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평화가 있는 DMZ 길…산티아고 순례길 넘본다[영상]

[MZ대학생 DMZ 524km를 걷다⑧]

19일 강화평화전망대 앞에서 DMZ 자유평화대장정을 마친 대원들이 단체로 모자를 던지며 기뻐하고 있다. 이경숙 대원 제공
▶ 글 싣는 순서
①"와~저기가 북한이라구요?"
②천오백년 역사 품은 건봉사…분단 70년 상흔 곳곳에
③금강산까지 32km…그러나 철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④'대국민 사기극' 평화의댐…평화·안보관광지로 변신 성공
⑤철원에서 멈춘 금강산행 열차…언제 다시 달릴까?
⑥전쟁 참상 간직한 백마고지…한반도 평화는 언제 올까?
⑦"남방한계선 마주했을때 답답함과 애절함이란…"
⑧자유와 평화가 있는 DMZ 길…산티아고 순례길 넘본다
(끝)

"두타연을 지나며 산양 한 마리를 만났습니다. 철책과 수문으로 제 갈 길을 잃은 산양에서 길 잃은 우리 민족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서로 얼마나 더 다른 길을 가게 될까요"

지난 13일 강원도 고성에서 자유와 평화의 꿈을 안고 출발한 DMZ 원정대는 19일 강화평화전망대에서 해단식을 끝으로 6박 7일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

DMZ 자유‧평화 대장정은 정전 70주년을 맞아 자유와 평화, 그리고 통일의 가치를 되새기고 인구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DMZ 접경지역의 경제 활성화를 모색하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지난 9월 1기 원정대가 힘찬 발걸음을 내디딘 이후 6차까지 420명이 단 1명의 낙오자도 없이 DMZ 길을 걸으면서 분단의 아픔을 되새기고 평화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고 통일의 의지도 다졌다.

CBS 노컷뉴스는 인턴기자 2명을 파견해 언론사 최초로 DMZ 자유‧평화 대장정 6차 원정대 전 과정을 동행하며 우리 국토의 아름다움과 분단과 전쟁의 아픔, 평화의 의지를 생생하게 전달했다.

13일 고성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북녘땅. 금강산과 해금강이 한눈에 들어온다. 류효림 인턴기자
DMZ 철책선은 강원도 고성에서 인천 강화도까지 남북의 산과 들, 강과 하천을 동서로 가로지르며 248km 뻗어있지만, DMZ를 따라 만들어진 걷기 길은 철책선 길이의 두 배가 넘는 524km에 이르는 긴 길이다. 서울-마라도 간 직선거리(500km)보다도 길다.

전 구간을 걷기 위해서는 40일가량이 소요되기 때문에 DMZ 자유·평화 대장정은 주요 구간을 7일 차 일정으로 나누어 총 94km를 걷고 나머지는 버스로 이동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첫째 날, 원정대는 고성통일전망대에서 닿을 수 없는 북녘의 금강산과 금강산의 기이한 봉우리를 바다에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다고 해 이름 붙여진 '바다의 금강산' 해(海)금강을 먼발치서 바라보며 천혜의 자연과 분단의 아픔을 동시에 느꼈다.
 
14일 건봉사 내 극락전과 대웅전을 연결하는 다리 능파교. 한국전쟁의 피해를 받지 않고 원형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다. 이도훈 씨 제공
대원들은 이튿날 민간인 통제구역 내부로 직접 들어가 한국전쟁이 할퀴고 간 건봉사를 방문했다. 사찰 내 대부분의 건축물이 전쟁으로 파괴됐지만, 고성 8경에 꼽힐 만큼 여전히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했다.
 
이어 대원들은 9km가량 도보로 이동해 동해안 최북단에 위치한 소똥령마을에 도착했다. 1960년대만 해도 300여 가구가 살던 이곳은 남북 간의 긴장에 따른 인구감소로 50가구도 되지 않는 작은 마을로 쪼그라들었다.
 
