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미국 메이저리그(MLB)의 텍사스 레인저스가 알렸다. 지난 1961년 워싱턴 세너터스라는 이름으로 빅 리그에 뛰어든 텍사스는 그동안 우승과 인연이 없었다. 2010~2011년에는 2년 연속 월드시리즈에 진출했으나 모두 고배를 마신 바 있다.
2021시즌에는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에서 최하위에 머물렀다. 당시 60승 102패를 기록, 승률 3할7푼에 그치며 동네북 신세로 전락하는 듯했다.
하지만 텍사스는 이후 2년 만에 월드시리즈 정상에 오르는 데 성공했다. 1961년 창단 후 62년 만에 처음으로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것.
MLB 역사상 100패 이상을 기록한 팀이 2년 안에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건 역대 3번째인 만큼 진기록이다. 앞서 1914년의 애틀란타 브레이브스와 1969년의 뉴욕 메츠가 100패의 아쉬움을 2년 만에 극복한 바 있다.
텍사스의 반전에는 과감한 투자가 뒷받침이 됐다. 2021시즌을 마치고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서 대어 2명을 낚는 데 무려 5억 달러(약 6717억 원)를 퍼부은 것. 당시 텍사스는 유격수 최대어로 기대를 모은 코리 시거와 10년 3억 2500만 달러, 마커스 세미엔(33)과 7년 1억 7500만 달러(약 2350억 원)의 계약을 체결했다.
두 선수는 텍사스 전력의 핵심이 됐고, 이번 월드시리즈에서 우승을 이끄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특히 월드시리즈 5경기에서 타율 2할6푼6리(21타수 6안타) 3홈런 6타점 6득점 OPS 1.137로 활약해 시리즈 MVP(최우수 선수) 타이틀을 거머쥔 시거의 활약이 눈부셨다.
한신은 일본시리즈(7전 4선승제)에서 퍼시픽리그 우승팀인 오릭스 버펄로스와 최종 7차전까지 이어지는 혈투 끝에 우승을 차지했다. 지난 5일 일본 오사카의 교세라 돔에서 열린 7차전에서 오릭스를 7 대 1로 완파하고 꿈에 그리던 정상에 올랐다.
2000년대 들어 4번째 도전 끝에 차지한 값진 우승이다. 한신은 지난 2003년과 2005년, 그리고 오승환(삼성)이 활약한 2014년까지 총 3차례 일본시리즈에 올랐으나 모두 준우승에 그쳤다. 2005년에는 이승엽(현 두산 감독)을 앞세운 지바 롯데 머린스에 4전 전패로 무릎을 꿇은 바 있다.
외야수 치카모토 고지가 일본시리즈 MVP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치카모토는 이번 시리즈에서 타율 4할8푼3리로 맹타를 휘둘렀고, 최종 7차전에서는 5타수 4안타로 활약하며 한신의 우승을 이끌었다.
LG 선수들도 두 팀의 우승에 자극을 받았을 터. 주장 오지환은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하늘도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지 않나. (텍사스와 한신이) 간절하다 보니 (분위기가) 기울지 않았나 싶다"면서 "우리도 꼭 우승 트로피를 가져오겠다"고 이를 악물었다. 우완 투수 임찬규는 "우리가 (우승을) 할 차례가 됐다고 생각한다. 29년 만의 대업을 이룰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확신했다.
한국시리즈 상대는 정규 시즌을 2위로 마쳐 플레이오프(PO·5전 3선승제)부터 포스트 시즌을 시작한 KT였다. KT는 앞서 NC와 PO에서 1, 2차전을 내주고 벼랑 끝에 몰렸으나 3차전부터 내리 승리를 거둬 한국시리즈 진출에 성공했다.
KT의 기세는 예상보다 거셌다. LG는 1차전부터 KT에 패배를 당하며 시리즈를 불안하게 출발했다. 지난해까지 역대 한국시리즈 1차전 승리 팀의 우승 확률 74.4%(29/39)를 놓쳐 불안감이 멤돌았다.
하지만 LG는 2차전부터 내리 4승을 수확해 시리즈 전적 4승 1패로 우승을 차지했다. 6 대 2로 앞선 9회초 마무리 고우석이 마지막 아웃 카운트를 잡고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29년 묵은 한이 풀린 LG 팬들의 뜨거운 함성이 터졌다.
우승의 중심에는 오지환이 있었다. 오지환은 이번 시리즈 5경기에서 타율 3할1푼6리 3홈런 8타점으로 활약한 공로를 인정받아 MVP로 선정됐다. 기자단 투표에서 93표 중 80표(득표율 86%)로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다.
이로써 한미일 프로야구에서 모두 감격적인 우승 장면이 탄생했다. 숙원을 이루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기쁨은 배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