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긴축기조 6개월 넘게 지속 가능성"…금리 인하 기대에 견제구

한은 금통위, 기준금리 연 3.50%로 유지
"긴축 기조 충분히 장기간 지속할 것"
이창용 총재 "시장 금리 기대 앞서나가"
매파적 동결 평가…내년 성장률은 하향조정
"물가·금리 힘들겠지만…인하 통한 부양은 답 아냐"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30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한국은행은 30일 물가 상승률이 기존 예상보다 완만하게 둔화될 것으로 예상하면서 기준금리를 현 수준인 연 3.50%로 동결했다. 지난 2월부터 7연속 동결 조치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통화긴축 기조 지속 기간이 향후 6개월 넘게 이어질 수 있음을 언급하는 한편, 추가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도 열려있다는 메시지로 시장의 기준금리 조기 인하 기대감을 견제했다.
 
한은은 내년도 경제 성장률 전망치는 기존 2.2%에서 2.1%로 하향조정했다. 이 총재는 내년에도 고금리·고물가 환경 속에서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금리 인하를 통한 경기 부양 필요성에 대해선 선을 그었다.

 

한은, 7연속 기준금리 동결…"금통위원 4명 추가 인상 가능성 열어둬"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30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는 이날 열린 올해 마지막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위원 만장일치로 기준금리를 3.50%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금통위는 의결문을 통해 "물가상승률이 당초 예상보다 높아졌지만 기조적인 둔화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가계부채 증가 추이와 대외 여건의 불확실성도 높은 만큼 현재의 긴축 기조를 유지하는 게 적절하다고 봤다"고 금리 동결 결정 배경을 설명했다.
 
아울러 "국내 경제는 성장세가 개선 흐름을 이어가는 가운데 물가 경로가 당초 전망보다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물가상승률이 목표 수준으로 수렴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 통화긴축 기조를 충분히 장기간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은은 이날 경제 전망도 함께 내놓으면서 "예상보다 높아진 비용 압력의 영향"을 언급하며 소비자물가 상승률 예상치를 올해 3.6%, 내년 2.6%으로 제시했다. 8월에 제시한 기존 전망치 대비 각각 0.1%포인트, 0.2%포인트 상향 조정한 것이다.
 
미국 물가상승률 둔화와 맞물린 조기 기준금리 인하 기대가 한은을 향해서도 번지고 있는 만큼, 시장에선 금통위 의결문구 변화에도 관심이 쏠렸다. 특히 지난달 의결문에선 "긴축 기조를 상당기간 지속할 것"이라는 문구가 이번엔 "충분히 장기간 지속할 것"이라고 바뀌었다.
 
이와 관련해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회의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충분히 장기간'이라는 표현은 '물가가 한은이 생각하는 수준으로 떨어질 때까지'로 이해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특히 "(그 기간이) 저는 현실적으로 지금 상황에서 보면 6개월 보다 더 될 거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며 "성장률, 물가 예측치에 의하면 한은의 목표 물가 2% 수렴 시기는 내년 말이나, 2025년 초반 정도가 되지 않을까 판단한다"고 말했다. 현 수준의 고금리가 장기간 유지될 가능성을 내비친 것이다.
 
이 총재는 또 자신을 제외한 6명의 금통위원 가운데 4명이 물가 불확실성 등을 이유로 추가 인상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으며, 2명은 현 수준의 금리 유지가 적절하다는 의견이었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회의 때 인상 뿐 아니라 인하 가능성도 열어놨던 금통위원과 관련해선 "'인하 가능성을 열어두자는 의견은 (이번에) 철회했다"고 밝혔다. 시장의 금리 인하 기대를 강하게 견제한 '매파적 금리 동결'이라는 평가가 나온 배경이다. 이 총재는 "BIS(국제결제은행) 회의에 가거나 중앙은행 총재들을 만나서 얘기해보면 (금리 인하와 관련) 시장 기대가 앞서가고 있는 것 같고, 중앙은행 총재들은 그렇게 생각하진 않는 것 같다"고도 했다.

 

물가전망 높이고, 성장전망 낮춰…내년 성장률 2.2% → 2.1%로 조정

스마트이미지 제공
 
한은은 경제전망을 제시하면서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8월 때와 같은 1.4%를 유지했지만, 내년 전망치는 2.2%에서 2.1%로 하향 조정했다. 한은은 "연초 부진했던 국내 경기는 하반기 들어 수출을 중심으로 개선되면서 올해 연간 성장률이 1.4%로 당초 예상에 부합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내년에도 수출, 설비투자 회복에 힘입어 개선 흐름을 이어가겠으나 소비, 건설투자 등 내수 회복 모멘텀 약화로 지난 전망치를 소폭 밑돌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저성장 고착화 흐름 아니냐는 질문이 나오자 이 총재는 "미국은 올해 성장률이 좋다가 내년에 떨어지는 추세인데, 우리는 올라가는 추세"라며 "좀 더 높은 성장률을 원하는 인식은 이해하지만 국제적으로 2% 이상 성장률이 나쁘진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 총재는 다만 "내년도 물가, 금리가 높기에 취약계층, 빚을 많이 낸 사람, 소득 낮은 사람은 굉장히 어려울 것"이라며 "2% 성장률이 낮기 때문에 금리를 낮추고 부양해서 가는 게 맞느냐. 제 대답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섣불리 부양하면 오히려 부동산 가격만 올릴 수 있고, 중장기 문제가 더 될 수 있다"며 "통화정책이 아니라 재정정책 등을 통해 특정해서 어려운 계층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내년 한국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1%에서 2.3%로 올린 반면, 한은은 오히려 하향 조정한 이유에 대해선 "OECD는 한국의 교역대상국인 미국, 중국에 대한 성장률 예측이 한은보다 높다. 그래서 한국 수출도 더 나아질 것으로 보는 것 같다"며 "한은 전망이 틀리더라도 성장률이 좋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가계부채 문제와 관련해선 "가계부채 절대액이 늘어나지 않게 하는 정책을 하면 성장률도 더 낮아지고, 오히려 금융불안을 일으켜서 부채도 더 늘어나고 금융시장도 쉽지 않을 것"이라며 "이번 정부가 끝날 때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얼마나 내려갔는지 판단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홍콩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삼는 주가연계증권(ELS) 상품의 대규모 손실 우려가 커지는 데 대해선 "그런 문제가 생겼을 때 단기자금 시장, 채권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점검해본 결과 큰 영향을 줄 가능성은 적다고 판단하고 있다"며 "금융 안정의 문제라기보다는 불완전판매 등 금융기관과 소비자 간 문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한편 이 총재는 정부와의 잦은 만남으로 한은 독립성이 위축되는 것 아니냐는 취지의 질문엔 "한은이 정부에 영향을 준다고는 왜 생각 안하느냐"며 "가계부채 문제도 하나의 좋은 예다. 저는 정부에 좋은 영향을 주고, 또 많은 정보를 정부로부터 듣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금통위 결정은 독립적으로 해왔다"며 "앞으로 이 질문을 하기 전에 (반대로) 정부에 '한국은행 총재를 만나서 독립성이 사라지는 것 아니냐'고 물어보면 좋겠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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