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말 한 필과 개 한 마리, 윤석열과 장제원

주군으로부터 버림받을 위기에 처한 장제원
그래도 이런 방식과 시기는 아니다
마냥사냥하듯 토끼몰이하는 험지출마론은 실패작
지혜가 아쉬운 윤통의 읍참마속과 장제원의 토사구팽
권불삼년 '대통령은 떠나도 뺏지는 영원하다'

윤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이었던 지난해 3월 부산 사상구 이마트 앞에서 열린 유세에서 장제원, 하태경 의원과 함께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 현장에서 수많은 권력의 부침을 지켜본 사람들은 누구나 알 수 있었고 그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올 줄은 몰랐다. 장제원 의원이 정치적 고비에 섰다. 주군으로부터 버림받는 것을 넘어 정치생명 자체가 위험한 국면을 맞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장제원 의원은 굳이 윤핵관이라는 용어를 끌어오지 않더라도 윤석열 대통령의 최측근이다. 윤 대통령의 정치 입문 초기에 집을 드나들며 정치적 조언을 했고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를 이끌어냈다.
 
윤 대통령의 후보 시절 총괄상황실장을 맡았고 당선인 시절에는 비서실장을 지냈다. 대통령실을 구성할 때는 주도적 역할을 했다. 
 
호사가들은 삼성가노(三姓家奴)가 아니라 사성가노(四姓家奴)할 사람이라며 장제원을 견제했지만 아랑곳하지않고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위해 홍위병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26일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와 장제원 의원이 부산롯데호텔에서 열린 부산혁신포럼 2기 출범식에 참석해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던 두 사람 사이에 지난 봄부터 불협화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이른바 김장연대(김기현-장제원)로 장제원의 정치력을 보여줬지만 그게 화가 되기 시작했다.
 
원내대표 경선에서 장제원 의원은 과거 정치적 동지인 김학용 의원을 밀었다. 이어 지난달 당직개편에서는 사무총장직을 두고 대통령실의 의지와 엇나가는 행보로 한바탕 소동을 빚었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과 장제원 의원 사이의 신뢰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강서구청장 선거 결과가 모든 상황을 바꿔버렸다. 
 
당 개혁을 위한 혁신위원회가 뜨고 파란 눈의 의사 인요한이 얼굴로 왔다. 인요한 위원장은 중진과 지도부, 측근들을 향해 험지출마와 불출마를 공격적으로 요구했다. 윤 대통령이 "소신껏 거침없이 하라"고 했다는 메시지까지 공개했다. 
 
권력실세 장제원은 칼날 위에 설 수 밖에 없었다. "알량한 정치인생" "권력자가 뭐라고 해도 내 할 말 하고 산다"고 항변했지만 여의도 시선은 싸늘하고 대통령실은 외면하는 눈치다. 
 

장제원 의원은 부산 사상에서 3선 의원을 지냈지만 한번도 편하게 당선된 적이 없고 권력 핵심에 가본 적도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에는 많은 사람들이 예상한 것처럼 언젠가 자신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장제원 의원은 얼마전부터 주변에 윤 대통령에게 부담이 된다면 내년 총선 불출마도 감수하고 다른 역할을 하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그렇지만 지금 이런 방식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 힘 의원 중에 윤석열 대통령의 도움으로 당선된 의원은 한 명도 없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내년 총선은 '윤석열당'을 만들 좋은 기회다.
 
윤 대통령은 '민주당 보다 국민의 힘 물갈이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윤 대통령은 인요한 혁신위원회를 그 해결사로 내세웠다. 인요한 혁신위원회의 행보에 윤 대통령의 뜻이 담겼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장제원 의원은 물갈이의 상징적 대상으로 자신이 지목된 것은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고 하더라도 지금의 방식은 의리도 아니고 정치 도의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험지출마론이라는 정치공학적으로 현실성 없는 프레임으로 토끼몰이하는 용퇴 압박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이 11일 부산 외곽조직인 여원산악회 창립 15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모습. 장제원 페이스북 캡처

방식도 문제지만 공천관리위원회도 구성되지 않은 시점에서 마냥사냥하듯 하는 것은 어느 정치인도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다.
 
월나라 왕 구천을 위해 20여 년을 헌신한 범여는 오나라를 멸망시킨 뒤 구천의 간곡한 만류에도 떠난다. 떠나지 않는 같은 책사 문종은 자결을 명 받았다. 토사구팽(兎死狗烹)이다.
 
지금 장제원 의원의 처지가 딱 이렇다. 윤석열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읍참마속(泣斬馬謖)일 것이다. 호우시절(好雨時節)이라는 말이 있다. 좋은 비는 때를 알고 내린다는 뜻이다. 
 
지금 내리는 비는 단비가 아니라 홍수와 장마를 일으켜 윤석열 정권의 굳은 땅을 허물 수도 있다. 설령 김기현 대표와 장제원 의원이 불출마하거나 험지로 간다해도 뒤따를 중진과 측근들이 얼마나 더 있을지 의문이다. 
 
윤 대통령이 놓치고 있는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다. 아끼는 측근 한 명 쳐내는 것이 권력의 정당성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권력의 기반을 허물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장제원 의원은 평소에도 스스럼 없이 통화하거나 소통할 수 있는 관계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 대통령이 지금과 같은 상황을 '당에서 알아서 할 일이다'라는 식으로 모른체 하는 것은 정치 도의가 아니고 현명하지도 않다.
 
윤창원 기자·연합뉴스

총선을 앞둔 집권여당의 아름답지 못한 작금의 풍경을 토사구팽에 저항하는 측근의 몸무림으로 치부하면 안된다. 비록 말 한 필의 목숨이라도 명예와 명분이 중요하다.
 
윤 대통령이 장제원이라는 말 한 필의 목을 베어 '윤석열당'을 얻을 수도 있겠지만 명분있는 읍참(泣斬)이 되어야 한다.
 
오랫동안 정치현장을 지켜본 이들은 지금의 험지출마론은 집권여당을 더욱 험지로 몰아넣는 자충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하고 있다. 측근의 자발적 의지를 표출할 기회도 주지 않고 정치적 구호로 무작정 희생을 요구하는 것은 읍참마속이 아니라 토사구팽일 뿐이다. 
 
지금 윤석열 대통령의 읍참마속과 장제원의 토사구팽이라는 고전 영화를 지켜보는 많은 이들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대통령은 떠나도 뺏지는 영원하다' 윤 대통령이 새로운 측근들로 '윤석열당' 창조에 성공하더라도 그 충성의 수명은 3년 뿐이다. 
 
권불오년(權不五年)이 아니라 권불삼년(權不三年) 밖에 남지 않았다. 말 한 필과 개 한 마리의 목숨이라도 때와 방식을 가려 지혜롭게 거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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