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제1원전 오염수 3차 방류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도쿄전력이 최근 원전 배관 청소 도중 분출된 오염수 용량을 사후 정정하며 파장이 일고 있다. 2011년 원전 사고 당시 노심용융(멜트다운) 사실을 은폐했다가 뒤늦게 드러나는 등 도쿄전력의 상습적 행태에 대한 '신뢰' 문제가 부상하면서, 한국 정부가 일본 측에 재발 방지 약속 요구과 함께 공식 항의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3일 정부와 외신 등에 따르면 도쿄전력은 전날부터 오염수 3차 방류 시작, 삼중수소 등 안전 기준치는 특별한 이상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방류에선 1‧2차 방류 때와 마찬가지로 다핵종제거설비(ALPS)를 통과한 오염수 7800톤가량을 약 17일 동안 바다로 내보낼 예정이다.
지난달 25일 3차 방류를 앞두고 원전 내부 배관 등 청소 작업 과정에선 오염수가 분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알프스 배관을 청소하던 작업원 5명은 탱크에 흘려보내는 호스가 빠지면서 방사성 물질 포함 액체를 뒤집어썼다. 이들 중 2명은 신체 표면 방사선량이 높아 인근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후 지난달 28일 퇴원했다.
문제는 도쿄전력이 사고 발생 직후엔 세정제와 오염수가 섞인 분출액 용량을 약 100㎖라고 발표했다가, 며칠 후엔 발표한 용량의 수십배라고 사후 정정했다는 점이다. 도쿄전력 측은 사고 현장 인부들 증언과 추가 조사를 통해 분출액 용량을 수정했다는 입장이지만, 일각에선 일본 언론의 추궁 끝에 뒤늦게 사실을 털어놨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NRA)는 지난 1일 기자회견을 통해 도쿄전력에 구체적인 사고 경위와 작업자 피폭량을 보고하라고 요구했다. NRA는 2011년 동일본대지진을 계기로 이듬해인 2012년에 만든 원전 규제 기관이다. 도쿄전력은 배관 청소를 맡은 하청업체와 계약에서 작업반장 상주를 요구했지만 정작 현장에선 규칙이 지켜지지 않았다며 추가 조사를 약속한 상태다.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해 원전 사고가 발생한 이후 도쿄전력의 은폐 또는 보고 정정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1년 3월 원전 사고 후 약 2개월 간 도쿄전력은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며 노심용융을 부인했는데, 초기에 '노심용융'이 아닌 '노심손상'이라고 설명한 것은 잘못된 것이었다고 2016년에야 뒤늦게 인정했다.
2019년에는 국제 사회에 처리를 거친 오염수 안에 삼중수소만 남는다고 했다가, 세슘 등 방사성 물질이 기준 이상 포함된 걸 알면서도 숨긴 사실이 내부 보고서를 통해 드러났다. 지난 8월 오염수 방류를 앞두고 후쿠시마 지역 어민들과의 약속도 지키지 않았다. 지난 2015년 8월 도쿄전력은 오염수 방류에 대해 '관계자(어민들)의 이해 없이 어떤 처분도 하지 않는다'라고 문서로 약속했지만 결과적으로 방류를 강행했다.
후쿠시마 원전의 소유와 운영을 맡고 있는 도쿄전력이 올 여름부터 시작한 오염수 방류를 총괄하고 있다. 과거 사례를 감안하면 도쿄전력의 은폐 또는 사후 정정 행태가 상습적인 수준이기 때문에 이번 정정 논란과 관련해 우리 정부가 일본 및 도쿄전력 측에 공식 항의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사고가 발생하지 않으면 좋겠지만 발생 자체를 막을 수 없는 것도 사실"이라면서도 "도쿄전력이 사후 정정으로 혼선을 주게 되면 우리 입장에선 신뢰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일본 쪽에 이런 일이 없도록 적정 수준 항의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를 관할하는 정부 관계자들은 즉답을 피하고 있다.
박성훈 해양수산부 차관은 지난 2일 정례 브리핑에서 "정보 공유 메커니즘은 원활히 작동되고 있기 때문에 (도쿄전력이 제공한) 소스의 문제"라며 "정보 공유를 진행하고 있는 그 채널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말했다. 다만 재발 방지를 위해 도쿄전력이나 일본 측에 항의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선 "국민 여러분이 걱정하시는 일이 없도록 정부에서 대응할 것"이라고만 했다.
오염수 방류를 앞두고 지난 7월 한‧일 정상회담에 이어 8월 한‧미‧일 정상회담 등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보고서를 근거로 사실상 일본 측의 손을 들어주면서 외교적 운신의 폭이 좁아진 형국이다. 이 때문에 정부 내에서도 오염수 문제에 대해선 일본 측에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전전긍긍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정부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정상 간에 한미일 동맹 결속에 무게를 실으면서 그립을 강하게 잡는 바람에 다른 목소리를 내기 힘든 상황"이라고 했다. 다른 정부 관계자는 "하필 방류 개시 불과 두 달 만에 이런 사고가 터져서 난감하다"며 "일본에 대한 불신이 커지게 되면 우리 측 모니터링 요원의 현지 상주 문제 등 모든 게 논란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