셋째 날에는 비득검문소 내 민간인 통제구역을 지나 양구전투 위령비와 두타연을 거쳐 '금강산 가는 길 안내소(구 이목정 안내소)'에 도착하는 일정을 수행했다.
 
15일 두타연 폭포 오른쪽 동굴이 보인다. 이도훈 씨 제공
양구 두타연은 한국전쟁 이후 반세기 동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 자연환경이 천연 그대로 같이 보존돼 있었다.
 
하지만 곳곳에 지뢰 표지판과 가시철망은 아름다운 자연과 극적인 대조를 이루며 이곳이 한국 전쟁 당시 수많은 군인들이 남과 북으로 나뉘어 상대의 목숨을 뺏고 빼앗은 동족상잔의 무대였음을 새삼 실감케 한다.

두타연은 분단이 만들어 낸 아름다운 자연과 전쟁의 아픔을 그대로 품고 있는 과거의 공간이자 현재의 장소이다. 미래의 두타연은 어떤 모습일까. 의미심장한 깊은 숨을 내쉬며 발길을 옮긴다.
 
이어 도착한 양구전투위령비. 피의 능선 전투, 도솔산지구 전투, 단장의 능선 전투 등 참혹했던 양구 지역 전투에서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들 앞에서 옷깃을 여미고 고개를 숙여 묵념하면서 조국의 의미를 새삼 생각하게 된다.
 
평화의 댐은 전두환 정부가 '서울 물바다론'을 제기하며 준공됐다. 류효림 인턴기자
원정 나흘째 일정은 강원 화천 평화의 댐에서 시작했다. 북한의 금강산댐 수공을 막는다는 명목으로 만들어진 평화의 댐은 분단과 독재의 합작품이다.

1980년대 후반 코흘리개 용돈부터 기업들의 반강제적 성금 등으로 만들어진 평화의 댐은 북한이 금강산댐을 폭파했을 경우 쏟아 내려오는 물을 가두기 위해 만든 대응 댐이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발전용 시설이 없고 수문이 없는 홍수조절용 자연배수 댐이다.

독재자들이 감옥에 가고 정권이 몇 번 바뀌면서 평화의 댐은 성수기 기준 하루 2000여 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평화 안보 관광지로 탈바꿈했다. 호젓한 자연을 즐기려는 이들에게도 제격이다.
 
16일 오후 강원 화천 북한강을 가로지르는 '숲으로다리'를 걸어가는 중 북한강에 물안개가 껴있다. 류효림 인턴기자
오후에는 강원 화천군 간동면과 화천읍 대이리를 연결하는 인도교인 '살랑교'를 지나 '숲으로다리'로 걸었다. 걷는 내내 큰 산맥이 길을 감싸고 있고 양쪽엔 물이 가득 차 있어 빼어난 자연경관을 만끽할 수 있었다.

살랑교는 교량이 설치된 곳의 지명인 살랑골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다. 북한강 인근에서 살랑살랑 자주 부는 시원한 바람의 이미지도 담고 있다.

다리 위에서 본 하늘과 산의 조화가 멋스러웠다. 마침 비도 내렸는데 대원들은 빗방울이 강에 떨어져 그려내는 동그라미 문양을 보며 잠시나마 '비멍'에 빠져들었다. '숲으로다리'는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아름다운 자전거 여행길 30선'에 들기도 했다.
 
17일 강원도 철원 화강쉬리공원. 나무와 건물이 비칠 정도로 물이 맑다. 류효림 인턴기자
5일 차 일정은 철원 화강쉬리공원에서 시작됐다. 공원의 이름인 '쉬리'에는 1급수에만 발견된다는 쉬리가 서식할 정도로 청정하다는 뜻과, 영화 「쉬리」에서 차용한 상징으로서 남과 북의 대치 속에 평화와 통일을 염원한다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있다.
 
