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덧약 먹고 사지 없는 기형아 출산…호주 정부, 60년만에 대국민 사과

호주 정부, 1961년 탈리도마이드 위험성 보고 받고도 즉시 행동 나서지 않아

2013년 12월 2일 탈리도마이드 피해 생존자인 호주인 르넷 로우(맨 앞)와 또 다른 피해자가 변호사, 가족과 함께 탈리도마이드 유통업체를 상대로 한 피해보상 소송에 참석한 뒤 호주 멜버른 고등법원을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호주 총리가 1950~60년대에 부작용의 위험이 큰 입덧약을 정부가 제대로 규제하지 않아 당시 많은 기형아들이 태어났다며 뒤늦게 공식 사과하기로 했다.

14일(현지시간) 일간 디오스트레일리안 등에 따르면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는 전날 성명을 통해 "탈리도마이드 비극은 호주와 세계 역사에서 어두운 장면"이라며 "생존자와 가족, 친구 등은 수년 동안 용기와 신념을 갖고 정부의 공식 사과를 촉구해왔다"고 말했다.

그는 오는 29일 의회에서 호주 정부와 의회를 대신해 당시 사건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캔버라에 국가 추모비도 세우기로 했다며 "이는 사망한 모든 아기와 그들을 애도하는 가족들, 살아남았지만 끔찍한 약의 영향으로 삶이 훨씬 힘들어진 사람들을 국가가 인정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호주 정부에 따르면 탈리도마이드는 1950년대 임신부를 위한 입덧 방지제로 판매됐지만 배 속 아이의 선천적 결함을 유발했다. 호주 정부는 이 약이 호주에서 판매되도록 승인하기 전 검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고, 이 사건은 호주의 의약품관리국(TGA)이 설립되는 계기가 됐다.

호주 정부는 "당시에는 의약품이 시장에 출시되기 전 안전성을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었다"며 "탈리도마이드는 결국 시장에서 퇴출당했지만, 호주의 많은 임신부가 약을 먹은 후였다"고 설명했다.

특히 호주 보건부는 1961년 탈리도마이드의 위험성에 대한 보고를 받았음에도 즉시 약품을 폐기하거나 사용 금지 조치를 내리지 않아 피해를 더 키웠다.

호주는 2019년 상원 차원에서 당시 사건을 재조사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정부의 잘못을 인정, 2020년 피해자들에게 최대 50만 호주달러(약 4억2천만원)를 지급했다. 하지만 당시에도 공식적인 대국민 사과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번 공식 사과 결정에 호주 내 탈리도마이드 피해자들과 가족들은 환영의 뜻을 밝히면서도 정부의 공식 사과가 너무 늦었다고 말했다. 호주 정부에 따르면 탈리도마이드로 인해 기형아로 태어나 생존해 있는 등록된 피해자는 146명이지만 정확한 피해자 수는 파악되지 않는다.

탈리도마이드는 1953년 옛 서독 제약회사 그루넨탈이 개발한 입덧 방지약으로 50여 개국에서 판매됐다. 하지만 이 약을 먹은 임신부들이 기형아를 출산하는 일이 급증하면서 논란이 됐다.

당시 이 약을 먹은 임신부는 전 세계적으로 약 8만명의 아이를 유산했고, 사지가 없는 아기 등 2만명이 넘는 기형아를 낳았다.

반면 미국 식품의약청(FDA)은 자료 부족과 독성 등에 대한 추가 정보를 요구하면서 다른 나라들과 달리 판매 승인을 거절, 피해를 크게 줄였다. 이후 이 약에 따른 부작용이 발견되면서 승인을 거부한 FDA의 명성을 드높인 사건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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