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스 '학살 영상' 韓 기자들에 공개…'인지전' 나선 이스라엘

연합뉴스

43분 분량의 영상에서는 글로 설명하기도 힘든 끔찍한 장면들이 반복되고 있었다. 하마스 대원들의 바디캠과 휴대전화, 민간 차량의 블랙박스와 CCTV 등으로 찍힌 영상들에는 이들이 민간인을 총과 폭발물 등으로 학살하는 장면이 여과 없이 담겼다.

주한이스라엘대사관은 6일 서울 종로구 서린동 대사관에서 한국 취재진을 초청해 녹화·녹음을 하지 않는 조건으로 이러한 장면들이 담긴 43분 분량의 영상을 상영했다. 이 영상은 지난달 23일(현지시간) 이스라엘 현지에서 처음 공개됐고, 그 뒤 미국 언론을 상대로 상영됐으며 한국에서 3번째로 공개됐다. 대사관 측은 "대중에게는 공개하지 않으며, 촬영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하에 언론사를 초청해 세계 각국의 이스라엘 대사관에서 상영을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해당 영상에는 학살 장면 외에도 이스라엘군이 하마스 대원들의 통신을 감청하거나 휴대전화 통신 기록을 입수한 음성 기록도 포함됐다. 이 중 하나에는 한 대원이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맨손으로 유대인 10명을 죽였고, 죽인 유대인 여자의 전화로 통화하고 있다"며 "왓츠앱(메신저)을 열어 내가 죽인 자들을 보라"고 자랑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밖에도 유아·어린이·여성 등의 시신은 물론 불탄 시신 수십 구의 모습도 영상에 담겼다.

아키바 토르 주한이스라엘대사는 이날 영상을 공개한 이유에 대해 "언론을 공격하려는 것은 아니며 언론은 민주주의에 필수적이다"면서도 "실제와 다른 내용이 보도되고 왜곡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국제적 언론 보도가 균형을 잃고 있다"며 "(언론사들이) 이스라엘 공습 사망자는 '학살(massacre) 희생자'라고 쓰고, 하마스의 학살로 숨진 이들은 '살해(killing) 희생자'라고 표현한다"고 덧붙였다. "이스라엘의 행동과 무력 사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든 지난 40분 동안 본 것은 학살 그 자체"라고도 말했다.

또 "열린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위는 허용되어야만 하지만 대사관 앞 시위에서 유대인 학살을 뜻하는 'khaybar khaybar ya yahud'라는 구호가 제창됐다"며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고도 말했다.

다시 말해 최근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에서 지상전을 본격화하면서 민간인 희생자가 속출하고, 비판 여론과 휴전 촉구 움직임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하마스의 잔혹성을 부각하는 여론전 차원으로 보인다. 최근 군사적으로도 인지전(cognitive warfare, 표적의 행동에 행위자의 의도를 반영시키되 행위자의 개입을 인식하지 못하게 하거나 인식하더라도 신경 쓰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라는 개념이 주목받고 있는데, 이스라엘은 이미 지난 몇 년 간 하마스와의 분쟁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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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ST 국가미래전략기술 정책연구소 조상근 교수는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 기반의 인지전, 즉 사실관계를 제시해 상대방의 주장을 뒤엎는 것에 해당한다"며 "이 경우 이스라엘이 곤혹을 치르고 있기 때문에 하마스의 행태를 하나하나 공개하는 것으로, 주변 국가들이 하마스를 쉽게 지원하지 못하게 하고 하마스를 고립시키려는 의도도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조 교수는 "하마스가 가자지구의 모든 팔레스타인인을 대표하는 것은 아닌데, 이스라엘은 소개 권고에도 작전지역에 머물고 있는 모든 팔레스타인인은 하마스라고 판단하고 군사활동을 한다"며 "하마스의 원죄가 있긴 하지만, 이런 일이 계속되면 해당 세력의 잘못을 보기보다는 근거지의 주민까지 무장세력과 동일시해서 '싹쓸이(하마스 제거 뒤 이스라엘 정착촌 확대, 팔레스타인 거주지역 축소 등)'를 할 수 있다는 전례를 남길 수 있다"고 비판했다.

