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업무 부담을 호소하며 우울증 진단도 받았던 직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에 대해 법원이 업무상 재해로 판단했다.
근로복지공단은 해당 직원이 평소 완벽주의 성격이 강해서 일어난 일이라고 유족 급여 지급을 거부했지만, 법원은 "업무 스트레스로 인해 우울증이 발병, 악화된 것"이라고 판단했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박정대 부장판사)는 숨진 제약회사 직원 A씨의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 취소' 소송에서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대형 제약회사에서 수의사로 근무하던 A씨는 2020년 과장으로 승진했지만 평소 경험하지 못했던 애완용 제품 관련 업무를 맡게 됐다. 기존에는 수산, 양봉, 축산 관련 업무를 담당했지만 승진 이후에는 애완동물 사료 신제품 개발 업무 등에 투입됐다.
유족은 이후부터 A씨가 '자존감이 자꾸 떨어진다', '요즘 왜 이렇게 우울하지', '업무를 자꾸 놓치는 부분이 생긴다' 등의 말을 했다고 한다. A씨는 자존감 관련 책을 구입해 읽기도 했고, 수면 시간도 하루 2~3시간에 불과했다고 한다. 이어 2020년 말 병원 진료에서 우울증 진단을 받기도 했다.
결국 A씨는 그해 12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족은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해 사망했다며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지만, 공단은 "회사 업무로 인한 압박보다는 업무에 대한 A씨의 완벽주의 성향 때문"이라며 지급을 거부하자 소송을 냈다.
이에 법원은 A씨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로 인해 A씨에게 우울증이 발병 및 악화됐고, 그로 인해 망인이 정상적인 인식 능력이나 행위선택 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결여되거나 현저히 저하돼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 처해 사망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추단된다"라며 "이 사건에서 A씨의 업무와 사망 사이에는 상당한 인과관계가 인정된다"라고 판단했다.
구체적으로 재판부는 "A씨는 2020년 12월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를 호소하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진료를 받았고, 이에 '우울증 점수 12점, 중간 정도의 상세불명의 우울 에피소드' 진단을 받았다"라며 "법원 감정의가 '업무상 스트레스, 피로 등이 우울증 악화의 원인 중 하나일 수는 있지만 단일한 요인은 아니다'라며 다소 조심스러운 소견을 제시했지만 그 자체로 망인의 업무상 스트레스가 하나의 원인임을 인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A씨가 평소 완벽주의적 성향을 보였다고 주장한 공단의 주장에 대해서 재판부는 "A씨의 완벽주의적 성향, 다소 소극적인 기질 등 개인적인 성향 또한 우울증의 원인 중 하나였다고 보더라도, 위와 같은 업무상 스트레스가 그와 같은 개인적 성향과 결합해 혹은 개인적 성향을 한층 더 강화시켜 우울증을 악화시켰다고 보는 것이 상당하다"라고 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