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춘천'에 이은 '각 세종'. 지역 이름 앞의 '각'이 낱낱의 라는 뜻을 가진 '각(各)'인 줄로만 알았다. 오해는 금세 풀렸다. 네이버의 데이터센터를 칭하는 이름이었다. 누각 '각(閣)'. 데이터센터가 '기록'을 위한 보존소라는 점에서 고려시대 팔만대장경을 보관한 합천 해인사 '장경각'의 정신과 기술을 계승하기 위해 이같은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네이버는 '사용자가 만든 데이터는 영원히 후대에 전해져야 한다'는 목표 아래 2011년 내부 프로젝트에 착수해 2013년 6월 국내 인터넷 기업 최초로 자체 데이터센터 '각 춘천'을 구축했다. 10년이 흐른 2023년 두 번째 각, '각 세종'이 가동 준비를 마쳤다. 지난 6일 문을 연 '각 세종'에 방문했다. 최수연 대표가 "미래 네이버의 심장"이라고 지칭한 이곳이 어떻게 미래 네이버 사업의 전초기지가 될 지 살펴봤다.
축구장 41개 크기, 국립중앙도서관 100만배 데이터 저장 가능
'각 세종'에 도착하자마자 보게 된 건 압도적 크기의 회색 건물이었다. 축구장 41개 크기(약 8만 9000평의 부지). 지하 3층, 지상 3층 규모의 본관과 지상 2층의 북관(서버관) 등으로 이뤄졌다. 6차까지 전체 증설 시 최대 60만 유닛(서버의 높이 단위규격)의 서버를 수용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추게 된다. 단일 기업의 데이터센터 기준으로는 국내 최대 수준이다. 이를 통해 저장할 수 있는 데이터는 국립중앙도서관 전체 데이터의 약 100만배. '각 춘천'이 9백만권을 소장한 국립중앙도서관 1만개 정도의 데이터를 담고 있다고 했으니, 그 보다 100배 커진 셈이다.이날 본관 운영동 다목적홀에서 열린 오픈식에는 최수연 네이버 대표와 김유원 네이버클라우드 대표가 참석했다. 최수연 대표는 "운 좋게 네이버가 반 보 정도 앞서서 준비할 수 있었다"면서 "하이퍼클로바 X가 올해 나온 것도 사우디아라비아 기술 수출이 잘 된 것도 좋은 타이밍에 기술 투자를 아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각 세종'에 대해선 "네이버 뿐 아니라 대한민국 디지털 산업의 엔진이 될 것", "미래 네이버의 심장"이라고 표현했다. 김유원 대표는 '각 세종'에 대해 "네이버의 10년을 책임 질 곳", "뻗어나가는 네이버 비즈니스의 전초기지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네이버 창업자인 이해진 글로벌투자책임자(GIO)도 '각 세종' 오픈 전 둘러보고 "흐뭇해했다"고 한다.
본격적으로 '각 세종'을 둘러보기 위해 통합관제센터로 이동했다. 전면의 대형 화면에는 주요 공간들의 CCTV, 주요 설비들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지표들(에너지 사용량, 서버실별 온도 상태 등), 뉴스 화면이 띄워져 있었다. 뉴스 화면은 포털 이용량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급박한 사건·사고를 파악하기 위해서다. 노상민 네이버클라우드 데이터센터장은 "100% 자동 제어가 안 되는 건 트래픽 등이 다이나믹하게 변화해 한계가 있기 때문"이라면서 "대부분 필드에 나가 있고 통합관제센터에는 모니터링 최소 인원이 머무르며 무전으로 현장을 확인한다. 모니터링을 통해 모든 상황을 빠르게 원격 제어 한다"고 설명했다.
