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정여행(fair travel)이란? |
| 우리가 여행에서 쓰는 돈이 그 지역과 공동체의 사람들에게 직접 전달되는 여행, 우리의 여행을 통해 숲이 지켜지고, 사라져가는 동물들이 살아나는 여행,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고 경험하는 여행, 여행하는 이와 여행자를 맞이하는 이가 서로를 성장하게 하는 여행, 쓰고 버리는 소비가 아닌 관계의 여행이다. - 이매진피스 임영신·이혜영의 <희망을 여행하라> |
그곳의 눈부신 하늘과 바다 곁에서 누린 6일간의 값진 행복. 페어플레이를 지킨 ''희망여행 보고서''를 지금 시작한다.
◈6월29일 PM 7:00 출발 ''13시간 바다를 건너다''
공정여행을 위한 실천 하나! 이번 여행은 ''탄소 배출 0%''를 지향하며 대륙간 이동은 배로, 제주도 현지에서는 오로지 자전거만을 사용하기로 했다.
첫 번째 난관은 집에서 인천여객터미널까지 자전거와 함께 이동하는 것. 정부가 앞장서 온국민의 자전거 이용을 독려하고 있지만, 자전거 이용객들을 위한 편의시설은 아직 미흡한 것이 현실이다. 군데군데 끊어진 자전거도로뿐 아니라 지하철, 버스 등 공공시설에 자전거를 싣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것도 그 한 예다.
역무원들의 배려로 휠체어 비상문과 엘리베이터 등을 이용할 수 있었지만, 의외의 복병은 환승을 위해 통과해야 하는 가파르고 긴 계단과 일반승객들의 불편한 시선이었다. 평일 이른 오후 지하철 이용객들이 많지 않아 다행이었지만 출퇴근 시각이라면 아마도 엄두를 낼 수 없었을 것이다.
우려했던 것보단 손쉽게 동인천역에 도착. 그러나 여객터미널까지 버스를 타는 것은 포기해야 했다. 부두로 가는 12번, 24번 버스가 있었지만 승객이 거의 없는 저상버스임에도 자전거를 실을 수 없다는 기사 분들의 단호함 때문이었다. 하지만 자전거의 최대장점은 두 다리를 동력 삼는 자연바람과 체증으로부터의 자유로움! 그 결과 버스를 이용한 일행들보다 15분 일찍 도착할 수 있었다.
운임료는 평일 할인율 20%를 적용해 2등 침대실은 7만 700원, 3등실은 5만 2300원이다. 저가항공사와 맞먹는 비용에다, 시간은 13배 이상 걸리므로 심각한 고소공포증을 앓고 있지 않다면 이것 역시 쉽지 않은 선택일 것이다.
그러나 공정여행을 결심했다면, 비행기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가 전세계 이산화탄소 발생량의 약 3%를 차지하며, 높은 고도에서 뿜어져나온 그것이 지상에서보다 지구온난화에 3배 이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기억하자.
게다가 여행자를 오래도록 배웅해주는 갈매기떼와, 노을로 물든 바다 위에서 즐기는 캔맥주 한잔의 여유, 한밤의 칠흙 같은 어둠과 마주하는 고요, 다시 선상 위에서 만나는 세상의 아침은 배를 이용함으로써 얻는 특별한 선물임을 미리 알려주겠다.
한껏 숙면을 취하고 눈을 뜬 아침, 밤새 비가 내려 해는 보이지 않았지만 사위는 벌써 밝아 있었다. 갑판 위로 나가니 물안개 자욱한 바다 저 너머로 제주도의 옅은 실루엣이 보이기 시작했다.
약 30분이 지연돼 제주도에 도착한 것은 출발 14시간 만인 오전 9시.
원래 지난 금요일 출발하려다 사흘간 비가 내릴 것이라는 현지 분의 조언으로 미뤘는데, 마음 만큼 변덕스러운 것이 제주 날씨라 비를 피하는 데는 결국 실패했다.
하지만 3년 전 제주 전역에 태풍경보가 내린 가운데서도 필자가 비를 만난 건 섬에 머문 보름 중 단 하루. 게다가 다소 날씨가 흐릴 때 제주의 천연절경이 빛을 발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맞아도 무방할 정도의 비는 여행자에게 보내는 제주의 인사쯤으로 여기면 그만이다.
공정여행 실천 두울! 음식점과 숙소 등은 현지인이 운영하는 곳을 선택한다. 이를 통해 여행자들이 소비하는 돈이 현지인에 직접 전달되고, 지역발전에 한층 도움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하자.
