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기]피해자 잊은 '전청조 패러디'…미디어·기업 눈총

사기·사기미수 혐의로 체포된 전청조 씨가 31일 오후 서울 송파경찰서로 압송되고 있다. 이날 서울동부지법은 전 여자 펜싱 국가대표 남현희 씨 재혼 상대로 알려진 전씨에 대해 "출석 요구에 불응할 우려가 있다"며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박종민 기자
"I am ○○○."
 
전 펜싱 국가대표 남현희씨의 재혼 상대로 알려진 뒤 사기 의혹이 불거져 경찰에 체포된 전청조씨의 독특한 말투가 이른바 '밈'(meme·인터넷에서 유행해 다양한 모습으로 복제되는 언어 혹은 패러디물)이 됐고, 개인을 넘어 미디어와 기업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유행에 편승한 미디어와 기업의 홍보 수단이 된 밈 속에 피해자는 사라졌다.
 
지난달 31일 경기 김포시 일대에서 사기 및 사기미수 혐의를 받는 전씨가 경찰에 붙잡혔다. 앞서 전씨는 남현희씨의 재혼 상대로 알려지며 화제를 모았으나 그의 사기 전과 이력, 아동학대 혐의 입건, 스토킹 신고 등이 보도된 데 이어 사기 혐의로 체포되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경찰이 지금까지 파악한 사기 범행 피해자 수만 15명, 피해 규모는 19억 원을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교포 출신 재벌 3세라 자신을 소개한 전씨는 카카오톡 메시지에서도 교포라는 걸 드러내기 위해 "그럼 Next time에" "I am 신뢰예요" 등 영어와 한국어가 섞인 독특한 말투를 구사했다. 언론 보도를 통해 이 같은 전씨의 말투가 알려지며 누리꾼 사이에서는 "I am 신뢰예요"를 패러디한 각종 "I am ○○○" 말투를 비롯해 영어와 한국어를 조합한 언어가 '밈'이 되어 확산하기 시작했다.

전씨의 말투가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이 되고 화제가 되자마자 일부 미디어와 기업은 전청조가 사기 행각을 벌이며 사용한 우스꽝스러운 언어를 패러디해 "I am 특가예요" "I am 기대해요" "I am 가수예요" 등으로 홍보 또는 웃음 소재로 사용하고 있다.
 
사람들의 동향을 주시하며 트렌드에 민감해야 할 미디어와 기업이 이를 빠르게, 그리고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이유는 하나다. 사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며 눈길을 끌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디어와 기업이 '관심사'라는 이유로 전씨의 이상한 말투를 방송에서, 홍보에 이용하는 과정에서 잊은 것이 있다. 바로 전씨가 사기 혐의를 받고 있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전씨의 카톡 메시지 속 언어 방식은 우스꽝스럽지만 사기를 위해 사용된 언어다. 이를 개인이 조롱하듯 밈으로 만들어 유행 중인 현상에, 개인이 아닌 미디어와 기업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편승하면서 전씨의 사기 행각으로 피해를 본 피해자들은 잊혔다.
 
사기·사기미수 혐의로 체포된 전청조 씨가 31일 오후 서울 송파경찰서로 압송되고 있다. 이날 서울동부지법은 전 여자 펜싱 국가대표 남현희 씨 재혼 상대로 알려진 전씨에 대해 "출석 요구에 불응할 우려가 있다"며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박종민 기자
사기 피해자가 엄연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개인을 넘어 공공연히 이용하는 행위 속에 피해자에 대한 고려, 아무렇지 않게 유행이란 이름으로 발화된 미디어와 기업의 언어가 자칫 '2차 가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최소한의 고민 모두 사라진 결과물이다.
 
그들이 활용한 건 그 형태가 비록 우스꽝스러울지언정, 단지 재밌는 언어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기 위한 범죄 과정에서 나온 사기 행각의 일부다. 밈으로 소비되고 있다고 해서 그 밈을 만들게 한 행위가 아무렇게나 소비되어선 안 된다는 의미다.
 
특히나 이번 밈처럼 발생을 거슬러 올라갔을 때 나오는 게 범죄 행위고, 이에 따라 피해가 발생했다는 것이 분명할 때는 더더욱 주의가 필요하다. 전씨의 사기 과정에서 그의 언어를 통해 발생한 피해자가 있다는 사실 역시 잊어선 안 될 지점이고, 그것이 미디어와 기업을 통해 공공연하게 이용될 때는 더더욱 잊지 말아야 할 지점이다.
 
웃음도, 홍보도 그 과정과 결과물이 혐오와 차별 그리고 누군가의 아픔에서 파생한 것이라면 우리는 온전히 웃고 온전히 그 홍보의 대상을 바라볼 수 있을까. 특히나 그것이 불특정 다수에게 공공연하게 전달되는 것이라면 말이다. 그렇기에 미디어와 기업이 전씨의 말투를 이용해 사람들을 웃기고, 사람들에게 알리는 행위가 대다수 사람에게 불편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웃게 만들고, 무언가를 전달하고, 알리는 것의 근간으로 들어가면 결국 '사람'이라는 단어를 피할 수 없게 된다. 누군가를 향한 혐오와 차별이 보도와 홍보 마케팅에 사용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2차 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수단이라면 경계하고 지양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최소한의 고민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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