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다운> 윤석열 정부에서 언론에 대한 압박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습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MBC와 KBS 등 뉴스타파의 보도를 인용한 방송사에 1억4천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습니다. 과징금은 방심위가 내릴 수 있는 법정제재 중 가장 높은 수위인데요. 돈이 문제가 아니라 방송사 재허가나 재승인 심사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또 KBS 박민 사장의 행보도 연일 주목받고 있죠. 취임 직후 주요 뉴스프로그램 진행자를 하차시키거나 프로그램을 폐지했습니다. 권영철 대기자와 자세한 내용 알아보겠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KBS가 과징금을 받았는데, 신임 박민 사장 입장은 수용하겠다는 건가요?
◆권영철> 그렇습니다. 박민 사장이 취임 하루만인 어제 신임 본부장급 간부들과 함께 대국민 사과를 하고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박민 사장의 답변내용 들어보시죠.
"과징금은 오늘 기자회견에서 말씀드렸듯이 보도경위나 내용을 보니까 명백한 문제가 있었다고 봅니다. 그래서 방심위 결정을 겸허하게 수용하겠습니다."
◇정다운> 이 과징금 이력이 남는 게 예민한 부분이라, MBC를 비롯한 다른 방송들은 법적 다툼을 하겠다고 밝혔지 않습니까?
◆권영철> 그렇습니다. MBC는 "방심위의 과징금 결정을 절차적, 내용적 정당성이 결여된 불공정 정치 심의로 판단하고, 수용할 수 없다"며, "법적 조치를 포함한 모든 방식의 대응을 통해 잘못된 결정을 되돌릴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YTN은 "재심 청구를 비롯한 모든 대응을 열어놓고 검토할 계획"이라고 했고, JTBC는 "과징금은 과도하다고 보고 향후 처분이 확정되면 재심을 청구할 예정"이라는 입장을 냈습니다.
MBC 안형준 사장은 방심위의 결정에 대해 "MBC는 소위 '공산당 기관지'가 아니다. 뉴스타파 인용 보도는 '중대 범죄 행위, 정치공작'이 아니었다"며 "뉴스타파 보도가 나왔던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저희는 대선 검증에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보도에 주저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사실 방심위의 과징금 부과는 방심위 내부에서조차 말이 안되는 결정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정다운> 그래요? 방심위 내부에서도 무리한 결정이라고 하나요?
◆권영철> 그렇습니다. 방심위 노조위원장 후보로 출마한 김준희·지경규 후보는 방심위의 과징금 제재가 법원에서 취소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두 후보는 "자신 있는 위원들은 내기를 해도 좋다. 과거 위원회의 정치심의 4건이 각급 법원의 재판 10건에서 전부 패소했던 망신을 우리는 기억한다"며 "오늘의 과징금 결정은 앞서 패소한 모든 심의안건들보다 정당성을 결여했다"고 꼬집었습니다.
이들은 "우리의 일터가 방송장악의 칼춤을 추고 있다. 가짜뉴스 잡겠다며 휘두르는 몽둥이가 위원회를 멍들게 하고 있다"며 "선거 과정에서 아무런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던 보도에 대해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지 20개월이 넘은 오늘 방통심의위는 정녕 새로운 흑역사를 써내려가려 하는가?"라고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이들이 출마의 변으로 내세운 제목이 '탈선한 폭주 기관차를 멈춰 세웁시다' 입니다.
◇정다운> 박민 사장이 방심위의 과징금 부과 결정을 수용하는 게 법적인 문제가 될 수도 있나요?
◆권영철> 그렇습니다. 이명박 정부시절 KBS 정연주 사장이 배임 등의 혐의로 해임된 적이 있습니다. 법원의 조정권고를 받아들여 조세소송을 취하한 걸 배임이라고 기소했었는데, 재판에서 무죄가 확정된 겁니다.
