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당내 주류 인사들을 상대로 '불출마' 또는 '험지행'을 권고한 당 혁신위원회의 활동이 암초에 부딪히고 있다.
당 지도부와 중진 의원, 그리고 '대통령과 가까운' 친윤계 핵심 의원 등 혁신위가 명시한 대상들로부터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하고, 나아가 사실상 거부당하는 모양새가 돼가고 있기 때문이다.
9일 '3호 혁신안'으로까지 이어진 혁신위의 활동엔 용산 대통령실의 암묵적인 지지도 있는 것으로 풀이되지만, 이같은 용산의 기조가 당에 이전만큼 파괴력을 갖고 있지 않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러한 반발 기류의 중심엔 김기현 대표와 장제원 의원으로 상징되는 당 지도부, '대통령과 가까운 의원들' 즉 당내 친윤계 핵심 의원들이 있다.
김 대표는 이날 혁신위의 불출마 등 요구에 대한 입장을 묻는 취재진의 말에 "모든 일에는 시기와 순서가 있는데, 요즘 언론 보도를 보면 너무 '급발진'하고 있는 것 같다"며 "급하게 밥을 먹으면 체하기 십상"이라고 말했다.
거취 논란에 관해 입장을 표명할 때가 아니라는 말로 우선 즉답을 피하면서, 당초 '전권 부여'를 약속했던 혁신위의 구상에 결코 편치 않은 심기를 드러낸 것이다.
친윤계 핵심 의원, 이른바 '윤핵관'으로 꼽히는 장제원 의원(부산 사상)과 권성동 의원(강원 강릉) 등도 지역 활동에 매진하며 오히려 출마 의사를 확고히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은 과거 해당 지역구에서 무소속으로도 당선된 경험이 있을 정도로 지역구 관리가 탄탄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불출마 요구를 두고 공식적인 입장을 내진 않았지만, 이처럼 '묵묵부답' 속에 지역 활동에 집중함으로써 사실상 선을 긋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다른 중진들도 불출마론의 문제를 지적하며 직간접적으로 거부 의사를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5선인 주호영 의원(대구 수성 갑)은 전날 지역 의정보고회에서 "(다른 지역구에) 절대 갈 일 없다. 대구에서 정치를 시작했으면 대구에서 마치는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혁신위의 요구에 핵심 대상으로 꼽힌 이들이 잇따라 묵묵부답과 반기 들기에 나선 것이다.
신당 창당론에 불을 지피며 연일 당과 각을 세우고 있는 이준석 전 대표는 "혁신위는 지금 이미 국민이 요구하고 바라는 혁신이 아니라 윤핵관들의 권력을 유지하고 변화를 거부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용산 대통령실의 암묵적인 동의가 있는 혁신위가 패싱당하자, 용산 대통령실의 영향력에 의문을 표하는 시각도 생겨나고 있다. 다만 지역구 경력이 오래된 이들의 저항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란 게 당내 평가이기도 하다. 당내 한 관계자는 "그 어떤 대단한 사람이 요구한대도 지역구 국회의원이 10년, 길게는 20년 넘게 다져온 자기 지역구를 쉽게 떠날 수는 없다"며 "용산의 의중이 실렸든 실리지 않았든 총선 전엔 으레 이런 식의 요구가 있기 마련이고, 저항은 불가피한 수순"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같은 2호 혁신안부터는 지도부 의결 자체에도 '속도 조절'이 시작되면서 장차 혁신위가 내놓을 안에 얼마나 힘이 실릴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게 됐다.
혁신위는 당장 2호 혁신안 발표 당시 '권고' 사항으로 정리하고 함께 보고하기로 했던 이같은 '불출마' '험지행' 요구를 이날 당 최고위원회의에 안건으로 올리지 않았다. 당내에서 터져 나오는 반발 앞에 일단 수위를 한 톤 낮춘 행보다. 그러고는 이날 내년 총선 비례대표 명부 당선권에 청년을 50% 할당하는 등 '3호 혁신안'을 내놨다.
당내 또 다른 관계자는 "지금은 그 어떤 불출마 선언이나 험지행 결단도 '떠밀린 것'이라고 보일 수밖에 없는 때"라며 "공천 정국 전까지 이들에게 시간이 주어져야 한다. 그게 당이 이들에게 보일 수 있는 최소한의 존중이고 혁신위도 그것을 이해한 게 아니겠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