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기소권이 없는 수사 대상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공수처가 직접 구속영장을 청구해 구속된 피의자의 신병을 검찰이 넘겨받을 법적 근거 조항이 없기 때문이다.
법원이 공수처가 청구한 구속영장을 발부하더라도 추후 기소권이 없어 공수처는 사건을 검찰에 송부(공소제기 요구)해야 한다. 현행법상 공수처는 사건 송부 과정에서 검찰에 '관계 서류와 증거물'만 넘길 수 있다. 검찰이 공수처로부터 피의자를 인치받을 수 없어 피의자가 석방될 수 있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서울중앙지법 이민수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8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혐의를 받는 감사원 3급 간부 김모씨에 대해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했다. 김씨는 건설 및 사회간접자본(SOC) 시설 분야 감사를 담당한 인물로, 지인 이름으로 된 차명 회사를 만들어 피감기관으로부터 공사를 수주하는 방식으로 10억원대 뇌물을 받은 혐의를 받는다.
공수처법을 보면 김씨는 공수처의 수사 대상이지만 기소 대상은 아니다. 공수처는 대법원장과 대법관, 검찰총장, 판사 및 검사, 경무관 이상 경찰관에 대해서만 직접 기소할 수 있다. 나머지 수사 대상은 검찰에 사건을 넘겨 기소 여부는 검찰이 결정한다.
공수처가 기소권이 없는 수사 대상에 대해 신병 확보에 나선 것은 2021년 1월 출범 이래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공수처가 구속영장을 청구한 피의자는 검사와 경찰 경무관 단 2명이었다. 공수처가 기소할 수 있는 피의자여서 구속영장 발부 여부와 상관없이 법적 문제가 불거지진 않았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공수처가 출범 이래 첫 구속영장을 발부받아 김씨를 구속하더라도 검찰에 송부하는 과정에서 피의자 신병 인도 문제가 제기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검찰이 공수처가 청구한 영장에 의해 구속된 피의자를 인치할 법률상 근거가 전무해서다.
이런 이유로 검찰 안팎에선 공수처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이 피의자를 바로 석방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공수처법 26조에 따르면 공수처가 기소권 없는 사건을 서울중앙지검에 송부할 때는 관계 서류와 증거물만 보낼 수 있다.
또 형사소송법 198조의2 ②항은 "검사는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체포 또는 구속된 것이라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즉시 체포 또는 구속된 자를 석방하거나 사건을 검찰에 송치할 것을 명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공수처법에 밝은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검찰이 구속 피의자 신병을 공수처로부터 받을 법적 근거가 전무하다"며 "공수처법 자체가 허술해 생긴 제도 사각지대인 셈이다. 피의자가 곧바로 법원을 상대로 구속 적격성을 문제삼을 수 있다"고 했다.
구속기간 산정 방식도 문제다. 형사소송법 202조와 203조를 보면 사법경찰이나 검사 모두 구속한 피의자를 10일 이내에 공소제기하지 않을 경우 석방해야 한다. 경찰의 경우 피의자를 최장 10일 구속할 수 있고 이후에는 피의자 신병과 사건을 함께 검찰에 송치한다. 검찰 역시 경찰이 보낸 피의자를 10일까지 구속할 수 있고 1차례(10일) 연장할 수 있다.
공수처가 기소권이 없는 피의자의 신병을 확보한 경우 얘기가 다르다. 구속영장 청구의 주체가 검찰이 아니라 공수처이기 때문이다. 공수처는 피의자를 최장 20일 구속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공수처 관계자는 "기소권 없는 사건의 경우라도 피의자 신병이 확보된 상태에서 공수처가 검찰에 공소제기 요구를 할 경우 구속기간 배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면서 "영장이 발부되면 검찰과 기간 배분에 대해 실무협의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공수처 검사의 영장청구권에 관해서는 "2021년 헌법재판소가 공수처법 합헌 결정을 내리면서 이미 인정했다"며 "오늘 영장심사도 공수처 검사의 구속영장 청구에 따라 법원이 구인영장을 발부해 진행했다. 법원도 공수처 검사의 영장청구권을 인정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검찰은 공수처가 주장하는 것처럼 피의자 구속 기간은 협의를 통해 배분할 문제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검찰 관계자는 "피의자 신병을 구속하는 일은 정확한 법률에 근거해야 한다. 기관간 실무 협의 등 방식으로 기간을 정하거나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