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앨범에서든 확실한 콘셉트와 팀 색이 두드러지는 음악을 선보인 레드벨벳. 무척 오랜만에 내는 '정규앨범'인 만큼 '청자'의 기대치 역시 높았다. '고요함을 깨뜨리는 사건이나 존재'라는 의미로 지은 앨범 제목 '칠 킬'처럼, 긴 공백기를 깨고 등장한 이번 앨범에는 신곡 총 10곡이 담겼다.
동명의 타이틀곡 '칠 킬'은 과감한 베이스 무빙과 스트링 선율, 화려하고 몽환적인 신스와 벨 사운드를 중심에 두고 극적이고 변칙적인 조화를 꾀한 팝 댄스곡이다. 비극 속에서도 상대를 갈구하며 희망을 노래한다는 점에서,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는 이 곡을 '밝은 비극'이라 표현한 바 있다. 켄지(KENZIE)와 스웨덴 프로듀싱팀 문샤인(Moonshine)의 합작이다.
달콤하고도 아찔한 꿈속의 술래잡기에 빠져드는 순간을 오싹하게 담아낸 댄스곡 '노크 노크'(Knock Knock)(후즈 데어?)(Who's There?), 나만이 줄 수 있는 무한한 사랑을 아득하고 깊은 물 속에 비유한 슬로우 템포 알앤비곡 '언더워터'(Underwater),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가는 대상들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윌 아이 에버 씨 유 어게인?'(Will I Ever See You Again), 긴 밤이 찾아와도 우리가 함께하며 반짝이던 순간들을 기억한다면 악몽은 사라지고 다시 밝은 아침이 찾아올 것이라는 미디움 템포 알앤비 '나이트메어'(Nightmare)도 수록됐다.
CBS노컷뉴스는 레드벨벳 정규 3집 '칠 킬'을 조금 더 세밀하게 뜯어보았다. 이번 서면 인터뷰는 SM엔터테인먼트에서 레드벨벳을 담당하는 레드 프로덕션(3센터)의 A&R 부문 정지영 리더가 답변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1. '칠 킬'은 동명의 타이틀곡을 포함한 음악만큼이나 앨범의 콘셉트 자체로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이번 앨범은 콘셉트부터 정하고 음악을 선별했는지, 아니면 음악이 정해진 다음에 콘셉트를 구상했는지 궁금합니다.
정지영 리더 : 시즌성 앨범 같은 특수한 경우 외에는, 보통 후자와 같이 주요 곡을 선정한 후에 콘셉트와 테마들을 구체화해 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번 앨범도 타이틀곡의 가사까지 완성된 후에 음악 외의 콘셉트를 구체화하는 과정으로 진행되었는데요. 꽤 오랜 시간 고민해 온 앨범인 만큼 어떤 테마는 제작 담당자들끼리 선곡보다 먼저 논의하고 실제로 반영되기도 했습니다.
정지영 리더 : 이번 정규 3집은 레드벨벳이 가장 잘하고, 레드벨벳만 할 수 있는 음악을 보여주는 동시에 팀의 고유성을 지키면서도 그 안에서 새로운 변주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기존에 레드벨벳이 해온 어떤 틀에도 갇히지 말고 모두 열어놓고 새로운 아이디어로 작업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곡이 '칠 킬'이었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레드'와 '벨벳' 컬러를 모두 담아낸 곡으로 곡의 전개나 사운드 모두 신선하게 느껴졌고, 예측 불가능하지만 기분 좋은 반전을 준다는 점에서 레드벨벳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곡이라 생각했습니다. 잘하는 것과 새로운 시도 사이에서 고민이 많던 멤버들도 레드벨벳만 할 수 있는 곡이라는 의견에 적극 공감하며 타이틀 곡으로 최종 선정되었습니다.
3. 이제 더 이상 앨범을 순서대로 듣지 않는 시대라고는 하지만, '만드는' 입장에서는 곡을 배치한 순서에도 마땅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칠 킬' 수록곡을 추리고 순서를 정할 때 가장 수월했던 점과 가장 까다로웠던 점이 무엇일까요?