"알 시파 병원 파괴하지 않을 것…240명 인질 석방 전엔 휴전 없다"

질문 답하는 주한 이스라엘 대사. 연합뉴스

토르 대사는 가자지구에서 가장 큰 병원이자, 하마스의 지하 벙커가 위치한 것으로 알려진 알 시파 병원을 공격할 계획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하마스가 알 시파 병원 지하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증거를 갖고 있고, 병원은 국제법에 어긋나는 목표물이 아니다. 하지만 무조건 공격한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며 "병원에 도달할 것이지만 병원을 파괴한다는 의미는 아니며, 병원 내부 하마스와 관련 시설의 무력화를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UN에 따르면 알 시파 병원에는 현재 5만명의 민간인이 머물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최근 알 시파 병원 아래에 하마스 지휘소 한 곳과 지하시설 4곳이 숨겨져 있다며 이를 표시한 위성사진과 그래픽을 공개한 바 있다. 다만 하마스 측은 이를 부인하며 이스라엘군이 병원을 폭격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관련해서 휴전 계획에 대한 질문에 토르 대사는 "이스라엘 정부는 240명의 인질 석방 없이는 휴전에 동의할 수 없고, 이는 (벤야민 네타냐후) 총리가 발언한 내용이기도 하다"며 "현재 국제적십자사에서도 인질들을 찾지 못하고 있으며 심지어 이들의 명단조차 받지 못한 상황이다. 우리가 추산하기로는 이 가운데 30명은 어린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시신들의 숫자를 추산해 봤고, 실종자들의 이름을 알고 있으며 이들이 인질로 잡혀 있다고 추산하지만 이를 (정확하게) 확인한 것은 아니다"며 "이와 관련해 진전이 있을 때까지 전투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엘리 코헨) 외무장관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점령하지 않을 것이라고 분명하게 밝혔다"고도 덧붙였다.

한편 토르 대사는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발생한 민간인 희생자들에 대해서는 '의도적인 공격이 아니었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모든 목표는 합법적으로 군사적 목표물로 선정되었다"며 "다만 도시 지역에서 전쟁을 하고 있기에 민간인 피해가 발생하는 것이며, 그렇기에 가자지구 민간인들에게 대피하라고 한 것"이라는 논리다.

그러면서 팔레스타인 문제의 근본적 해결보다 하마스가 일정 선을 넘으면 강도 높게 공격하고 군사적 역량을 저하시켜 일정 기간 평정을 추구하는 이른바 '잔디깎기' 전략이 오히려 사태를 크게 만들었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팔레스타인에서 죽은 이들의 숫자를 정확히 알기 어렵다. 알 아흘리 병원에서의 오폭에 대해서도 팔레스타인 보건부는 500명이 사망했다고 밝혔지만 실제로는 50명이 사망했다"고도 말했다.

앞서 지난 17일(현지시간) 이 병원 주차장에서 폭발이 일어나 사상자가 속출했다. 하마스 측은 이 폭발이 이스라엘의 공습 때문이라고 주장하지만, 미국 등은 폭발 흔적이 지나치게 작다는 점 등을 근거로 들어 팔레스타인 측의 로켓이 폭발했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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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르 대사는 "우리가 하마스가 죽인 사람들과 같은 수의 하마스 대원을 죽이려는 것은 아니다"며 "하마스는 약 4만명의 병력을 거느리고 있고, 지도부는 자신들이 한 일에 대해 자랑스러워하기 때문에 이러한 영상들을 인터넷에 올린 것"이라며 전쟁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또 "2005년 아리엘 샤론 총리는 가자지구 자치가 성공적으로 이뤄지면 서안지구 자치권도 확대하려 계획했지만, 하마스의 가자지구 점령으로 국제공항, 국제항구, 이집트를 통과하는 철도·도로와 같은 개발계획을 위한 투자가 모두 무산됐다"며 "하마스의 가자지구 점령을 끝내야 하는 합리적인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하며, 팔레스타인 자치지구를 위한 원계획으로 돌아가려면 하마스 제거가 우선이다"고 덧붙였다.

한편 그는 '라파 국경 통행로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최선을 다하고 있고, 그렇기에 외국인들이 이 통로를 통해 가자지구를 떠날 수 있게 하는 것"이라며 "원칙적으로 (해당 통로에서의) 행위자는 하마스와 이집트이고, 이스라엘은 외국인들을 가자지구에서 나가게 하는 것을 방해하는 어떤 행동도 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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