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소송' 2심서 승소로 뒤집혀…"日불법, '국가면제' 불가"

이용수 할머니 등이 日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1심 '각하 판결' 뒤집고 2심에서 '승소'
국가면제 앞세우며 각하 판결한 1심 재판부
2심 재판부 "불법행위는 국가면제 대상 아니다"
일본 불법행위도 인정

이용수 할머니와 고(故) 곽예남·김복동 할머니 유족 등 15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국내 법원에 제기한 2차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항소심 재판부가 '각하'로 판단한 1심을 취소하고 청구 금액을 전부 인정한다고 밝힌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이용수 할머니가 법정을 나서며 만세를 부르고 있다. 황진환 기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을 상대로 국내 법원에 제기한 2차 손해배상 소송의 항소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이 나왔다.

1심 재판부는 '국가면제'를 이유로 소송을 각하했지만, 2심 재판부는 불법행위에 대해선 국가면제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국제관습법의 흐름이라며 1심 판결을 취소하고 직접 위안부 피해자 승소 판결했다.

"불법행위엔 국가면제 적용 안 돼"…1심 판결 취소한 2심 재판부

연합뉴스

서울고법 민사합의33부(구회근 부장판사)는 23일 이용수 할머니와 고(故) 곽예남·김복동 할머니 유족 등 16명이 일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1심 판결을 취소하고, 일본의 불법행위를 인정한다"라며 피해자들이 청구한 각 2억 원의 손해배상 금액을 모두 인정했다.

앞서 1심 재판부는 지난 2021년 4월, '국가면제' 원칙을 내세우며 피해자들의 청구를 각하했다. 국가 면제란 모든 주권 국가는 다른 나라 법원에서 재판받지 않는다는 국제 관습법이다. 1심 재판부는 "다른 나라 국가인 피고를 상대로 그 주권적 행위에 대해 손해배상청구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라고 봤다.
 
2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국가면제를 적용하지 않는 것이 국제관습법의 흐름이라고 본 것이다.

2심 재판부는 "법정지국(이 사건에서 대한민국) 영토 내에서 그 법정지국 국민에 대해 발생한 불법행위에 대해선 그 행위가 주권적 행위인지 여부와 무관하게 국가면제를 인정하지 않는 내용의 국제 관습법이 존재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라고 판단했다.

이어 "UN 국가면제 협약과 유럽 국가면제 협약 및 미국, 영국, 일본 등 다수 국가의 국내법 입법 내용에 더해 법정지국 영토 내에서 사망이나 상해를 야기하는 등의 불법행위에 관해서는 가해 국가의 국가면제를 인정하지 않는 내용의 국가 실행이 다수 확인된다"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 사례로 △이탈리아 법원의 페리니 판결 △브라질 최고재판소의 Changri-la 판결 △2022년 4월 선고된 우크라이나 대법원 판결 등을 언급했다.

재판부 "일본의 불법행위도 인정"…손해배상 판결

평화의 소녀상. 송호재 기자

1930~40년대 당시 일본이 저지른 불법행위는 국가면제 대상이 아니라며 1심 판결을 취소한 재판부는 일본의 불법행위 자체도 인정하며 손해배상을 명령했다. 재판부는 1심에서 본안 판결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재판 심리가 이뤄진 만큼, 민사소송법에 따라 1심 법원에 환송하지 않고 직접 판결을 선고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피고(일본)는 당시 10, 20대에 불과했던 피해자들을 기망, 유인하거나 강제로 납치해 위안부로 동원했다"라며 "최소한의 자유조차 억압당한 채 매일 수십 명의 피고 군인들로부터 원치 않는 성행위를 강요당했고, 그 결과  무수한 상해를 입거나 임신·죽음의 위험까지 감수해야 했다. 종전 이후에도 정상적인 범주의 사회생활에 적응할 수 없는 손해를 입었다"라고 판단했다.

이어 "피고의 전신인 일본제국도 피고의 현행 헌법 제98조 제2항에 따라 피고가 체결한 조약 및 국제 법규를 성실하게 준수할 의무가 있는데, 피고의 이런 행위는 피고가 당시 가입했던 국제 협약을 위반한 것"이라며 "당시 일본제국 공무원들은 피고의 구 형법 제226조에서 금지하는 '국외 이송 목적 약취· 유인·매매' 행위를 했고, 일본제국 정부는 이를 적극적으로 조장하거나 방조했다"라고 지적했다.

강제동원 등 다른 재판 등에서 일본이 앞세웠던 한일청구권 협정에 따라 손해배상 청구권 등이 소멸됐다는 주장 등에 대해서 재판부는 "손해배상 청구권 소멸 여부 문제, 소멸시효 완성 문제가 쟁점이지만 일본 측에서 항변이 없어서 따로 판단하지 않았다"라고 설명했다.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와 고(故) 곽예남·김복동 할머니 유족 등 15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국내 법원에 제기한 2차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항소심 재판부가 '각하'로 판단한 1심을 취소하고 청구 금액을 전부 인정한다고 밝힌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이용수 할머니가 법정을 나서며 만세를 부르고 있다. 황진환 기자

판결 직후 이용수 할머니는 만세를 외치며 눈물을 흘렸다. 이 할머니는 "감사하다. 감사하다. 정말 감사하다. 하늘에 계신 할머니들도 내가 모시고 감사를 드린다"라고 말했다.
 
한편 이 할머니 등이 낸 이번 손해배상 소송은 '2차 위안부 소송'으로 불린다.

고(故) 배춘희 할머니 등이 낸 '1차 위안부 소송'에서 1심 재판부는 2021년 1월 "일본의 불법행위에 국가면제를 적용할 수 없다"라고 판결하며 위안부 피해자들이 승소했다. 일본 정부가 무대응 원칙을 고수하면서 판결은 확정됐지만, 배상은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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