정지영 리더 : 특정 음악 장르나 스타일, 음역에 크게 제한받지 않는다는 게 레드벨벳의 큰 장점 중 하나라 생각합니다. 음악적으로 선택의 폭이 넓다는 점에서 A&R로서 곡을 구성하는 재미가 있고 여전히 해보고 싶고 할 수 있는 게 많은 팀이지만, 새로운 시도에 치우치지도 이전의 스타일대로만 해서도 안 된다는 생각에 그만큼 고민이 많아지기도 합니다.
특히 오랜만에 10곡을 채워서 내는 정규 앨범인 만큼, 그사이 더욱 성장한 멤버들의 역량을 가늠하면서 이번 앨범을 통해 어떤 음악적인 성장을 보여줄지에 답을 찾는 과정이 가장 어려웠고 오래 고민했습니다.
개인적으로 트랙 순서가 앨범의 인상과 감상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해서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인데요. 비슷한 무드가 몰리진 않았는지, 갑자기 튀어나오는 곡은 없는지 곡의 전체적인 흐름 외에도 가사의 연결성, 반복 재생했을 때 첫 곡과 마지막 곡이 이어지는 흐름은 괜찮은지 등 여러 요소를 고려해 트랙 리스트를 5~6개씩 짜 보며 정리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정지영 리더 : 자랑이라면 전곡을 말씀드릴 수 있지만 ㅎㅎ 몇 가지 포인트만 말씀드리면요.
오랜만의 정규 앨범이라 그동안 콘셉트나 여러 이유로 아껴두었던 곡들을 담은 만큼, 주요 곡 후보였거나 실제 타이틀 곡으로 준비하던 곡들도 여럿 수록되었습니다. 특히 벨벳 음악의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곡으로 '노크 노크', 압도적인 트랙 사운드를 자랑하는 '윌 아이 에버 씨 유 어게인?'을 강력 추천합니다.
전반부 1~5번 트랙은 의도했던 앨범의 컬러가 짙게 드러나는 구간이라 애정이 많이 가는데, 전 곡을 다 듣기 힘들다면 이 곡들만큼은 꼭 들어보시길 추천합니다!
이번 앨범을 준비하며 멤버들과 기존 파트 구성과는 다르게 시도해 보자는 얘기를 나눴고, 새로운 스타일의 파트 분배로 의외성을 주면서도 완성도를 높이려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그중에서 결과물을 듣고 가장 만족했던 곡으로 '칠 킬' '언더워터' '원 키스' 3곡을 꼽을 수 있는데요. 들어보시면 색다른 파트 구성은 물론, 멤버 모두 가창력과 표현력이 더 섬세하고 풍부해진 걸 느낄 수 있습니다.
(참고로 '원 키스' 브리지 섹션에서 조이가 폭발적인 가창력을 보여주는데, 녹음 현장에서 웬디가 즉석에 화성을 넣어 부른 고음 애드리브가 이 곡의 숨은 킬링 포인트입니다!)
마지막으로 가사를 자랑하고 싶은 곡으로는 '윙스'를 추천합니다. 그중에서도 2절 웬디 파트의 가사 '가끔은 멀리 도는 길이 멋진 여행길이 되니까'를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데요, 담백하고 따뜻한 위로와 응원을 담은 가사라 겨울 내내 따뜻하게 들을 수 있는 곡이라 생각합니다 ㅎㅎ
정지영 리더 : 이번 제작 과정에서 다 같이 가장 신경 쓴 요소 중 하나가 '유기성'인데요, 음악뿐만 아니라 앨범과 관련된 모든 콘텐츠까지 포함해 하나의 작품으로 보였으면 했습니다. 음악을 티징하는 방식도 좋은 가사를 보여주고 다른 콘텐츠들과 스토리가 연결되어 연쇄적인 궁금증을 갖게 하면 재밌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마치 영화 같은 이번 뮤직비디오와 트레일러의 프리퀄 개념으로 설정하고, 트랙 순서를 재배치하고 짧은 글로 더 많은 이야기를 암시하는 '힌트 픽션' 형식을 장치 삼아 각 곡의 포인트 가사를 활용해서 하나의 짧은 서사로 연결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전 곡이 모든 서사를 하나의 작품으로 묶어주는 주제곡이라는 의미에서 '사운드트랙'이라는 제목을 붙이게 되었습니다.
※ 레드벨벳 정규 3집 '칠 킬' 제작기 ② 비주얼과 뮤직비디오 편은 오전 9시에 공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