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싣는 순서 |
①"와~저기가 북한이라구요?" ②천오백년 역사 품은 건봉사…분단 70년 상흔 곳곳에 ③금강산까지 32km…그러나 철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④'대국민 사기극' 평화의댐…평화·안보관광지로 변신 성공 ⑤철원에서 멈춘 금강산행 열차…언제 다시 달릴까? ⑥전쟁 참상 간직한 백마고지…한반도 평화는 언제 올까? ⑦"남방한계선 마주했을때 답답함과 애절함이란…" ⑧자유와 평화가 있는 DMZ 길…산티아고 순례길 넘본다 (끝) |
"두타연을 지나며 산양 한 마리를 만났습니다. 철책과 수문으로 제 갈 길을 잃은 산양에서 길 잃은 우리 민족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서로 얼마나 더 다른 길을 가게 될까요"
지난 13일 강원도 고성에서 자유와 평화의 꿈을 안고 출발한 DMZ 원정대는 19일 강화평화전망대에서 해단식을 끝으로 6박 7일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
DMZ 자유‧평화 대장정은 정전 70주년을 맞아 자유와 평화, 그리고 통일의 가치를 되새기고 인구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DMZ 접경지역의 경제 활성화를 모색하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지난 9월 1기 원정대가 힘찬 발걸음을 내디딘 이후 6차까지 420명이 단 1명의 낙오자도 없이 DMZ 길을 걸으면서 분단의 아픔을 되새기고 평화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고 통일의 의지도 다졌다.
CBS 노컷뉴스는 인턴기자 2명을 파견해 언론사 최초로 DMZ 자유‧평화 대장정 6차 원정대 전 과정을 동행하며 우리 국토의 아름다움과 분단과 전쟁의 아픔, 평화의 의지를 생생하게 전달했다.
전 구간을 걷기 위해서는 40일가량이 소요되기 때문에 DMZ 자유·평화 대장정은 주요 구간을 7일 차 일정으로 나누어 총 94km를 걷고 나머지는 버스로 이동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첫째 날, 원정대는 고성통일전망대에서 닿을 수 없는 북녘의 금강산과 금강산의 기이한 봉우리를 바다에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다고 해 이름 붙여진 '바다의 금강산' 해(海)금강을 먼발치서 바라보며 천혜의 자연과 분단의 아픔을 동시에 느꼈다.
이어 대원들은 9km가량 도보로 이동해 동해안 최북단에 위치한 소똥령마을에 도착했다. 1960년대만 해도 300여 가구가 살던 이곳은 남북 간의 긴장에 따른 인구감소로 50가구도 되지 않는 작은 마을로 쪼그라들었다.
셋째 날에는 비득검문소 내 민간인 통제구역을 지나 양구전투 위령비와 두타연을 거쳐 '금강산 가는 길 안내소(구 이목정 안내소)'에 도착하는 일정을 수행했다.
하지만 곳곳에 지뢰 표지판과 가시철망은 아름다운 자연과 극적인 대조를 이루며 이곳이 한국 전쟁 당시 수많은 군인들이 남과 북으로 나뉘어 상대의 목숨을 뺏고 빼앗은 동족상잔의 무대였음을 새삼 실감케 한다.
두타연은 분단이 만들어 낸 아름다운 자연과 전쟁의 아픔을 그대로 품고 있는 과거의 공간이자 현재의 장소이다. 미래의 두타연은 어떤 모습일까. 의미심장한 깊은 숨을 내쉬며 발길을 옮긴다.
이어 도착한 양구전투위령비. 피의 능선 전투, 도솔산지구 전투, 단장의 능선 전투 등 참혹했던 양구 지역 전투에서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들 앞에서 옷깃을 여미고 고개를 숙여 묵념하면서 조국의 의미를 새삼 생각하게 된다.
1980년대 후반 코흘리개 용돈부터 기업들의 반강제적 성금 등으로 만들어진 평화의 댐은 북한이 금강산댐을 폭파했을 경우 쏟아 내려오는 물을 가두기 위해 만든 대응 댐이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발전용 시설이 없고 수문이 없는 홍수조절용 자연배수 댐이다.
독재자들이 감옥에 가고 정권이 몇 번 바뀌면서 평화의 댐은 성수기 기준 하루 2000여 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평화 안보 관광지로 탈바꿈했다. 호젓한 자연을 즐기려는 이들에게도 제격이다.
살랑교는 교량이 설치된 곳의 지명인 살랑골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다. 북한강 인근에서 살랑살랑 자주 부는 시원한 바람의 이미지도 담고 있다.
다리 위에서 본 하늘과 산의 조화가 멋스러웠다. 마침 비도 내렸는데 대원들은 빗방울이 강에 떨어져 그려내는 동그라미 문양을 보며 잠시나마 '비멍'에 빠져들었다. '숲으로다리'는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아름다운 자전거 여행길 30선'에 들기도 했다.
오후에는 민간인통제구역 안으로 들어가 DMZ생태평화공원 내에 위치한 용양보습지를 찾았다. 화강 상류 DMZ 남방한계선에 위치한 용양보습지는 호수, 늪, 하천 등 다양한 지형과 더불어 식생·생물 서식환경이 우수해 생태학적으로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6일 차 오후에는 백마고지 전적비에 들렀다. 전적비는 백마고지 전투에서 희생된 호국영령을 위로하기 위해 1990년 조성됐으며, 높이는 22.5m에 달한다. '22.5'의 각 자리의 숫자를 더하면 9가 되는데, 백마고지 전투에 참전한 국군 9사단을 상징한다고 한다.
태극기가 좌우로 길게 정렬된 언덕 너머 하늘을 향해 높게 솟은 전적비 뒤로 백마고지가 보였다. 해발 395m의 백마고지는 군인들 사이에서는 395산이라고 통했다. 전쟁 전까지만 해도 무명의 야산이었지만, 전쟁 이후 한국전쟁의 참혹함을 보여주는 역사적인 장소가 됐다.
백마고지 전투는 1952년 10월 6일부터 15일까지 백마고지를 쟁탈하기 위해 국군과 중공군이 벌인 혈전으로, 세계 역사에서 유래가 없을 만큼 치열한 포격전, 수류탄전, 백병전 등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이어졌다.
당시 백마고지에 발사된 포탄의 숫자만 해도 국군 20여만발, 중공군 5만 발 등에 이를 정도로 엄청난 화력이 쏟아졌다. 백마고지의 유래 역시 이 기간 중 극심한 공중 폭격과 포격으로 민둥산이 된 고지가 마치 백마가 누워있는 것처럼 보여 명명됐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뿌연 연무 탓에 흐릿하게 보였지만, 바다 건너 보이는 북녘땅에 대한 진한 아쉬움과 가슴을 짓누르는 묵직함은 대원들에게 선명하게 전달됐다.
DMZ 대장정이 연례행사로 확대돼 자유롭게 이 길을 걷고, 철조망과 평화, 자연생태라는 특이한 경험을 하기 위해 한국을 찾는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늘어나면 DMZ 평화의 길은 산티아고 순례길에 못지않은 세계적인 명소로 거듭날 것이다.
임철원 행정안전부 균형발전지원국장은 이날 해단식에서 "앞으로도 자유의 소중함을 되돌아보고, 각종 군사 규제 등으로 지역발전에서 소외된 접경지역에 대한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가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