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국민들의 민원서류 발급을 올스톱시켰던 행정전산망 마비 사태 이후에도 크고 작은 국가기관 전산망 오류와 장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자며 노력했고 실제 인터넷 강국, 디지털 강국이라는 평가에 흐뭇해했던 국민이나 정부 모두 크게 실망했다.
한때 대한민국은 정보통신(ICT)분야에 있어서 만큼은 세계적 테스트 베드로 통했다. 한국 시장에서 팔리면 세계시장에서도 통한다는 게 정설이었다.
일부 역효과에 대한 우려도 있지만 시골의 80대 노인들도 핸드폰으로 뉴스와 영상물을 주고받고 고령층에게는 짜증날 수 있는 키오스크(무인단말기) 사용 방법을 지방자치단체가 앞장서 가르쳐 주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그런면에서 사흘간이나 먹통이 됐던 행정전산망과 주민등록시스템, 조달청 나라장터, 모바일 신분증, 서울종합방재센터의 차량동태관리시스템 등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는 전산망 먹통은 디지털 강국, 디지털 정부라는 국격에 깊은 생채기를 남겼다.
정부가 25일 행정전산망 먹통 사태의 원인을 네트워크 장비인 '라우터'의 포트 불량에 따른 것으로 결론 냈지만 이 원인을 찾는데 1주일 넘게 결렸고, 하드웨어에 불과한 일부 장비의 물리적 손상을 막지 못해 초유의 국가 전산망 마비사태를 일으킨 것이냐는 비판과 논란이 제기된다.
당초 공무원 인증과 관련된 L4장비에 문제가 생겼고, 업데이트 이전 상태로 되돌리는 롤백(roll back) 작업을 해도 장애가 나타나 L4장비 교체를 통해 시스템을 복구했다는 설명도 바뀌었다.
결국 전산 시스템을 총괄 관리해온 행안부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이나 유지·보수업무를 맡아온 업체에서 라우터 손상을 사전에 감지했더라면, 전산망 마비라는 초유의 사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평소 점검을 꼼꼼히 하는데도 부품이 손상됐다면 왜, 언제, 어떻게 망가졌는지, 또 이전에 비슷한 불량 사례가 있는지 설명을 내놔야 하는데 정부는 이에 대한 설명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일각에는 정부가 그나마 파장이 적고 해결이 용이한 하드웨어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나 중요한 소프트 웨어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남아 있다.
장애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이 시스템 개발 때부터 고려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공교롭게도 이번 사태는 이상민 행안부 장관이 디지털 정부 성과를 알리기 위한 해외 출장 중에 터졌다.
출장 중 조기 귀국했던 이 장관은 행정전산망이 재가동되긴 했지만 사고 원인도 규명되지 않은 불안한 상황에서 귀국 사흘만에 다시 영국 출장길에 올랐다.
영국 내각부 장관과 디지털 정부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한다는 명분이었지만 디지털 행정에 큰 구멍이 뚫렸는데, 하물며 왜 뚫렸는지도 모르는데 자화자찬 성격의 디지털 정부 홍보에만 치중하는 듯한 모습으로 비춰졌다. 그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도 전산망 장애는 이어졌다.
모바일 신분증의 경우 23일부터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정부박람회에서도 홍보 차원에서 현장 발급 서비스가 진행됐으나 서비스 장애로 발급이 중단되면서 디지털 정부의 체면이 구겨지기도 했다.
전산망 정기 점검은 물론 운용 및 오류 대응 매뉴얼과 이중화된 오류 복구 시스템 등 인프라가 단단하게 구축돼 있어야 하는데 정부가 이런 내실을 기하는데는 소홀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지난 23일부터 25일까지 부산에서 진행된 정부 박람회는 디지털정부의 혁신 성과를 알리는데 초점이 맞춰졌었다. 테마는 '더 편안하고 안전한 사회!'였다.
디지털이 잘 활용되면 편안하고 안전한 사회가 오지만, 기본이 무시되면 '디지털 재난'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많다. 명실상부한 디지털 강국을 위해 정부가 다시 신발끈을 고쳐 매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