오후에는 민간인통제구역 안으로 들어가 DMZ생태평화공원 내에 위치한 용양보습지를 찾았다. 화강 상류 DMZ 남방한계선에 위치한 용양보습지는 호수, 늪, 하천 등 다양한 지형과 더불어 식생·생물 서식환경이 우수해 생태학적으로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17일 용양보 한가운데 출렁다리가 앙상하게 흔적만 남아있다. 이도훈 씨 제공
이곳에도 어김없이 전쟁의 흔적은 남아있었다. 특히 보 한가운데에는 한때 DMZ 경계근무를 서던 병사들이 오가던 출렁다리가 위태롭게 놓여있어 묘한 긴장감과 동시에 세월의 풍파를 함께 느낄 수 있었다.
 
6일 차 오후에는 백마고지 전적비에 들렀다. 전적비는 백마고지 전투에서 희생된 호국영령을 위로하기 위해 1990년 조성됐으며, 높이는 22.5m에 달한다. '22.5'의 각 자리의 숫자를 더하면 9가 되는데, 백마고지 전투에 참전한 국군 9사단을 상징한다고 한다.

태극기가 좌우로 길게 정렬된 언덕 너머 하늘을 향해 높게 솟은 전적비 뒤로 백마고지가 보였다. 해발 395m의 백마고지는 군인들 사이에서는 395산이라고 통했다. 전쟁 전까지만 해도 무명의 야산이었지만, 전쟁 이후 한국전쟁의 참혹함을 보여주는 역사적인 장소가 됐다.

18일 백마고지전적비를 올라가는 언덕. 이도훈 씨 제공
군사시설이 있어 촬영이 제한돼 눈으로만 담아야 했지만, 지금으로부터 70년 전 한국전쟁 최대의 격전으로 꼽히는 '백마고지 전투'가 일어났던 곳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고요했다.

백마고지 전투는 1952년 10월 6일부터 15일까지 백마고지를 쟁탈하기 위해 국군과 중공군이 벌인 혈전으로, 세계 역사에서 유래가 없을 만큼 치열한 포격전, 수류탄전, 백병전 등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이어졌다.

당시 백마고지에 발사된 포탄의 숫자만 해도 국군 20여만발, 중공군 5만 발 등에 이를 정도로 엄청난 화력이 쏟아졌다. 백마고지의 유래 역시 이 기간 중 극심한 공중 폭격과 포격으로 민둥산이 된 고지가 마치 백마가 누워있는 것처럼 보여 명명됐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19일 강화평화전망대 너머로 멀리 북녘이 보인다. 이도훈 씨 제공
대장정의 마지막 날인 19일. 원정대는 강화평화전망대에서 첫날과 마찬가지로 가깝지만 먼 북한 땅을 바라보며 여정을 마무리했다.
 
뿌연 연무 탓에 흐릿하게 보였지만, 바다 건너 보이는 북녘땅에 대한 진한 아쉬움과 가슴을 짓누르는 묵직함은 대원들에게 선명하게 전달됐다.
 
18일 폐회식에서 김학면 원정대장이 임철원 행안부 균형발전지원국장에게 원정대 깃발을 반납하고 있다. 이도훈 씨 제공
이번 대장정을 통해 아름다운 우리 강산과 전쟁의 비극이라는 DMZ의 역설을 품은 평화의 길이 한반도만의 소중한 문화관광자원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엿볼 수 있었다.

DMZ 대장정이 연례행사로 확대돼 자유롭게 이 길을 걷고, 철조망과 평화, 자연생태라는 특이한 경험을 하기 위해 한국을 찾는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늘어나면 DMZ 평화의 길은 산티아고 순례길에 못지않은 세계적인 명소로 거듭날 것이다.  
 
임철원 행정안전부 균형발전지원국장은 이날 해단식에서 "앞으로도 자유의 소중함을 되돌아보고, 각종 군사 규제 등으로 지역발전에서 소외된 접경지역에 대한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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