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위한 수요조사 결과를 발표한 이튿날 열린 의(醫)-정(政) 협상이 시작 10분 만에 중단되며 파행으로 치달았다.
대학별 희망 증원규모가 의대 정원의 결정 기준이 될 순 없다며 '강경 투쟁'을 예고한 의료계는 작심 발언으로 맹공을 이어갔고, 정부는 필수의료 현장의 구인난에도 의대 정원 확대를 반대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맞섰다.
22일 오후 4시 서울 중구 컨퍼런스하우스 달개비에서 18차 의료현안협의체 회의를 위해 대면한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의협)의 분위기는 냉랭했다. 전날 복지부가 전국 40개 대학을 대상으로 실시한 의대 증원규모 수요조사 결과를 전격 발표했기 때문이다.
의협 협상단장인 양동호 광주시의사회 대의원회 의장은 복지부 관계자들과 테이블에 마주앉은 직후 "(정부에서) '핵폭탄'을 날리셔서 우리 협상단의 입지를 좁게 만들었다"고 선공에 나섰다.
그러면서 "(의·정 협의체에서) 필수·지역의료를 정상화하는 방안을 충분히 논의한 다음에 허심탄회하게 대화하기로 했는데 조사결과를 발표했다"고 정부를 비난했다. 또 "이는 고양이(대학)한테 생선이 몇 마리씩 필요하냐고 묻는 것과 똑같다"며 수요조사의 정당성을 부정했다.
양 의장은 "일반 여론조사기관도 아닌, 국민이 신뢰하는 정부에서 논리적이지도 않고 비과학적인 조사결과를 발표하는 것은 여론몰이"라며 "(의대정원을 두고) 시장에서 물건 흥정하듯 하지 말고, 국민 건강을 위해 어떤 게 가장 올바른 방향인지 숫자를 다시 생각해봤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복지부가 교육부와 함께 조사한 바에 따르면, 대학들은 정부가 의대 확대 반영을 공언한 2025학년도 대학입시부터 최대 약 3천 명(2151명~2847명) 규모의 증원을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30년도 정원 확대 요구치는 2738명~3953명으로, 현재 18년째 동결 중인 '3058명'의 약 2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의협은 당일 복지부 브리핑 직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이대로 (의대 증원을) 강행하면 14만 의사들의 총의를 한데 모아 총파업도 불사할 것"이라고 강력 반발했다.
양 의장은 정부가 어떤 방안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의료현장과의 소통이 먼저 선행됐어야 한다며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또한 "전국의사대표자 회의에서 (대응 방안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의협은 오는 26일 오후 3시 '전국의사대표자 및 확대임원 연석회의'를 열고 정부의 의대정원 확대 추진 관련 대응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실질적 의대 증원을 위한 사전조사였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정경실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의대 정원을 늘리려면 학교에서 교육이 가능해야 하니까 진행한 기초 수준의 조사였다"며 "세부적으로 학교별 교직, 교원의 수, (전공의가) 수련받는 병원의 역량까지 조사했는데 이를 고려해야 정원을 늘릴 수 있는 것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모두발언 이후 비공개로 전환된 회의는 10여 분 만에 급하게 마무리됐다.
정 정책관은 이날 회의에 앞서 "이제 막 의대정원 증원의 첫발을 뗀 상황에서 벌써 의료계는 '총파업'과 '강경 투쟁'이란 단어를 언급하고 있어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병원의 인력이 부족하고, 수억 원 연봉으로도 의사를 구하기 어렵다고 호소하면서도 의대 정원을 늘리는 데 반대하는 모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밝혔다.
반면 양 의장은 "정부는 지난 6월 회의에서 적정한 의사인력 확충 방안은 과학적 근거에 기반을 두겠다고 약속했다"며 "정부가 의료계와의 소통을 거부하고 신중한 검토 없이 의대정원 정책을 강행하려 한다면 의료계는 최후의 수단을 동반한 강경 투쟁에 돌입할 수밖에 없다"고 맞받았다.
또 "정부는 의협을 필수·지역의료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공식적인 협상의 당사자로 생각하고(는) 있는가"라며 "의협은 '들러리'에 불과한가"라고 강하게 항의했다.
실제 파업 등 의료계가 단체행동에 들어갈 경우 뒤따를 "필수·지역의료의 붕괴와 의료공백으로 인한 국민 피해에 대한 모든 책임은 오롯이 정부에 있다"고도 덧붙였다.
한편,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도 이날 '정부는 주먹구구식 행정을 중단하라'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수요조사 발표에 유감을 표명했다.
대전협은 "정부는 이런 터무니없는 숫자를 토대로 의대 정원을 늘리겠다는 것인가"라며 "보건의료 분야는 노동집약적 특성이 강해 정확한 의사인력 수요 예측과 수급계획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학 교육이란 강의실만 키우고 의자만 하나 더 놓는다고 가능한 것이 아니다. 현재도 교육·실습 환경이 열악한 학교가 많다"며 "애당초 40개 의과대학이 적절한 교육 환경을 마련할 의지는 있는 것인지부터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정부는 학장들의 수요만 조사할 것이 아니라 이해 당사자인 의대생들의 의견에도 반드시 귀를 기울여야 한다"며 "만약 터무니없는 근거를 토대로 독단적 결정을 강행할 경우 대전협은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