MBC를 비롯한 다른 방송사들이 과징금 취소소송에서 승소한다면 KBS 박민 사장은 명백한 배임이 되는 겁니다. 특히 과징금은 방심위의 제재 중 가장 강력한 처벌로 지금까지 단 한 한차례 밖에 없었던 징계입니다. 방송의 재허가에서 10점이 감점되는 겁니다.
박민 사장으로서는 과징금 부과결정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윤석열 정부의 방송장악 방침에 맞서는 것이 되고, 과징금을 받아들일 경우 배임으로 처벌 될 수 있는 상황에 처한 셈입니다.
◇정다운> 방심위의 과징금 부과는 절차적으로 타당한가요?
◆권영철> 논란이 많습니다. 아직 검찰의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입니다. 김만배◇정다운>신학림의 인터뷰도 검찰의 수사대상이 된 건 맞지만 아직 수사 중이어서 그걸 근거로 가장 쎈 과징금 부과를 결정할 근거는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MBC 안형준 사장도 "김만배 씨 녹취가 허위와 조작이라는 건 현재로서는 검찰과 권력의 일방적 주장일 뿐, 아직 법적인 실체가 규명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이미 20개월 전에 나온 보도인데 이게 왜 긴급심의 안건이 됐는지? 그리고 MBC 안형준 사장이 방심위를 찾아 과징금 부과 확정 전 입장을 밝히겠다는 것조차 거부하면서 역대 최강의 징계를 밀어붙인 것인지 납득이 안 됩니다. 아마도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의도는 아닌지 의문입니다.
◇정다운> KBS 9시 뉴스를 담당하던 이소정 앵커도 갑자기 교체됐잖아요?
◆권영철> 지난주 금요일까지 방송을 진행했는데 월요일부터 갑작스럽게 교체됐습니다. 교체 통보는 일요일 저녁에 이뤄진 걸로 알려졌습니다.
박민 사장의 기자회견에서 질문이 나왔는데요, 박 사장은 "사장으로서 특정 프로그램의 개폐나 방향을 직접적으로 언급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지시를 한 사실은 인정했습니다.
박민 사장의 답변 들어보시죠.
"제가 본부장 인사를 하고나서 주로 보도본부 제작본부 편성본부가 될텐데. 지금 방송중인 프로그램 전반적으로 재검검 해서 KBS 공영방송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했거나,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프로그램을 점검해서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 적당한 대책을 협의해서 추진하라 이렇게 지시한 바가 있습니다."
박 사장은 "그 이후 어떻게 진행되는지 구체적인 과정에 대해서는 제가 정확하게 모르고 개입해서도 안 되기 때문에, 뉴스 진행자교체를 물으셨으니 보도본부장에게 설명을 들어보겠다"며 책임을 보도본부장에게 떠넘겼습니다.
장한식 보도본부장은 "뉴스 진행자 교체 부분은 새로운 사장 취임을 계기로 국민들에게 새롭고 달라진 KBS 뉴스를 보여주자, 더 완전하게 공정한 뉴스를 보여주자는 차원에서 기존 앵커의 교체를 결정했다. 그에 따라서 기존 진행자들에게는 하차 사실을 정중하게 통보했다"고 말했습니다.
◇정다운> 그냥 일반 조직 내 인사이동이라고 해도 사실 말이 나올 부분인데. 하물며 방송은 많은 시청자와 만나는 거잖아요. 일요일 저녁에 전화해서 통보하고 그 다음 날부터 바로 진행자를 바꾸는 게 과연 정중한 건지 의문이에요. 이게 방송법을 위반했을 소지도 있는 건가요?
◆권영철> 라디오 프로그램 중에 <주진우 라이브>의 경우 논란이 커지고 있습니다.
언론노조 KBS본부의 강성원 본부장이 CBS <한판승부>에 출연해서 방송법 위반이라고 지적을 했습니다. 들어보시죠.
