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CBS 주최로 오페라 '라 보엠(La Bohème)'이 지난달 31일 부산 영화의전당 하늘연극장에서 '푸치니가 남긴 가장 아름다운 오페라 라 보엠'이라는 이름으로 상영되었습니다. 지금 우리식으로 말하면, 'N포세대의 사랑과 죽음', '절망하는 MZ세대의 사랑과 이별, 그리고 죽음'으로 바꾸어 부를 수 있습니다. 신관우 부산CBS 운영이사장의 인사말대로 "모든 이의 가슴마다 따스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울림과 떨림을 주는 기쁨의 선물"이 되었습니다.
푸치니(Giacomo Puccini, 1858~1924)는 베르디 이후, 이탈리아 최고 오페라 작곡가로 평가를 받습니다. 그는 토스카나주 루카에서 태어나 그곳 음악학교에서 공부했고, 이후 밀라노음악원에 입학해 폰키엘리 밑에서 공부했습니다. 17살 때,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 공연을 보고 감동을 받아 오페라 작곡가가 되길 결심했습니다.
이후 그 결심대로, 오페라를 공부하여 1893년 오페라 '마농 레스코(Manon Lescaut)'로 푸치니는 베르디를 계승할 이탈리아 작곡가라는 극찬을 받았고 국제적 명성까지 얻었습니다. 이어 1896년 '라 보엠', 1900년 '토스카(Tosca)', 1904년 '나비부인(Madama Butterfly)'을 초연해 대성공을 이뤘습니다. 푸치니의 오페라는 19세기 후반(1875~1895) 이탈리아 문학에서 시작된 베리스모(Verismo, 사실주의) 양식에 기반을 두어, 주로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다루었습니다.
하지만 이후에 쓴 오페라가 성공을 거두지 못해 중국의 전설을 바탕으로 역작 '투란도트(Turandot)'를 작곡하려고 하였으나, 불행하게도 이전에 당한 교통사고 후유증과 암이 겹쳐 오페라를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라 스칼라 극장에서는 프랑코 알파노에게 이 오페라의 마지막 부분을 작곡 의뢰하여 1926년 토스카니니 지휘로 대성공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푸치니의 3대 오페라로 불리는 '라 보엠', '토스카', '나비부인'이 자주 연주되는 편인데, 이번에 공연한 라 보엠은 말 그대로 '보헤미안들', 곧 '사회 관습에 구속되지 않고 방랑하며 자유분방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특히 '자유롭게 생활하는 집시들'을 말합니다. 오페라에는 시인 로돌포와 화가 마르첼로, 음악가 쇼나르와 철학자 콜리네 등 네 명의 보헤미안이 등장하여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대략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시인 로돌포의 추운 다락방에 촛불을 빌리러 온 이웃집 여인 미미가 등장합니다. 첫눈에 반한 이들의 사랑은 점차 무르익어 가고 함께 살지만, 가난으로 인한 삶의 고통과 미미의 병이 악화되어 드디어 두 사람은 헤어집니다. 로돌포는 미미를 사랑하지만, "나의 가난이 그녀를 시들게 하고, 사랑만으로는 그녀를 살릴 수 없다"라고 생각하며 미미를 놓아줍니다. 여기서 이 땅의 젊은이들, 곧 'N포세대'의 절망을 바라봅니다.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청년층인 '삼포세대'가 이제는 주거·결혼·인간관계 등 인생의 많은 부분을 포기한 'N포세대'가 되었습니다. 여기에 신앙까지 포기하면 한국 교회의 미래는 참으로 암담합니다.
또한 연인이었던 화가 마르첼로와 파리 '라틴 구역'의 히로인인 무제타도 이별합니다(1막~3막). 라틴 구역은 프랑스어로 '카르티에 라탱'이라는 말로, 그 유래는 중세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1150년 이 구역에 파리 대학이 설립되어 18세기까지 이 대학에서는 프랑스어와 라틴어로 수업이 이루어졌습니다. 자연스럽게 라틴어를 쓰는 동네가 되어 라틴지구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곳에는 파리의 대학과 도서관, 서점 등이 모이는 학술 장소로 진화해 왔습니다. 보헤미안들이 살기에는 적합한 곳입니다. 지금도 "sur la Rive Gauche on pense, sur la Rive Droite on dépense(강 왼쪽에는 생각, 강 오른쪽에는 낭비)"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센강을 경계로 배움의 장소와 놀이 장소가 선명하게 구별되고 있습니다. 무제타는 강 오른쪽을 열망하여 비록 마르첼로를 사랑하지만 떠납니다. 이렇게 추운 겨울날, 로돌포와 미미, 마르첼로와 무제타의 사랑은 끝을 맺습니다.
