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로 기소돼 징역 5년이 구형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합병 과정에서 저 개인의 이익을 염두에 둔 적이 없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다만 함께 기소된 그룹 임원들에게 잘못이 있다면 그건 자신이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말하며 울먹였다.
이 회장은 1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박정제 지귀연 박정길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 결심 공판의 최후진술에서 "더욱이 제 지분을 늘리기 위해 다른 주주분들에게 피해를 입힌다는 생각은 맹세코 상상조차 한 적이 없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 회장은 이날 오전 10시에 시작된 결심공판이 8시간을 넘어선 오후 6시 39분쯤 형사소송법에 보장된 피고인의 최후진술에 나섰다. 정장 차림에 보라색 점이 찍힌 넥타이를 맨 이 회장은 이날 오전 검찰 구형과 오후 변호인들의 최후변론 때는 가끔 하품을 하거나 물을 마시는 등 다소 지루해 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최후진술을 하면서부터는 떨리는 목소리로 긴장된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이 회장은 먼저 3년 2개월 동안 106차례 공판을 진행한 재판부를 비롯해 사건 관계인에 감사를 표한 뒤 "삼성 가족과 주주, 국민 여러분께 많은 심려를 끼쳤다. 면목이 없다"는 말로 최후진술을 시작했다.
이 회장은 "저와 다른 피고인들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두 회사 모두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고, 지배구조를 투명화하고 단순화하라는 사회 전반의 요구에도 부응하는 것이라 생각했다"며 검찰이 적용한 부당 합병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면서 "재판장님과 두 분 부장판사 앞에서 검사들이 주장하는 다른 주주들에게 피해를 입힌다든가, 다른 주주를 속인다든가 하는 그런 의도는 결단코 없었던 것만은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삼성이 진정한 초일류기업, 국민의 사랑 받는 기업으로 거듭나도록 하겠다"며 "부디 저의 모든 역량을 온전히 앞으로 나아가는 데만 집중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시길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약 9분의 최후 변론 말미에는 "오랜 기간 재판을 받으면서 제 옆에 계신 피고인 분들께 늘 미안하고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만약 이 사건에 대해 법의 엄격한 잣대로 책임을 물어야 할 잘못이 있다면 그건 제가 감당해야 할 몫"이라며 "평생 회사를 위해 헌신해온 다른 피고인들을 선처해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이 대목에서 약간 울먹이기도 했다.
이 회장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의 자본시장법 위반과 업무상 배임 혐의로 2020년 9월 기소됐다. 경영권 승계를 위해 옛 미래전략실 임원을 중심으로 조직적으로 부당 합병과 회계 부정이 이뤄졌다고 검찰은 보고 있다.
검찰은 이날 이 회장에게 징역 5년에 벌금 5억원을 구형했다. 함께 재판에 넘겨진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미전실) 실장과 김종중 전 미전실 전략팀장에게는 각각 징역 4년6개월에 벌금 5억원을 선고해 달라고 요청했다.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에게는 징역 3년에 벌금 1억원을 구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