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세계박람회(엑스포) 투표에서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가 119표로 1위를 차지하며 엑스포를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막판 대역전을 노렸던 부산은 29표를 얻으며 2위, 로마는 17표로 3위를 기록했지만 사우디 리야드의 압도적인 기세에 눌렸다.
사우디에 비해 뒤늦게 엑스포 유치전에 뛰어든 점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 예상된 결과라는 측면도 있지만, 사우디가 단순히 '오일 머니'에 기대지 않고 종교 및 문화 전략을 구사한 점이 돋보였다는 평가도 나온다.
현지 시간으로 28일 오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제박람회기구(BIE) 제173차 총회에서 열린 엑스포 투표는 사우디 리야드의 승리로 귀결됐다.
부산은 1차 투표에서 3분의 2 이상 득표자가 없다는 전제 하에 2차 투표에서 역전을 노렸지만 실제 표심은 달랐다.
사우디의 이같은 압승은 전통적인 에너지 부국으로서 활용할 수 있는 카드를 최대한 활용한 데서 비롯됐다는 게 중론이다. 특히 사우디 입장에서 엑스포 유치는 무함마드 왕세자가 추진하는 '사우디 비전 2030' 중 핵심 요소로 꼽힌다.
석유 중심 경제에서 벗어나 관광산업 등 다변화를 시도하는 '사우디 비전 2030'은 엑스포 유치와 함께 전 국가적인 이미지 쇄신을 도모하고 있다.
우리나라보다 앞서 엑스포 유치전에 뛰어든 사우디는 '변화의 시대, 미래를 내다보는 내일로 함께'라는 슬로건을 바탕으로 유치 과정에서 약 10조원 이상 투자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무함마드 왕세자는 파리 외곽 인근에 있는 본인 소유 성에서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만나거나, 사우디 장관들이 참석하는 리셉션에 아프리카 축구 전설로 꼽히는 디디에 드로그바 등을 초대하기도 했다.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총회를 앞두고 마케팅 과정 중 '오일머니'를 과시하기도 했다. 사우디는 지난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 당시 만들어진 에펠탑 인근에서 '리야드 2030' 전시회를 개최했다.
풍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국가 이미지 세탁 차원에서 프로 스포츠들을 유치하는 등 사전에 공을 들였다. 대표적인 예로, 지난달 29일 사우디 리야드에선 프로복싱 WBC 헤비급 챔피언 타이슨 퓨리와 종합격투기 선수 프란시스 은가누의 대결이 열렸다.
이날 BIE 총회 최종 프레젠테이션에서는 사우디 프로축구 리그에서 뛰고 있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응원 영상도 나왔다. 영국 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거쳐 스페인 리그 레알 마드리드 등에서 활약한 축구 스타 호날두는 해당 영상에서 "리야드에 투표해달라"고 지지를 호소했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인적‧물적 측면에서 열세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정부와 부산시 등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은 유치위원회 활동 기간인 508일 간 96개국 462명의 주요 인사를 만났고, 한덕수 국무총리도 112개국 203명을 만났다.
삼성전자와 SK그룹, 현대차그룹 등 주요 재계 기업들은 174개국 2807명의 세계 각국 주요 인사를 만나는 등 민간 외교를 진행했다. 정부 측 인사들이 이동한 거리를 합치면 약 976만8194㎞로 지구 243바퀴에 달했다.
기업인들이 이동 거리의 합은 약 1012만3385㎞로, 지구 252바퀴에 달했다. 의회외교 차원에서 김진표 국회의장은 75개국 700여명을 만나 부산 엑스포 지지를 호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우디의 벽은 높았다. 일각에선 단순히 '오일머니'를 앞세운 자본 공세 이전에 사우디가 이슬람 성지 순례 등을 활용한 전략적인 접근이 돋보였다는 평가에 무게가 실린다.
한 재계 관계자는 "아프리카 나라들에게는 사우디가 막대한 투자 등 자본적 접근을 했지만, 이슬람 문화권인 동남아에는 문화와 종교적 차원에서 전략을 짰다"며 "사우디가 오랫동안 공을 들여 준비했다는 느낌이 들어 이번 유치전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