마지막 4막에서 로돌포는 자신의 다락방에서 다시 시를 쓰며 마르첼로는 그 옆에서 그림을 그립니다. 로돌포와 마르첼로는 서로 각자의 헤어진 애인들을 거리에서 보았고, 잘 지내는 것 같다면서 서로의 신경을 자극합니다. 그러나 이내 그들의 내면은 각자의 연인을 갈구함을 노래합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듯 네 명의 보헤미안들은 가난을 풍자하며 해학으로 즐기며 춥고 배고픈 다락방에서 함께 놉니다. 그때 뜻하지 않은 손님이 방문합니다.
미미가 다락방으로 찾아온 것입니다. 그리고 로돌포의 품에서 바다처럼 큰 말인 마지막 말을 로돌포에게 전합니다. "당신은 내 사랑이고, 내 일생이에요" 이렇게 사랑하던 제비(미미)가 다시 돌아왔으나, 이내 숨을 거둡니다. 그리고 오페라의 막이 내립니다.
이 오페라의 주요 아리아는 제1막, 다락방의 추위 속에서 로돌포가 미미의 손을 잡고 부르는 '그대의 찬 손(Che Gelida Manina)'과 이어 부르는 미미의 '내 이름은 미미'가 유명합니다. 실제로 로돌포의 노래는 관객의 환호를 자아냈습니다. 아름다운 사랑이 시작되는 첫 순간을 잘 노래합니다. 로돌포는 미미의 찬 손을 따뜻하게 해주며 자신을 가난하지만 부자같이 지내는 시인으로 소개합니다.
가사를 볼까요? "그대의 차디찬 손! 따뜻하게 합시다. 달이 밝은 밤이오. 밝은 달빛은 이같이 가까워지네. 잠깐만 기다리오. 간단히 말하리다. 누군가, 무엇하며, 어떻게 사나 보시오? 나는? 시인이오. 그저 가난하나 기쁘게 부자같이 지내오. 시와 사랑의 노래 꿈과 이상의 나라 아름다운 낙원 마음만은 백만장자. 빛나는 그대의 눈동자 조용한 내 마음속을 불같이 태우네. 사랑스러운 눈은 지나간 나의 꿈과 나의 애타는 마음을 어지럽게 해도 난 모르고 있다네. 아마 귀여운 사랑의 싹이 트인 까닭이오! 내 말을 들었으니, 이번엔 당신이 누구신지 말하오? 말하여 주시오?"
다음은 '내 이름은 미미(Si mi chiamano Mimi)'의 가사입니다. 교회에는 자주 가지 못하지만 조그맣고 하얀 방에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네, 제 이름은 미미입니다. 사람들은 저를 보고 미미라고 부릅니다만, 진짜 이름은 루치아예요. 제가 드릴 말씀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저는 집안과 밖에서 명주나 주단에 수를 놓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조용하고 행복한 삶입니다. 지금까지 수없는 백합과 장미를 만들어 왔습니다. 저는 그 모든 것을 좋아합니다. 이들은 교묘한 마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사랑과 봄을 말하고 꿈과 환상을 이야기합니다. 그것을 시(詩)라고 부릅니다. 교회에는 자주 가지 못하지만 기도하기를 좋아합니다. 조그맣고 하얀 방에서 말이죠. 지붕 위로는 하늘밖에 보이지 않지만, 봄이 올 때면 햇빛이 맨 먼저 저를 비춥니다. 4월이 제게 먼저 첫 입맞춤을 합니다!"
가난한 젊은이들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입니다. 개인적으로는 4막의 '안녕, 낡은 외투여(외투의 노래, Vecchia zimarra, senti)'가 가사와 함께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철학을 공부하는 콜리네가 친구 로돌프의 애인인 미미를 도우려고 자신의 외투를 전당포에 맡기며 부르는 노래로 외투와 이별하는 장면입니다. "들어라! 누더기 옷이여, 나를 떠나 너는 전당포로 가야하네. 내 감사를 받으라. 넌 권력과 돈 앞에서 허리를 굽히지 않았네. 위대한 인물들이 안식처와 같이 네 안에서 쉬었으나 기쁜 시절은 다 지나가고 너에게 작별의 인사를 해야겠네"
젊은 보헤미안들이 사랑했으나, 가난하여 이별하고, 그럼에도 다시 만났으나 영원히 헤어질 수 밖에 없는 아픔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서두에 말씀드렸지만, 우리 식으로 말하면, 'N포세대의 사랑과 죽음', '절망하는 MZ세대의 사랑과 이별, 그리고 죽음'을 보며 가을날 떨어지는 낙엽과 더불어 가슴 한 켠이 아련해집니다.
부산CBS는 저출산 위기 극복을 위해 생명돌봄운동에 힘쓰고 있습니다. 이재웅 부산CBS 대표의 인사말처럼, "저출산 극복은 부산이 앞장선다는 염원을 담아서 정성껏 공연을 준비"했기에, 이제 젊은이들(N포세대, MZ세대)이 "우리 사랑하게 해주세요!"라는 절규로, 절망 가운데 사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사랑을 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아가서의 사랑 노래'가 울려 퍼져야 할 것입니다. '라 보엠'의 오페라는 바로 그 서막을 울리는 노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