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태임> 한 주를 팩트체크로 정리하는 모아모아 팩트체크입니다. 오늘도 팩트체크 전문미디어 뉴스톱 선정수 기자와 함께 합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중대재해처벌법에 떨고 있는 소규모 사업장> 이런 주제를 가지고 오셨네요. 내년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이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적용된다는데 그것과 관련이 있나보군요.
◆선정수>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30일 국무회의에서 고위공직자는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살아있는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외국인노동자 차별을 금지하는 ILO협약 탈퇴, 김영란법 선물 한도 증액 등을 언급해 논란을 빚고 있는데요.
중대재해처벌법과 관련된 언급도 있었습니다. "50인 이하 소규모 사업장에서는 내년부터 적용되는 중대재해처벌법을 두려워하는 목소리"가 나온다는 언급입니다. 정확히는 50인 이하가 아니고 50인 미만 사업장인데요. 내년 1월27일부터는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됩니다. 2021년 중대재해법이 제정될 때 소규모사업장은 법 적용 준비를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3년의 적용유예기간이 부여됐는데 이게 내년 1월26일로 끝이나면서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중대재해법이 적용되는 것이죠.
◇조태임> 내년 1월27일부터는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도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된다는 거군요. 그럼 모든 사업장에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되는 건가요?
◆선정수> 그건 아닙니다. 상시근로자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이 법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사실 5인 미만 사업장으로 적용대상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노동계를 중심으로 거세게 분출되고 있고요.
관련 법안도 발의돼 국회에 계류 중입니다. 그런데 중대재해법을 제정할 당시에 소규모 사업장에도 법을 적용하게 되면 법 시행에 대비하지 못한 소규모 사업장 사업주가 처벌될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로 50인 미만 사업장은 3년의 적용유예를 주고, 5인 미만 사업장은 아예 적용대상에서 제외시켰던 겁니다.
◇조태임> 중대재해 발생 실태부터 좀 알아보면 좋을 것 같은데요. 소규모 사업장에서 중대재해가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선정수> 정부와 여당은 대통령의 언급처럼 소규모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유예를 연장하겠다는 움직임을 나타내고 있는데요.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는 굉장히 반발하고 있죠.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들은 정부-여당의 이런 움직임에 공동대응하고 나섰습니다. 105개 단체들은 <생명안전 후퇴 및 중대재해처벌법 개악 저지 공동행동>이라는 연대체를 결성해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안 반대 서명운동 등 활동에 나섰습니다. 단체들은 "중대재해의 80%가 발생하는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지난 10년간 사망한 노동자는 1만2045명에 달한다"고 주장합니다.
◇조태임> 중대재해의 80%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한다. 노동계의 주장은 사실인가요?
◆선정수> 고용노동부의 <산업재해 현황>자료를 살펴봤는데요. 최근 10년(2013~2022) 동안 발생한 산재 사망자수는 1만9850명입니다.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한 사망자수는 시민단체들이 언급한 1만2045명이 맞구요. 전체 산재 사망자수 가운데 50인 미만 사업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60.7%입니다.
◇조태임> 60.7%도 굉장히 높은 비중이긴 한데요. 왜 노동계는 중대재해 80%가 50인 미만에서 발생한다고 말했을까요?
◆선정수> 고용노동부가 2021년 2월 발표한 <사망재해 발생 등 예방조치의무 위반사업장 명단 공표> 자료에 나온 내용입니다. 2020년 중대재해 발생 사업장 공표대상은 모두 671곳이었는데요. 이 가운데 50인 미만 사업장이 539곳으로 80.3%를 차지했습니다. 이 자료를 인용해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중대재해의 80%가 발생한다고 언급한 겁니다. 그러나 중대재해 발생 사업장 공표대상은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 제2조제1항에 따라 중대재해(△사망자 1명 이상 △3개월 이상 부상자 동시 2명 이상 △부상자 또는 직업성 질병자 동시 10명 이상)가 발생한 사업장 가운데 연간 재해율이 규모별 같은 업종의 평균 재해율 이상인 사업장을 대상으로 합니다. 그러니 중대재해 전반을 반영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조태임> 숫자가 좀 부정확하긴 하지만 그래도 중대재해의 대다수가 소규모 사업장에서 발생하고 있는 게 맞군요. 그렇다면 법도 강하게 적용하고 지원도 하고 그래야 소규모 사업장에서 중대재해를 줄일 수 있는 것 아닐까요? 그런데 왜 정부 여당은 소규모 사업장 적용 유예를 연장하자고 하는 겁니까?
◆선정수> 재계, 특히 중소기업계는 소규모 사업장이 아직 준비가 안 된 상태라 예정대로 법을 시행하면 애꿎은 범법자만 양산하게 된다고 주장합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업장에서 노동자가 1명 이상 사망한 산재사고가 발생하거나 동일한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하거나, 동일한 유해요인으로 급성 중독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에 3명 이상 발생할 경우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가 형사처벌을 받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재계는 적용 유예가 끝나면 소규모 사업장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사업주들이 처벌 대상이 되는 걸 우려하고 있습니다.
◇조태임> 그래서 소규모 사업장이 떨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군요. 그런데 노동계 주장은 좀 다른 것 같아요.
