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직 임직원 땅투기 사태로 인해 한 차례 자구책을 내놨음에도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던 2021년과는 달라야 한다는 요구가 거센 가운데, 어느 정도 수위의 대책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철근누락 사태 원인 꼽히는 방만운영·전관 봐주기…원희룡 "어느 때보다 강도 높은 조치 빠른 시일 내 발표"
4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LH는 혁신안 발표를 앞두고 마무리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LH 혁신안의 최대 관심사는 구조조정과 인력구조 개편, 전관예우 근절책의 수위다.
검단 아파트 붕괴로 이어진 철근 누락 사태의 주요 원인이 방만한 인력 운영과 전관 업체에 대한 봐주기식 관리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LH 이한준 사장 조차 "조직이 이렇게 망가지고, 위계도 없고, 체계가 없고, 또 기본적인 것조차 상실했다"며 LH가 체계와 질서가 엉망인 상태라고 진단했다.
이 사장은 "건축 도면도 못 보는 토목직이 구조 견적 업무를 맡고 있다. 대표적으로 'L'(한국토지공사)과 'H'(대한주택공사)가 '이 자리네 네 자리, 이 자리는 내 자리' 이렇게 해놓은 것"이라며 공사의 전신인 토지공사와 주택공사 간 칸막이 현상 또한 스스로 문제라고 지적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LH가 도시개발과 산업단지, 주택사업을 다 끌어안고 있는게 맞는지 사업 구조조정을 검토 중"이라며 "어느 때보다 강도 높은 자기 기득권을 내려놓는 조치를 포함해 자체 혁신안을 빠른 시일 내 발표할 예정"이라고 예고했다.
고질병 해소책으로 거론되는 인력 감축…전문인력 부족에 "어느 정도는 인력 담보돼야" 반론도
방만한 조직 운영과 관련해서 가장 먼저 거론되는 것은 인력 감축이다.
그간 LH는 문제가 발생할 때 마다 인력을 축소해야 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2009년 토지공사와 주택공사의 통합이 이뤄진 후 연간 10조원에 달하는 건설 공사와 용역을 발주하면서 공공택지 조성, 주택의 건설·분양·임대·관리 등을 독점해온 탓이다.
효율성을 꾀하고 인력은 줄여야 한다는 지적에도 2016년 6637명이던 임직원 수는 오히려 2021년 9907명까지 늘어났다.
2021년 땅투기 사태 이후 임직원 20% 이상 감축안을 발표했지만 올해까지 진행된 규모는 8% 수준에 그쳤다.
때문에 현재 인원에서 10% 이상을 더 감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단순히 인원을 줄이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반박도 만만치 않다.
한성대 이용만 부동산학과 교수는 공공주택 혁신 전문가 간담회에서 "토지주택공사 직원은 8900명인데 구조설계 인원이 10명밖에 안 된다는 것은 인력배치 등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며 구조조정이 이뤄지더라도 인력을 늘려야 할 부분은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 사장도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관련 질의에 "조직축소도 중요하지만 부여된 소임과 업무에 충실할 수 있는 인력이 어느 정도는 담보돼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며 "토지주택공사가 잘못한 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그에 관한 처벌을 충실히 받겠지만 발주기관으로 역할을 충실히 하기 위해서는 일할 수 있는 인력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단순 행정인력을 줄일 수는 있겠지만, 각종 사업 관련 인력을 무턱대고 줄일 수는 없지 않겠느냐"며 "이 부분에 대해 LH가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가능성 높지 않은 조직 분리…'전관 무조건 배제'보다 관행 개선 필요성 제기
인력구조 개편과 관련해서는 조직 분리 가능성이 언급되고 있다.
토지공사와 주택공사 간 승진도 따로, 업무도 따로 진행하는 등 칸막이로 인한 폐해가 적지 않은 만큼 아예 사업을 나누는 것이 더 효율적이지 않느냐는 것이다.
다만 법인 분리 시 유리한 사업을 선점하려는 과정에서 과도한 갈등이 발생할 수 있는 데다, 과거 두 공사를 통합한 명분이 효율성이었는데, 거꾸로 효율성을 위해 다시 조직을 분리하는 것이 맞느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어 실현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전망도 나온다.
전관예우 근절 방안으로는 전관 업체와의 거래를 전면 중지 수준으로 줄이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지만 이 또한 반대 논리가 상당하다.
문제의 본질이 계약을 맺는 업체에 전관이 근무하고 있는 것 자체가 아니라, 선배라는 이유로 부당하게 대우를 하는 관행에 있다는 것이다.
본사의 지방 이전과 좋지 못한 경영평가 결과로 인한 처우 악화로 가뜩이나 주요 인력들의 불만이 적지 않은 상태에서 능력있는 전문가임에도 전관이라는 이유만으로 은퇴 후에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 맞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입찰·공고 중인 계약건을 일방 취소하고, 낙찰자가 나온 사업을 중단시킨 조치에 대해서는 이미 위법성 논란이 크게 불거졌다.
권한 이첩·기능 이관 등 구체적 부분 개선 가능성…"변화 못할 경우 강제 조정작업 이뤄질 수도"
때문에 일각에서는 LH 혁신안이 기존에 나왔던 방안들처럼 구조조정 등 큰 주제를 다루기보다는 이미 거론된 권한 분산 등 보다 구체적인 부분을 다루는 동시에 이행을 담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같은 방안으로는 민간참여형 사업 확대를 통한 설계·시공 기능 축소와 외부 감리 선정 등 전문기관으로의 권한 이첩, 지자체에 일부 기능 이관, 전관 업체 계약 제한 방안 고도화 등이 거론되고 있다.
다만 경영진을 비롯한 임직원의 도덕적 해이도 문제 중 하나인 데다, 혁신안 발표 후 이행을 담보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할 때 외부 기관을 통한 강제 조정 방안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2021년 땅투기 사태 때도 정부와 LH가 각각 해체 수준의 혁신에 나서겠다고 공언했지만 일부 인력 감축 외에는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으며 흐지부지됐고, 올해 철근 누락 사태 이후 상임이사 전원이 사임한다고 밝혔지만 사표가 수리된 4명 중 2명은 이미 임기가 끝나 꼼수라는 비난을 샀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허종식 의원이 여론조사 기관인 리서치DNA에 의뢰해 지난 달 24일부터 이틀간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남녀 8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LH 아파트 신뢰도 여론조사에서 '부정 평가'가 54.6%로 과반을 넘으면서 '긍정 평가' 21.8%보다 무려 32.8%p나 높게 나타났다.
국회 국토위 관계자는 "지난 땅투기 사태 때도 마치 LH가 분리되거나 조직이 대거 개편될 것 같은 분위기였지만 막상 달라진 것은 거의 없었다"며 "정부와 여야, 시민사회계 모두 강도 높은 혁신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에도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한다면 강제적인 조정작업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