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고들기]'서울의 봄' 흥행 동력 '분노'…판결문에도 보인다

영화 '서울의 봄' 캐릭터 포스터.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 아닙니까!" _영화 '서울의 봄' 속 보안사령관 전두광의 대사
 
12·12 군사반란을 그린 영화 '서울의 봄'(감독 김성수) 속 권력 찬탈을 위해 군내 사조직을 동원해 1979년 12월 12일 군사반란을 일으킨 보안사령관 전두광(황정민)은 반란군을 향해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 아닙니까!"라고 말한다.
 
실제로 지난 1995년 7월 18일, 5·18민주화운동 관련 고소·고발 사건을 수사했던 서울지검 공안1부는 전두환씨와 노태우씨를 포함한 피의자 58명 전원에게 '공소권 없음' 결정을 내렸다. 당시 검찰은 정치적 변혁의 주도 세력(영화 속 반란군)이 새로운 정권 창출에 성공해 국민의 정치적 심판을 받아 새로운 헌정질서를 수립해 나간 경우에는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영화 속 전두광 대사의 원형인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과연 '서울의 봄' 속 12·12 군사반란을 법은 어떻게 판단했는지, 1996년 12월 16일 서울고등법원 제1형사부(재판장 권성)의 판결(반란수괴·반란모의참여·내란중요임무종사·불법진퇴·지휘관계엄지역수소이탈·상관살해·상관살해미수·초병살해·내란수괴·내란모의참여·내란중요임무종사·내란목적살인·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뇌물))을 통해 살펴본다.

영화 '서울의 봄' 스틸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

 
1979년 12월 12일 당시 보안사령관 전두환, 제9사단장 노태우 등 '하나회'(전두환, 정호용, 노태우 등 육사 11기생의 주도로 비밀리에 결성했던 군대 내 사조직)를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은 군사반란을 일으켰다. 신군부 세력은 반란을 통해 군 내부의 주도권을 장악,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한 것과 동시에 김대중과 민주화운동 세력의 내란음모를 조작해 탄압한 후(5·18 내란음모 사건) 결국 권력을 획득했다.

전두환씨를 비롯한 피고인들은 쿠데타가 일어난 1979년 12월 12일과 그 다음날, 그리고 1980년 5월 17일 이후 한 일련의 행위가 형식적으로는 반란과 내란에 해당한다 해도 실제로는 정당한 행위로서 소위 '성공한 쿠데타'에 해당하므로 처벌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에 관해 법원은 먼저 '성공한 쿠데타 정권'이 합법성을 인정받는 실질적인 이유는 해당 정권이 탄생의 범죄성에도 불구하고 탄생 이후에는 기존의 헌법과 법률에 근거해 권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는 최소한 "질서를 유지하고 국민의 안전과 복지를 위해 행했을 것이라고 가정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가능하다고 부연했다.
 
영화 '서울의 봄' 스틸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12·12 군사반란과 같이 쿠데타 세력을 강화할 목적으로 국민의 정당한 권리행사를 억압하고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를 자행한 것에 대해서는 합법성이 부여될 수 없고, 결론적으로 정권 자체의 '불법성'을 면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법원은 "쿠데타 정권의 합법성과 쿠데타 행위 자체의 범죄성의 문제는 구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쿠데타 정권이 전면적이든 부분적이든 합법성을 부여받는다고 해서 쿠데타 정권을 탄생시킨 반란의 범죄 행위적 본질이 소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기존의 헌법과 법률은 쿠데타가 비록 성공해도 그 효력을 잃는 일이 없다. 따라서 기존 법률에 따라 쿠데타가 반란이나 내란에 해당해 범죄가 된다면, 쿠데타 정권이 합법성을 부여받는다고 해서 '범죄'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영화 '서울의 봄' 스틸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왜 그동안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성공한 쿠데타의 경우에도 쿠데타 행위 자체는 범죄로서 마땅히 처벌돼야 한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쿠데타가 처벌되지 않은 것은 왜일까.
 
법원은 "법을 집행하는 사람의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원래 법을 집행하는 것은 사람인데, 법을 집행하는 사람의 힘이 집행대상자(반란군)의 힘을 제압할 정도로 우세해야 법은 집행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집행대상자의 힘이 법집행기관의 힘과 대등하거나 오히려 우세한 경우에는 법의 집행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법원은 "성공한 쿠데타의 처벌 문제는 법의 효력이나 법의 이론의 문제가 아니라 법 집행의 문제인 것이고 바꾸어 말하면, 이론의 문제가 아니라 실천의 문제"라고 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처럼, 영화 속 전두광이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이라고 한 것도, 16세기 영국 작가 존 해링턴이 "반역은 절대 성공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성공하면 아무도 감히 그것을 반역이라고 부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실제로 전두환씨가 집권한 1980~1988년에 이어 노태우 정권인 1988~1993년까지는 판결문에서 말하는 집행대상자들이 권력을 잡은 까닭에 처벌은커녕 법의 판단조차 받을 수 없었다. 그러나 1993년 문민정부가 들어선 후 사회 곳곳에서 5·18 민주화운동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며 '성공한 쿠데타'가 법의 심판대에 오르게 된 것이다.

영화 '서울의 봄' 스틸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성공한 쿠데타도 처벌할 수 '있다'

 
법원은 1979년 12월 12일 당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체포 행위는 반란이며, 병력동원 역시 반란이며 정당방위가 아니라는 점 등 불법성을 인정했다. 또한 영화에도 등장하듯이 반란군 본부인 30경비단을 공격해 반란을 진압하려고 한 수경사령관 이태신(정우성/실제 인물 장태완)의 조치는 정당한 직무집행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처럼 법원은 12·12 군사반란은 당시 사회 상황, 전개 전후 과정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할 때 혁명이 아닌 '군사 쿠데타'(coup d'État·국민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무력 등의 비합법적인 수단으로 정권을 빼앗으려고 일으키는 정변)로 봤다.
 
12·12 군사반란 이틀 후인 1979년 12월 14일 서울 보안사령부에서 기념 촬영한 12·12 주역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
'서울의 봄' 속 전두광은 마지막에 이태신까지 제압하며 반란에 성공했고, 권력을 쥐었다는 사실에 감격해 화장실에서 주체할 수 없다는 듯 웃음을 터트린다. 전두광에게 1979년 12월 12일은 '성공한 혁명'으로 기억됐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법원은 "피고인들이 일으킨 반란과 내란이 성공한 쿠데타에 해당해 처벌될 수 없다는 법리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고 따라서 이와 다른 피고인들의 주장은 이유 없다"며 "피고인 전두환을 무기징역에, 피고인 노태우를 징역 17년"에 처한다고 판결했다. 이러한 법의 기록은 '성공한 쿠데타도 처벌할 수 있다'는 기억으로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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