숙소는 제주연안여객터미널에서 걸어서 3분 거리에 있는 ''친절민박''
여장을 풀고 내려오자, 이 할아버지는 제주 토박이답게 꼭 가봐야 할 현지 명소들과 인근 맛집들을 전문 가이드 못지 않게 설명해주셨다. 그 사이 떠날 채비를 마친 또다른 젊은 여행객들이 할아버지께 인사를 건넸고, 방금 전까지 명랑하시던 할아버지는 갑작스레 밀려드는 서운함에 그들의 등을 몇 번이나 쓰러주시며 "잘 가라"고 화답했다.
"40년 넘게 이걸(민박) 해도 4-5일씩 머물다 가면 내가 마음이 찡해" 하시는 할아버지 때문에 코끝이 시큰해졌지만, 곧이어 "눈물이 핑도네요 정말로~" 를 손박자까지 넣어 구성지게 불러 제치시는 바람에 따라서 웃고 말았다.
◈용두암에서 중엄리 전망대까지 ''맛배기 라이딩''
청양고추 팍팍 썰어넣고, 고추장 양념에 맛갈스럽게 버무려낸 매콤한 제육볶음에 구수한 청국장까지, 푸짐한 아침식사를 마치고 터미널에서 서쪽 방향으로 가볍게 자전거 라이딩을 시작했다.
하체까지 가려주는 2천 원짜리 우비 한 장은 필수, 속도는 평소의 1/2 정도. 젖은 도로에서 미끄러짐은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으니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숙소에서 나와 곧장 해안도로로 들어서면 아찔한 높이의 용연 구름다리를 만나고, 다시 알록달록한 화분 테마거리를 지나면 여의주를 훔친 죄로 몸통은 땅 속에 갇히고 머리만이 나와 있다는 용두암에 다다른다.
오디세우스의 영혼이 비 내리는 바다를 응시하며 3천2백여 년 전의 ''짜릿한 승리''를 회상하고 있을까. 밤이 되어 사람마을이 모두 잠들면, 두 마리의 목마는 고향인 지중해로 잠시 날아갔다 다시 오는 것일까. 거칠 것 없는 상상을 즐기며 아무도 없는 백사장을 달려가 바닷물에 두 발을 적시고 다시 자전거 위에 올랐다.
옛부터 물이 귀한 제주에서는 땅속으로 흘러내려와 바닷가에서 샘솟는 용천수가 나는 곳에 자연히 취락이 형성되었는데, 주민들은 힘을 합쳐 용천수가 나는 곳에 돌벽을 쌓고 식수원과 빨래터, 목욕탕 등으로 이용했다.
이러한 흔적들은 제주 전역에서 볼 수 있는데, 최소 300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알려진 사수마을의 경우 1979년 제주국제공항 확장공사로 사라졌고, 현재는 뿔뿔이 흩어져 살던 주민들이 용담-도두 해안도로 엉물언덕에 1999년에 설치한 몰래물향우회기념비와 바로 옆 빨래터가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
용암이 흘러 만들어낸 특유의 지형과 바다가 어우러져 만든 제주 풍광은 봐도봐도 지치지 않는다. 비에 바지가 흠뻑 젖고, 땀에 젖은 우비가 양팔에 찰싹 들러붙었지만 여정은 달콤하기만 했다. 돌아오는 길, 맨몸으로 비를 홀딱 맞은 일행 한 명이 체력 고갈을 호소해 할 수 없이 히치하이킹을 했다(여행에서 오기는 금물!).
저녁식사를 겸해 푸짐한 치킨과 시원한 맥주로 4박5일간의 제주 무사완주를 기원하는 것으로 이날의 여정은 끝이 났다.
◈오늘의 공정여행 일지
1. 이산화탄소로 인한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비행기 대신 배를 이용했습니다. 2. 역시 같은 이유로 자동차 대신 자전거를 이용했습니다. 이 친환경적인 교통수단의 장점은 운반하는 과정에서 겪은 약간의 수고로움과는 비교할 바가 아님을 앞으로의 여정이 증명해줄 것입니다. 3. 여행 중 쓰는 돈이 현지 거주민에 직접적인 이득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현지인이 운영하는 숙박집과 음식점 등을 적극 이용하였습니다. 4. 일회용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출발 전 4천100원 짜리 물통을 준비했습니다. 하루 평균 7-8통 물 섭취. 여행기간을 총 합하면 상당한 경비와 쓰레기 절감효과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