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어진 공매도 운동장' 평탄화 추진안 발표…개미도, 전문가도 '냉랭'

당정, 공매도 금지 열흘 만에 '제도 개선안' 발표
개인 공매도 담보비율 120%→105% 인하 추진
기관·외국인 상환 기간 '90일+연장' 제한 방침
조건 일원화로 "기울어진 운동장 해소하겠다"
개인 투자자 일각 "일원화 방식 잘못돼…반쪽"
학계 일각 "애초에 기울어진 운동장 아냐" 비판도

국민의힘 유의동 정책위의장이 16일 국회에서 열린 공매도 제도개선 민당정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공매도 거래 시 개인과 기관·외국인의 대주·대차 상환 기간과 담보 비율을 일원화 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공매도 조건이 기관·외국인에 비해 불리하다는 개인 투자자들의 요구를 반영한 정부·여당의 결정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으라는 윤석열 대통령 지시의 후속 조치다.
 
거래 조건이 대부분 통일된다는 점에서 시장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의미 있는 결정이라는 긍정 평가도 나오지만 일부 개인 투자자들 사이에선 구체 내용을 놓고 "보여주기식 조치", 학계 일각에서도 "합리적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비판적 의견도 제기된다.
 

개인·기관 공매도 조건 일원화…"기울어진 운동장 해소 방안"

 정부와 국민의힘은 16일 시장 전문가들과 국회에서 협의회를 열어 공매도 조건 일원화를 비롯한 관련 제도 개선 방안에 의견을 모았다. 세부 내용을 보면, 개인 투자자가 공매도를 할 때 요구받는 현금 담보 비율이 빌린 주식 금액 대비 현행 120% 이상에서 기관·외국인과 같은 '105% 이상'으로 인하된다. 예컨대 100만 원 어치의 주식을 빌려 공매도할 경우 현재는 현금 20만 원을 담보로 제공해야하지만, 발표안대로 제도가 바뀌면 5만 원만 담보로 제공하면 된다는 것이다.
 
공매도를 위해 빌린 주식을 갚아야 하는 상환 기간은 기관·외국인의 경우 사실상 제한이 없었는데, 개인 투자자와 마찬가지로 90일에 만기 연장이 가능하도록 바뀐다. 기관·외국인에게만 적용돼왔던 '중도상환 요구'는 유지된다. 주식 대여자가 요구하면 갚아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개인 투자자에게는 최소 90일의 상환 기간이 보장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유리한 조건을 적용받게 된다는 게 당국의 설명이다.
 
지난해 금융당국은 140%였던 개인 공매도 담보 비율을 현 수준으로 낮추는 한편, 상환기간도 기존 60일에서 현행 90일로 늘리고 만기 연장도 가능하게 했다. 하지만 기관·외국인의 조건과 완전히 동일하지 않아 상대적으로 불리한 투자 환경에 놓였다는 인식이 해소되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 14일 이 문제를 겨냥해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고 개인 투자자를 보호하는 해결책을 준비해 달라"고 지시했고 결국 이번 '조건 일원화 방안' 발표로 이어지게 됐다.
 
이번 방침이 당장 시행되는 건 아니다. 현재는 방향을 제시한 초안 성격으로, 향후 국회 논의·공론화 과정을 통해 보완·확정될 예정이며 관련법과 하위 규정 개정엔 약 6개월이 소요된다고 당국은 밝혔다. 발표안에는 불법 무차입 공매도를 방지하기 위해 기관 내부에 공매도 전산시스템을 구축하도록 의무화하는 한편, 증권사는 이 시스템 구축이 확인된 경우에만 공매도 주문을 허용하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당국은 "기관 내 공매도 전산화의 다음 단계로는 외부적으로 무차입 공매도를 실시간 차단하는 시스템까지 구축 가능한지 추가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불법 공매도 시 최장 10년의 주식거래 제한, 국내 상장사·금융사 임원선임 제한 등 적발·처벌 강화 방안도 개선 방향으로 소개됐다.
 

