 사우디의 2034년 월드컵 유치 및 독식 논란 등이 겹치면서 우리 측 전망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여권 관계자는 "'끝까지 최선을 다 한다'는 수준의 톤만 유지하면 좋은데, 투표 2~3일을 앞두고 정부 내에 장미빛 전망과 함께 일부 언론들이 '막판 대역전극' 바람을 넣는 등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갔다"며 "결과론적으론 키우면 안 되는 판을 키운 격"이라고 말했다.
 
의원 질의에 답변하는 박진 장관. 연합뉴스

경제계 내부에선 이번 사태를 반면교사로 삼아 향후 국제대회 유치전에선 이같은 실수를 반복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각 조직을 분화시켜 유치 성과 경쟁을 유도하기보다는 상대적으로 '쓴소리'를 낼 수 있는 내부 레드팀 운영 등 대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민간 기업 측 관계자는 통화에서 "우리 내부에서 조직을 여러 개로 쪼개서 경쟁 체제를 만들고 유치 성과 경쟁을 시키다보니 부작용이 발생했다"며 "유치 성과라는 특정 목표를 두고 경쟁을 시키면 당연히 위에서 듣기 좋은 말 위주로 보고서를 쓰게 된다는 점을 이번 실패를 통해 깨달아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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