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제1원전 오염수의 3차 방류가 진행 중인 가운데 실시간 모니터링을 위한 '한국어판 포털 서비스 부실'과 태평양도서국들의 '매년 오염수 점검회의' 제안 등이 도마에 올랐다. 지난 8월 24일 방류 시작 이후 약 3개월 간 안전 기준에서 큰 문제는 없었지만, 우리 정부가 외교적으로 지나치게 일본 측에 저자세를 보이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어판 '오염수 포털' 부실…약 한 달 반째 방치
19일 우리 정부와 포털 사이트, 외신 등에 따르면 도쿄전력이 운영 중인 오염수 포털 관련 한국어 서비스 관리 부실 문제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실시간 모니터링 자료가 담긴 '처리수(오염수의 일본 정부 명칭) 포털 서비스'는 한국어와 함께 일본어‧영어‧중국어 등 4개 국가 언어로 제공되고 있다. 그러나 질의‧응답(Q&A) 항목에서 일본어와 영어판은 26개로 구성됐지만 중국어‧한국어판은 9개에 불과한 상태다.
이에 대해 박구연 국무 1차장은 지난 16일 정례 브리핑에서 "질의응답(Q&A) 코너는 투명한 정보 공개라는 본래 취지대로 운영될 수 있도록 일본 측과 협의 중"이라며 "일본 측과 협의를 개시한 지난 10월 이후 공지사항은 이미 영어와 동일한 수준으로 관리되고 있다. 향후 질의응답 등 다른 정보에 대한 개선도 이뤄질 수 있도록 협의를 지속해나가겠다"고 밝힌 상태다.
정부가 추가 협의 의지를 드러냈지만, 문제는 지난달 5일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변재일 의원이 공개적으로 지적했음에도 불구하고 관리 부실이 약 45일 동안 방치되고 있다는 점이다. 도쿄전력 측이 이같은 문제를 이미 인지하고도 개선할 의지가 없는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정부 관계자는 "일본이 사후 업무 처리를 왜 이런 식으로 하는지 모르겠다"며 "오염수 방류에 우리 정부는 명시적으로 반대하거나 반발하지 않았는데 일본이 이렇게 대응하면서 우리 정부를 난감하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정부 관계자도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일본 입장에선 여러 나라 언어로 정보를 제공하는 게 일종의 '서비스'인 것 맞는데, 굳이 일본어와 영어는 26개 문답으로 해놓고 한국어와 중국어는 9개로 해놓는 건 의도적인 차별로 비춰질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Q&A, 일본어‧영어판은 26개…한국어‧중국어판은 9개?
실제로 처리수 포털 사이트 내 질의‧응답 항목을 살펴보면, 단순히 Q&A 숫자뿐만 아니라 내용적인 부분에서도 크게 차이가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Q&A는 4개 국가 언어 모두 큰 항목은 '오염수', '방사성 물질', '설비', 'ALPS 취급' 등 네 가지로 분류된 상태다. 그러나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Q&A 오염수 항목에서 일본어‧영어판은 4개의 질의응답으로 구성됐지만, 한국어‧중국어판은 1개다. '방사성 물질' 항목에선 일본어‧영어판은 9개나 되는 반면 한국어‧중국어판은 2개에 불과하다.
단순히 양적 측면에서 차이를 떠나 각 질문에 대한 답변의 내용도 다르다. 예를 들어 삼중수소(Tritium‧트리튬)를 설명하는 '방사성 물질'의 첫 번째 항목에서 일본어‧영어판은 일반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그림‧도표 자료와 함께 구체적인 링크까지 첨부됐지만, 한국어‧중국어판은 전체 9개 답변을 통틀어 단 1개의 도표 자료도 없는 상태다.
특히 일본 기업 도시바가 오염수 정화를 위해 만든 다핵종제거설비(ALPS‧알프스)의 경우, 지난 2021년 배기 필터 손상으로 논란이 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일본어‧영어판에선 2개의 질의‧응답을 통해 정보를 제공하고 있지만, 한국어‧중국어판에선 필터 손상 관련 답변을 아예 찾아볼 수 없다. 아울러 폐기물의 해양 투기를 규제하는 '런던 조약' 위반 관련 항목도 마찬가지로 일본어‧영어판에만 존재한다.
'오염수 반대 여론' 한국, 중국 의식했나…의도적 차별 지적
질의‧응답의 항목 개수를 단순히 26개에서 9개로 줄인 게 아니라 내용적으로 개별 질문과 답변이 다르게 구성된 점을 고려하면, '오염수 방류' 반대 여론이 높았던 인접국인 한국과 중국을 의식해 일본 입장에서 자신들에게 다소 불리한 질의‧응답을 의도적으로 배제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IT 전문가들은 홈페이지 관리 측면에서 동일한 포맷으로 4개 국가 언어로 번역하는 게 가장 수월한 방식임에도 불구하고, Q&A가 굳이 다른 형태로 구성된 데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홈페이지 관리 전문인 IT 업체 대표는 통화에서 "24개의 질의‧응답 항목을 9개로 바꾸려면 어쨌든 손이 한 번이라도 가게 된다"며 "다분히 의도가 있는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IT 전문가도 "귀찮아서 관리를 안 했다면 소위 '복사해서 붙이기'가 가장 쉬운데, 그게 아니라 내용이 바뀐 거라면 의도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이번 논란이 단순히 도교전력 측의 관리 부실이 아닌 의도적인 차별에 가깝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정부‧여당 내 관계자도 통화에서 "일본이 여전히 미국을 대등한 외교 상대로 보고, 아시아 국가들은 자신들의 아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며 "오염수 방류는 막을 수 없는 사안이었지만 외교적 대응은 아쉬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세정수 용량 정정 문제에 '오염수 매년 점검회의'까지 도마
최근 알프스 배관 청소 중 분출된 세정수 용량 정정 문제도 논란이 됐다.
외신에 따르면 도쿄전력은 지난 16일 지난달 말 원전 배관 작업 중 방사성 폐수가 유출된 사태에 대해 "해당 배관 작업은 원래 예정에 없었는데 규칙이 지켜지지 않았다"며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도쿄전력은 외주 직원인 작업자에게 분출된 폐수 용량이 당초 100밀리리터(mL) 안팎이라고 발표했다가, 이후 수십 배에 해당하는 '수 리터(L)'라고 정정했다.
이처럼 포털 관리 부실과 함께 세정수 분출양 정정 등 논란이 이어지면서 태평양도서국들 사이에선 오염수 점검을 위해 매년 회의를 개최하자는 제안이 나왔지만, 우리 정부는 동참 여부에 부정적인 의사를 보였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지난 10일 태평양도서국포럼(PIF) 정상회의에서 회원국들은 공동성명에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모니터링에 기반한 대화를 매년 개최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해당 회의 참여 또는 권고 여부에 대해 박성훈 해수부 차관은 지난 14일 브리핑에서 "태평양도서국과 우리나라는 공동 모니터링 계획을 갖고 있다"며 "이 계획이 우리가 생각한 대로 차질 없이 진행된다면 아마 PIF 국가의 이런 모니터링은 굳이 지금 단계로서는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라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