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징용 노동자상이 한국인이 아니라 일본인을 모델로 제작됐다는 주장은 명예훼손으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대법관 안철상)는 30일 강제징용 노동자상 조각가 부부가 김소연 전 대전시의원 및 이우연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명예훼손 책임을 인정해 위자료 배상을 명한 김 전 의원의 원심을 깨고 사건을 환송했다. 원심에서 명예훼손 책임이 인정되지 않은 이 연구위원 사건은 상고를 기각하고 확정했다.
김씨 부부는 2016년 8월 일본 교토의 단바망간기념관에 민주·한국노총 의뢰를 받아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설치했다. 이후 서울 용산역과 제주항 제2부두 연안여객터미널 앞에도 노동자상이 설치됐다.
이를 두고 김 전 시의원과 이 연구원 등은 '해당 노동자상이 실제로 조선인이 아닌 일본인을 모델로 한 것'이라는 내용의 글을 페이스북에 게시하고 관련 기자회견을 했다.
이에 김씨 부부는 이 발언들이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또는 모욕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여러 건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2심 판결은 엇갈렸다. 김씨 부부는 김 전 시의원과의 소송에서는 일부 승소를, 이 연구위원 등과의 소송에서는 패소했다. 문제의 발언이 허위사실의 적시인지 또는 의견의 표명인지 여부, 그리고 진실한 사실이거나 또는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어 위법성이 조각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한 판단이 하급심마다 달랐다.
대법원은 이날 두 사건 모두 '비평'에 해당한다며 "명예훼손이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이 연구원과 김 전 시의원의 발언에 대해 "비판적 의견 표명으로 볼 여지가 있다"며 "감상자의 주관적인 평가의 영역에 놓여 그에 따른 비평의 대상이 된다"고 설명했다.
비평 자체로 모욕적이고 경멸적인 인신공격에 해당해 타인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등 별도의 불법행위가 아니라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만큼 섣불리 명예훼손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이날 판결에 대해 "예술작품에 대한 개인적·심미적 취향의 표현이나 특정 대상과 비교하는 등의 비평은 그 자체로 인신공격에 해당해 별도의 불법행위를 구성하는 정도에 이르지 않는다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명예훼손 행위로 평가하는 것에 신중할 필요가 있음을 명시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