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 모를 불황에, 유통·식품업계 '희망퇴직' 칼바람

11번가 제공

고물가 상황 속 소비심리가 얼어붙으며, 유통업계와 식품업계에 희망퇴직 칼바람이 불고 있다.

인건비라는 고정비용을 조금이라도 줄여보려는 기업의 자구책인 셈인데, 불황의 터널에 끝이 보이지 않고, 포화 상태인 내수 시장에서 반전을 모색하기도 쉽지 않아 업계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11번가는 사상 최초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 대상은 만 35세 이상 5년차 이상 직원으로 희망퇴직자에는 4개월분의 급여가 주어진다.

레드오션인 이커머스 시장 상황 속, 11번가를 둘러싼 환경은 더 악화되고 있다. 11번가는 지난 2018년 최대주주 SK스퀘어가 나일홀딩스 컨소시엄으로부터 5천억원을 투자받으며 지분 18.18%를 넘겼다. 이 때 투자 조건은 5년 내 기업공개(IPO)로, 불발될 경우 투자금에 수익을 붙여 상환하는 것이었지만 시장이 얼어붙으며 기간 내 기업공개가 이뤄지지 못했다.

최근 큐텐과 지분 매각 협상이 진행되며 투자금 상환 압박에서 벗어날 기회가 생겼지만, 협상이 결렬되면서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우려가 더 커진 상황이다. 특히, 이날 SK스퀘어가 나일홀딩스의 11번가 지분 18.18%를 다시 사들이는 방식의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기로 하며 11번가가 강제 매각 수순을 밟게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투자 약정상 SK스퀘어가 콜옵션을 포기할 경우, 투자자들은 SK스퀘어가 보유한 11번가 지분(80.3%)까지 제3자에 매각할 수 있는 동반매도요구권(Drag-along)을 행사할 수 있다.

이러한 불확실성에 더해 11번가의 영업적자 상황까지 겹치며 희망퇴직은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올해 3분기까지 11번가의 누적 영업손실은 91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4.1% 규모가 줄어들었지만, 적자 상태를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다.

11번가 관계자는 "손 놓고 있을 때 과연 내년에는 올해보다 좋아질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회사 입장에서는 효율적인 조직 구성과 비용 절감을 통해 슬림해진 내년을 맞이할 수 있고, 11번가 이후의 커리어를 생각하는 분들에게 미약하지만 좋은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업황 자체의 부진으로 실적이 악화되고 있는 롯데홈쇼핑도 지난 9월 창사 첫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만 45세 이상, 근속연수 5년 이상 직원이 대상으로 퇴직자에게는 2년치 연봉과 재취업 지원금, 자녀 교육 지원금지 지급됐다. 조직 효율화를 통해 유통·미디어 환경 변화에 대응한다는 전략이다.

GS리테일 제공

GS리테일도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 다만, 사측은 경영실적 부진에 따른 인력 감축 목적은 아니며 복리후생제도의 일환으로 정례적으로 실시하는 제도라고 설명했다. 시니어 직원들에게 다른 길을 열어주고, 회사 입장에서는 자연스럽게 체질 개선을 도모할 수 있는 방식이다.

소비 심리 부진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식품업계에서도 희망퇴직 릴레이가 벌어지고 있다. 제빵업계 1위 파리바게뜨를 운영하는 SPC 파리크라상은 이달 초부터 법인 소속 14개 브랜드에 대한 희망퇴직을 진행하고 있다. 사유는 원재료비, 인건비 등 비용 상승에 따른 부담을 덜기 위해서다. 최근 3년간 파리크라상의 영업이익은 2020년 347억원, 2021년 334억원, 2022년 188억원 등 감소세다.

저출산 문제에 우유 소비 감소로 위기 의식이 커지고 있는 유업계에서도 희망퇴직이 실시됐다. 업계 2위인 매일유업은 올해 3분기까지 영업이익이 513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24.2% 늘어났지만, 내년 경영환경의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지난 8월 강제성이 없는 희망퇴직을 단행했다.

업계 관계자는 "고물가·고금리 상황이 지속되는 가운데 소비 심리가 언제 살아날 지 장담할 수 없다는 점이 더 큰 고민거리"라며 "해외 판로를 모색한 업체들은 상황이 조금 나을지 모르지만, 국내 유통·식품 시장 자체가 얼어붙고 있어 불가피한 길을 택하는 일이 이어지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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