내부를 잇는 다리를 통해 서버동으로 이동했다. 이번에 1차적으로 문을 연 각 세종의 서버동인 '북관'은 데이터 증가 속도에 맞춰 총 3단계에 걸쳐 순차적으로 가동된다. 북관이 빠르게 찰 경우를 대비해 2차 서버동 구축 예정 부지도 미리 확보돼 있다. 노 센터장은 "사실 10년 전 '각 춘천'을 지을 때도 15년을 버틸 거라고 봤다. 그런데 IT 변화가 너무 빨리 가고 있고 변화가 크다"면서 "10년, 15년 네이버의 다양한 미래 서비스를 제공할텐데 어떤 스팟성으로 서비스가 터지면 시간이 단축될 수도 있다고 본다. 반면 IT 환경이 침체된 다면 좀 더 느리게 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GPU 서버실에 들어가기 전부터 굉장한 소음이 났다. 소음이 많이 나는 건 많은 양의 GPU 서버를 이용해서다. 고(高) 사양 PC를 이용할 때 환기 팬이 더 세게 돌아가 소리가 크게 나는 것처럼 서버실에서도 전력을 더 쓰면 더 큰 소음이 발생한다. 서버실 천장 층고는 굉장히 높았다. 차가운 온도가 핵심인 서버실에선 케이블도 냉기의 장애물이다. '각 세종'에선 케이블을 모두 천장으로 올렸다. 측면 냉기가 서버로 바로 유입되는 구조를 위해서다. 서버가 차곡차곡 쌓여져 있는 곳까지 들어가 보니 머리카락이 휘날릴 정도로 차가운 바람이 느껴졌다. 고개를 올려보니 천장이 격자 모양으로 뚫려 있었다. 노 센터장은 "더운 열기를 바깥으로 뺄 수 있게 한 것"이라면서 "갈비집 후드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국내 데이터센터 최초로 로봇 도입, 가로와 세로의 정체는
'각 세종'은 네이버 1784와 연계해 국내 데이터센터 최초로 로봇이 도입됐다. 너무 넓은 부지에서 대규모의 장비를 옮기거나 이동을 해야해서다. 각 춘천과 동일한 방식으로 작업자들이 일한다고 한다면 20~30% 가량의 노동량을 줄일 수 있다. 김유원 클라우드 대표는 "업무의 효율이 올라가는 것도 있겠지만, 로봇들이 투입됨으로써 노동의 질이 바뀔 것"이라면서 "사실 위험하기도 하고 서버를 끌고 가는 건 재미 없지 않나. 이런 것들을 로봇들이 대체하면 사람들은 좀 더 창의적이고 종합적인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북관 서버동의 IT 창고로 발걸음을 옮기자, 가로와 세로라는 이름을 가진 로봇들이 창고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네이버랩스에서 자체 개발한 로봇이다. 가로는 이름 그대로 가로로 이동하는 자율 운송 로봇이다. 서버실과 창고를 오가며 고중량의 자산을 운반한다. 최대 400kg까지 싣는다. 세로는 서버 매니징 로봇으로, 세로로 움직인다. 각 서버별 자산 번호를 인식해 2mm 단위로 자산을 집어 들어 안전하게 쌓는다. 최대 3m까지 적재할 수 있다. 그만큼 키가 크다.
가로의 얼굴 격인 화면에는 "세로가 자산 싣기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떴다가 "세로와 정렬 해제 중", "세로가 자산 꺼내기를 기다리는 중"으로, 상황에 따라 글자가 바뀌었다. 물류센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로봇과는 달리, 사람의 개입이 전혀 없는 자동화 프로세스로 진행된다. 네이버랩스의 명효신 PM은 "사람의 개입 없이 하나의 흐름으로 모든 자산이 흘러가는 게 이 로봇 시스템의 핵심적인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현재는 가로·세로 2대 씩이지만 최종 몇 대가 '각 세종'에 투입될 지는 데이터 수요에 달려 있다.
자율주행 셔틀인 알트비(ALT-B)는 혼자 주행하다 멈춰섰다. 알트비 역시 네이버랩스의 풀스택 자율주행 기술로 움직인다. 2017년 IT업계 최초로 국토교통부 자율주행 임시운행을 허가받고 복잡한 도심을 직접 달리며 개발한 독자적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알트라이브(ALTRIV)'를 탑재했다. '각 세종' 내에서 임직원과 외부 투어 인력에 대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도입됐다. 단순 자율주행만 운행하는 게 아니다. 아크브레인이라는 중앙에서 관제되는 서비스를 통해 시설 내 시설물, 정거장들을 관리하고 모니터링할 수 있다. 직접 타보니 좌석은 일반 버스 의자와 비슷했지만, 운전석이나 핸들이 없었다. 대신 가운데 조그마한 노트북이 놓여 있었다. 자율주행이지만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차량을 제어하기 위한 개발보드다. 천장에는 하얀 동그라미들이 떼지어 보였다. 기자들이 모여들자 알트비 가 주변 보행자들의 이동 등을 감지해 그래픽화해 천장 화면에 띄웠다.
'각 세종'은 최첨단, 최대 규모 등을 자랑했지만 무엇보다 '안전성'을 내세웠다. '각 춘천'의 10년 무사고 기록을 잇겠다는 것이다. 네이버는 여러 지역의 토양 지질까지 분석해 데이터센터에 가장 적합한 부지를 선정했다고 한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단단한 화강암으로 된 이 부지다. 지진을 대비해 원자력 발전소 수준의 건물에 적용되는 특등급의 내진 설계를 건물 구조체 뿐 아니라 서버랙 단위까지 전체 적용했다. 외부 화재 발생에도 대비해 불길이 각 세종에 닿기 전 진압할 수 있도록 방수총을 본관과 북관(서버관), 워크스테이(심야 작업 점검자를 위한 공간)에 설치하고 외부 조경 공간엔 스프링클러와 열화상 카메라를 설치했다. 혹시라도 전력 공급이 중단되는 비상 상황을 대비해 72시간 동안 자체 전력 공급이 가능한 비상 발전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점도 부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