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안나'로 올해 청룡시리즈어워즈 여우주연상 등 각종 주요 연기상을 휩쓴 배우 수지. 그렇게 지난 10여 년간 차곡차곡 쌓아 온 연기력을 제대로 인정받은 그에게 물었다. '배우 입지를 다진 만큼 연기에도 자신감이 붙었나?' 돌아온 답은 의외로 담백했다.
"스스로 많이 부족한 걸 알기에 상을 받는 날이 오지 않기를 바라기도 했어요. 늘 최선을 다해 왔고, 똑같은 마음으로 묵묵히 걸어 왔을 뿐인데 '안나'로 호평을 받으면서 오히려 당황했죠. '왜 욕을 안 먹지?'라는 생각에 만감이 교차했어요."
평단과 대중으로부터 모두 호평을 얻은 '안나'를 계기로 수지는 "이제 애써 부정하지 않고 나에 대해 조금 더 확신을 갖게 됐다"고 했다. "앞으로도 지금까지 해온 대로 나아가겠다"는 각오도 다졌다.
배우로서 더욱 단단해진 수지가 넷플릭스 시리즈 '이두나!'로 돌아왔다. 최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출연 제의가 왔을 때 (동명 원작) 웹툰부터 찾아봤다"고 말했다.
"주인공 (이)두나만의 묘한 분위기를 느꼈어요. 특이한 매력이 있다고 생각했죠. '그런 지점을 내가 연기로 잘 표현할 수 있을까'란 걱정도 들었지만 도전하고 싶었어요. 사람들은 잘 모르는 제 모습을 내보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출연을 결심했죠."
드라마 '이두나!'는 세상으로부터 숨어버린 전직 인기 아이돌 두나(수지)와 현실에 치여 로맨스는 꿈도 못 꾸는 대학생 원준(양세종)이 만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각자 세계에만 머물러 왔기에 서툴 수밖에 없는 두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고 다가서는 여정에는 관계에 관한 따뜻한 시선도 담겼다.
"소중한 시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몰랐던 순간들…"
수지는 지난 2010년 아이돌 그룹 미쓰에이 멤버로 데뷔해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다는 점에서 이두나 캐릭터와 닮았다. 그 역시 두나를 연기하는 순간순간 과거를 떠올렸다고 했다.
"짜장면을 먹던 두나가 원준에게 '황금 같은 쉬는 날이 있었는데도 뭘 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부분이 있어요. 대본에서 그 대사를 봤을 때도, 연기를 하면서도 '나 역시 그런 시간이 있었는데…'라는 생각을 했죠. 그 소중한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몰랐던 순간들…. 그런 것들이 두나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을 거예요."
극중 원준이 두나에 관한 악플을 읽는 장면에서는 "공감이 컸기에 마음도 많이 아팠다"고 회고했다.
"그때 두나 마음은 시커멓게 타들어갔을 거예요. 하지만 원준에게만큼은 '원래 그래' '다 알고 있어'라는 식으로 쿨한 척하죠. 그 모습에 마음이 몹시 아팠어요. 힘들면서도 남들에게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행동하려는 태도에 공감이 갔거든요."
수지는 평소 자신을 향한 안 좋은 반응을 봤을 때 "신경쓰지 않기 위해 애쓴다"고 했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없고, 모두가 나를 좋아하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만 수지는 "두나처럼 '숨고 싶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두나는 너무 버거워서 활동을 중단했지만, 저는 그 힘든 감정을 일로만 여기려고 애썼어요. 그렇게 지내다 보니 '도망치고 싶다' '숨고 싶다'는 감정을 느낄 새도 없었던 것 같아요. 어찌 보면 회피했던 셈이죠. 그렇게 다른 데로 시선을 분산시키는 식으로 힘든 순간들을 이겨내 온 것 같아요."
"촬영할 때 가장 행복해…배우의 길 택한 이유"
"어느 한 사람을 알아가다 보면 그 사람 인생을 보게 될 때가 있는 것 같아요. 그때 비로소 그 사람을 이해하게 되는 거겠죠. 극중 원준과 두나가 상대를 알아가는 과정에서도 자연스레 서로 이해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원준이 어느 순간 두나를 이해하듯이, 시청자들도 두나라는 사람을 더 알아갈 수 있는 지점과 마주하기를 바랐죠."
어느덧 연예계 활동 10년을 훌쩍 넘긴 수지는 과거와 비교했을 때 크게 달라진 자세로 "일과 삶을 분리하기 위해 애쓴다"는 점을 들었다.
"어릴 때는 (일과 삶이) 구분되지 않을 만큼 많은 일에 치였어요. 지금은 '일'을 단지 '일'로 보기 위해 노력하고 있죠. 결국 일과 삶을 분리하려고 애쓰는 거죠. 나만의 시간을 조금 더 잘 보내야겠다는 생각, 그것이 어릴 적 저와는 달라진 모습이에요. 지금은 스스로 알맞게 조절하면서 일하고 있기에 가능합니다. 제 시간을 챙기고, 그 시간을 잘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아요."
수지는 "촬영에 임할 때마다 배우 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며 환하게 웃었다.
"제가 느낀 감정을 연기로 표현할 때, 스태프들이 집중하거나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분주해지는 모습을 볼 때, 모두가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그 순간…. '그래서 내가 이 일을 선택했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배우 생활을 돌이켜보면 저는 촬영할 때 가장 행복했고, 지금도 그때 가장 행복하니까요."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