'개미 요구' 반영했다지만 "반쪽짜리" 평가도

연합뉴스

지난 6일부터 전격적으로 단행된 '공매도 금지 조치' 이후 열흘 만에 발표된 이번 발표안을 놓고 긍정 평가도 나왔지만, 공매도 조건 일원화 방식이 개인 투자자 보호와는 거리가 있다는 취지의 지적과 일원화 자체가 비합리적이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공매도 제도 개선을 꾸준히 주장해 온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이날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기 위해 굉장히 필요한 조치가 발표됐다"며 "당장 가까운 시일 내에 시장이 바로잡힐 수는 없겠지만, 경제학에서 강조하는 공정성과 효율성의 기반을 마련했다는데 의미가 있다"고 환영했다.
 
그러나 공매도 환경이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온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대표는 "정부 여당이 개선 의지를 보였다는 점은 환영한다"면서도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고 지적했다. 정 대표는 개인의 공매도 담보 비율을 발표안대로 낮춰 통일할 게 아니라, 반대로 기관·외국인의 담보 비율을 상향 조정해 일원화했어야 개인 투자자 보호라는 제도 개선 취지에 맞다고 주장했다. 그는 "공매도 거래에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외국인·기관에 대한 '허들'을 높여야 하는데, 비중이 미미한 개인 투자자의 담보율을 낮추는 건 오히려 '빚투(빚내서 투자)'를 조장해 개인 투자자의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상환 기간 역시 개인과 외국인·기관 일괄 90일로 제한된다지만, 모두 만기 연장이 된다는 점에서 사실상 제한이 없는 현재와 뭐가 다른지 의구심이 든다"며 "보여주기식으로, 왜 이렇게 서둘러서 이런 반쪽짜리 발표를 했는지 의아할 정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공매도 상환 기간을 '만기 연장 없이' 제한해야 한다는 비슷한 주장은 지난달 5만 명의 동의를 받아 국회 정무위원회에 회부된 국민 청원 내용에도 담겼다. 당시 청원자는 "차입 공매도를 실행한 기관, 외국인의 경우 수익이 날 때까지 무기한 기다리면 손해가 발생할 수 없는 구조"라며 기관·외국인에 대한 만기 연장 없는 상환 기간 제한을 요구했다.

학계 일각선 "기울어진 운동장이 아닌데, 바로잡겠다는 게 문제"

 
연합뉴스

이런 일반 투자자들 쪽의 주장과는 결이 다르게 '조건 일원화' 자체에 부정적인 시각도 전문가들 사이에서 감지된다. 시장 제도를 분석해 온 한 학계 인사는 "애초에 기울어진 운동장이 아닌데, 그걸 바로잡겠다고 하는 것 자체가 문제다. 비합리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주식을 빌려주는 입장에선 개인보다 기관에게 빌려주는 게 더 안전하지 않겠느냐. 그래서 기관에게는 더 낮은 담보 비율, 개인에게는 더 높은 담보 비율을 요구해왔던 것"이라며 "은행에서 돈을 빌릴 때도 신용도에 따라 적용받는 금리가 개인들끼리도 다른데, 그럼 이것도 기울어진 운동장인가"라고 반문했다. 주식을 빌리는 주체의 상환 능력, 신용도에 따라 조건 차등을 두는 게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한편 올해 초만 해도 공매도가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점을 들어 그 순기능을 주시해왔던 금융당국의 입장이 정반대로 뒤집혀 아예 금지 조치까지 단행할 걸 두고는 총선을 염두에 둔 정치적 결정이라는 시선도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 모양새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는 "공매도 금지는 우리 경제 시스템에 대한 시장 신뢰와 연관이 있는 만큼 매우 신중할 필요가 있었지만, 갑작스러운 금지 조치에 대한 (금융당국의) 설명이 부족했다"며 "주가를 띄워 인기를 얻기 위한 총선용 정책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와 관련해 당국은 "해외 증시와 달리 국내 주식시장은 변동성이 크고 개인 투자자 비중이 높아 공매도의 불법, 불공정 문제가 더욱 우려되는 측면이 있다"며 "최근 글로벌 투자은행(IB)의 적발 사례에서 나타난 것처럼 불법 무차입 공매도가 반복되고, 개인 투자자 중심의 문제 제기도 지속됐기에 시장 불확실성 확대 속에서 관행화 된 불법 공매도가 공정한 가격 형성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 한시적 공매도 전면 금지를 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