"센터장 발령이 나기도 전에, 결국에 센터장으로 발령난 자가 발령이 나기도 전에 제작진에게 전화를 걸어서 주진우 MC의 하차를 종용을 했단 말이죠. 제작진이 거기에 대해서 반대 의사를 밝히니까 본인이 '내가 내일이면 될 건데 사규에 따라 처리하겠다'. 이런 운운한 것들은 방송법 4조를 전면 위배하는 것이거든요."
편성규약을 위배하고 있다는 비판도 잇따르고 있습니다. 언론노조 KBS본부는 "취임 첫날부터 박민 사장 체제의 편성규약·단체협약 위반 행위가 잇따르고 있다"며 "이번 주 편성표에서는 정상 편성돼 있었던 '더 라이브'가 박민 사장 취임식이 열리는 오늘 갑작스럽게 편성 삭제가 결정됐다"고 비판했습니다.
KBS본부는 "더 라이브는 2TV로 옮긴 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저녁 시간 KBS 시사 프로그램을 책임지는 프로그램으로 시청자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그럼에도 사측은 제작진과 어떠한 논의도 없이 편성 자체를 삭제해 버렸다"며 "당장은 편성 삭제·대체에 불과하지만 사실상 폐지 수순에 돌입한 것이라 봐도 무방하다"고 덧붙였습니다.
박민 사장의 대국민 사과도 뜬금없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정다운> 대국민 사과라고 해서 뭘 사과한 것인가 하실 텐데. 일련의 이런 조치에 대해 사과한 게 아니라 전임 사장 기간 동안 KBS가 불공정 편파보도를 한 점을 사과했잖아요.
◆권영철> 물론 문제 있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이른바 검언유착 사건 녹취록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쓴 오보 때문에 법정제재도 받았었죠. 그런데 전반적으로 KBS 보도가 팩트가 부실하고 편파적이었는지는 의문입니다.
KBS는 여전히 국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매체죠. 시사저널이 지난 8월 한국갤럽에 의뢰해 전문가 500명, 일반국민 5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2년 연속 1위를 차지했는데요. 신뢰도 조사에서도 MBC에 이어 2위를 차지했습니다.
◇정다운> 급작스런 인사이동에 이어서 대국민 사과까지. 상당히 급하고 과격한 행보인데요.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요?
◆권영철> 정말 대국민 사과가 맞는지, 누구에게 왜 사과를 한 건지 궁금해지는데요.
KBS 본부 강성원 본부장의 말로 들어보시죠.
"사장 선임 과정에서 박민 사장이 정권의 낙하산 인사라는 오명을 이미 좀 덮어써버렸습니다. 실질적으로 그런 정황들이 많이 드러났고요. 그럼 가장 큰 정파성 문제 아닙니까? 정권의 낙하산 사장이라는 그 오명 자체가 그 정파성의 가장 핵심인데, 그런 사장이 지금 이렇게 위법적인 상황들, 편성규약, 방송법까지도 무시하면서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박 사장의 사과는 대국민 사과가 아니라 용산을 향한 여당인 국민의힘을 향한 사과가 아니냐는 비판이 나옵니다.
KBS가 국민의 방송으로 바로 서게 하겠다면, 최소한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절차나 법규부터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말로는 공정방송을 외치지만 실제로는 용산을 향한 방송을 하겠다는 선언은 아닌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습니다.
◇정다운> 사실 이전에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KBS와 MBC 경영진을 비롯해서 주요 프로그램 진행자와 출연진이 물갈이 되는 일은 있었거든요.
◆권영철> 시사프로그램 폐지하거나 진행자 교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인사권도 인정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조치들이 정당성을 얻으려면 정해진 절차를 밟아야 합니다. 절차를 무시하고 밀어붙이니 '점령군'이니 쿠데타처럼 보인다느니 하는 비판이 나오는 겁니다.
박민 사장의 말 중 '용납하지 않겠다'는 말이 가장 오래 남는데요, 민주주의는 누군가의 '용납'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게 아닙니다. 정해진 규정에 따라 절차를 밟아서 신상필벌 하는 게 올바른 태도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