◆선정수> 노동계와 시민단체들은 "경영계의 왜곡된 실태조사, 보수 경제지의 여론 호도를 등에 업고 여당은 개악 법안을 발의하고, 노동부 장관은 연기 검토를 운운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올해 6월 중소기업중앙회의 조사에서는 대상 사업장의 59.2%가 법 준수 준비가 되어있고, 전혀 그렇지 않다는 3.2%에 불과했다. 작년 10월 갤럽 조사에서도 중소기업의 80%가 중대재해처벌법에 찬성했다"고 밝혔습니다.
◇조태임> 준비가 안 됐다고 하는 내용과는 조금 결이 다른데요. 좀 자세히 알아보죠.
◆선정수> 그래서 확인해봤습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 5월 펴낸 <중소기업 중대재해처벌법 평가 및 안전관리 실태조사 결과보고서>를 살펴보면요.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 재직 응답자 250명을 대상으로 '2024년 1월 27일까지 중대재해처벌법 준수 가능 여부'를 물었습니다. 준수가 가능하다는 응답이 59.2%(매우 그렇다 6.8%, 어느 정도 그렇다 52.4%)로 나타났습니다. 준수가 불가능하다는 응답은 40.8%(전혀 그렇지 않다 3.2%, 별로 그렇지 않다 37.6%)로 적었습니다.
그런데 중기중앙회는 이 보고서를 토대로 6월8일 보도자료를 발표합니다. 제목은 <50인 미만 중소기업 40.8%, 중대재해처벌법 준수 '불가능'> 이었습니다. 가능하다는 응답이 59.2%였고, '전혀 그렇지 않다'는 응답은 3.2%에 그쳤음에도 소규모 사업장이 중대재해처벌법 준수가 불가능한 것처럼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왜곡이죠.
◇조태임> 중소기업 80%가 중대재해처벌법에 찬성했다는 갤럽조사는 어떤가요?
◆선정수> 민간 공익법인인 경청이 한국갤럽에 의뢰해 지난해 9월에 발표한 조사가 있습니다. 연 매출 1억원 이상 중소기업 1천개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인데요. 응답 중소기업 가운데 79.4%가 중대재해처벌법에 '찬성한다'(매우 찬성 6.6%, 찬성하는 편 72.8%)고 밝혔습니다. '반대한다'는 의견은 20.3%(매우 반대 1.9%, 반대하는 편 18.4%)였습니다.
◇조태임> 그런데 최근 재계가 내놓는 조사 결과는 조금 다른 것 같아요?
◆선정수>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 8월 실시한 조사가 있는데요. 50인 미만 사업장 892곳을 조사한 결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준비하지 못했다'는 응답이 80.0%(아무 준비도 못했다 29.7%, 상당 부분 준비하지 못했다 50.3%)에 이르렀습니다. 또한 응답자의 85.9%가 중대재해처벌법 유예기간 연장이 필요하다고 응답했습니다.
이 조사를 인용해 국민의힘과 정부가 50인미만 사업장 유예기간 연장의 근거로 삼고 있습니다.
국민의힘 임의자 의원은 9월 7일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안을 대표발의 했습니다.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 3년으로 정한 법 적용 유예기간을 5년으로 늘리는 내용입니다. 임 의원은 "중소기업은 복잡하고 상이한 법 내용에 따른 준비 부족, 만성적인 인력난 속에 안전 및 보건관리 전문인력 확보 및 비용 문제, 기업의 대표가 대부분의 업무를 책임지고 있어 상황에 따라 폐업 가능성 등 중대재해처벌법을 준수하는 데 어려운 환경에 놓여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밝혔습니다.
◇조태임> 정부는 어떤 입장입니까?
◆선정수> 정부도 50인 미만 사업장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유예 연장에 힘을 싣는 모양새입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1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노동부 국정감사에서 "국회 법 개정 논의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겠지만 노사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본 결과 신중히 고민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어 고민하고 있다"며 "83만 사업장 가운데 예산과 인력 준비가 부족한 40만 사업장에 지원을 많이 했지만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조태임> 한번 두번 미루다보면 계속 미루게 되고 결국 소규모 사업장은 중대재해의 사각지대가 된다는 게 노동계의 입장이잖아요. 우리나라는 산재 후진국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고 있는데요. 추세는 어떻습니까?
◆선정수> 2022년 산재 사망자수는 2223명이었습니다. 1991년 2299명이었던 이 숫자는 2003년 2923명까지 치솟은 이후 소폭 하락했지만 줄곧 2000명을 웃돌고 있습니다. 2015년 이후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산재사고로 숨진 노동자는 해마다 늘어나고 있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2021년 1359명이었던 50인 미만 사업장 사망자 수는 지난해엔 1372명으로 늘었습니다. 준비할 시간이 도대체 얼마나 필요한 걸까요? 계속 유예만 하면 소규모 사업장에서 일어나는 중대재해가 줄어들까요? 기업과 재계, 정부는 산재사망사고에 대한 책임있는 자세를 보여줘야 합니다.
◇조태임>지금까지 모아모아 팩트체크 뉴스톱 선정수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