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자의 동정' 대신 '사랑'이 담긴 한끼 식사…'연중무휴'

[배고픈 사회 함께 우는 사람들⑩]
"연중무휴, 매일 밥 한끼 드립니다" 인천 동구 '작은이들교회 급식소'
재건축·재개발 지역서 20년째 무료 급식
다치지 않고 꼭꼭 씹어 먹기·치매 노인 배려 규칙도
"우여곡절 있었지만 매일 밥을 주기 위해"…정부·지자체 지원 안 받아
"무료 급식 받는 노인들은 이웃일 뿐 불쌍한 사람이 아니다"
자원봉사자들도 60~80대 베테랑들 "나도 당신도 건강하길"

인천 동구 송림6동 작은이들교회 무료급식소 앞 골목 모습. 주영민 기자

▶ 글 싣는 순서
①새벽엔 국자 들고, 낮에는 공구함…19년째 '따뜻한 이중생활'
②"밥이 생명"…굶주린 노숙인들의 '한끼 원정'
③배고픈 이들에게 '천원의 한끼'…행복 나누는 '기운차림식당'
④"'사랑해요' 인사 건네자 눈물…그 모습에 나도 울컥"
⑤눈물의 도시락 봉사 "꼭 임종 전, 아버지 눈망울 같아서…"
⑥한 끼 원정을 떠나는 아이들…그리고 '선한영향력가게'
⑦"어르신, 도시락 왔어요"…반지하 문 열리며 "기다렸어요"
⑧먹은 만큼 베푸는 '도돌이표 배식'…"나눔이 반찬"
⑨3천원 '김치찌게' 하나뿐…"배고픈 청년은 오세요"
⑩'강자의 동정' 대신 '사랑'이 담긴 한끼 식사…'연중무휴'
(계속)


올해 3월 40대 남성의 방화로 점포 50여곳이 불에 타면서 상인 수십명이 삶의 터전을 잃은 인천 동구 송림동 현대시장. 여전히 복구 작업이 한창인 이 시장 입구를 나와 1분여 정도 걷다 보면 "날씨가 추워지는 데 일자리가 없다"는 외국인 노동자의 푸념과 손님이 없을 땐 혼자 식탁에 앉아 '고향의 봄'을 연주하는 삼계탕집 할머니의 하모니카 소리 등 다양한 '삶의 애환'을 엿들을 수 있다.
 
이 거리를 지나 동네 국회의원 지역 사무소라는 큰 간판을 끼고 골목에 들어서면 아주 이질적인 광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한쪽에서는 배고픈 이들을 위해 공짜로 밥을 주겠다는 급식소가, 다른 한쪽에는 재개발이 한창인 대규모 아파트 공사현장이 불과 30m 거리를 두고 대치하고 있다.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는 곳은 지대가 높은 탓에 1960~1970년대에는 '수도국산 달동네'라는 별칭이 붙었고, 최근까지도 '고지대 저소득 주민 집단 거주지'로 불렸다. 재개발이 시작되면서 이곳에 살던 원주민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재개발 구역에 포함되지 않은 지역에는 1~3층의 낮은 주택들이 빽빽하게 있다. 이곳에 '작은이들교회 무료급식소'가 있다.
 

재건축·재개발 지역서 20년째 무료 급식


작은이들교회 무료급식소가 처음 문을 연 건 2004년 송림동의 다른 마을에서다. 그때도 노숙인과 노인들을 위한 무료급식소와 학원에 갈 형편이 못 되는 가정의 자녀들을 위한 공부방을 운영한 게 시작이었다.
 
이후 동구 전역에서 이뤄진 재건축·재개발로 보금자리를 두 차례 옮겼고 7~8년 전부터 이곳에서 무료급식소를 운영하고 있다. 최근 이곳도 재개발로 급식소 바로 앞 골목까지만 남고 나머지는 모두 허물어졌다. 이곳 주민들이 매일 아침 가장 먼저 보는 광경은 이 아파트 건축 공사장에 높게 세워진 여러 대의 고정 크레인들이다.
 
교회가 운영하는 급식소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급식소를 찾는 이들은 65세 이상의 교회를 다니지 않는 노인들이다. 급식소를 운영하는 작은이들교회 박대관(65) 목사는 "복음(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일컫는 말)을 전하기 위해 급식소를 운영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 말 뒤에는 매주 교회를 나갈 수 있을 정도의 삶의 기반이 마련됐거나 교회 공동체의 보살핌을 받는 이들보다는 주변에서 아무도 돌보지 않는 노인들에게 밥 한끼를 대접하겠다는 속내가 담겨 있다. 별다른 소득이 없어 스스로 밥을 먹지 못하는 노인들이 의지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같은 밥집이다. 찾는 이들도 치매환자, 폐지 줍는 노인, 노숙인 등 사회적 약자들이 대부분이다.
 
작은이들 급식소가 운영하는 시간은 매일 오전 10시부터 11시까지다. 너무 이른 시간에 밥을 내놓으면 직접 밥을 지어먹을 수 없어 급식소에 의지하는 노인들의 허기가 길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주변 식당의 점심시간을 피해 영업을 방해하고 싶지 않은 이유도 있다.

작은이들교회 무료급식소 전경. 주영민

다치지 않고 꼭꼭 씹어 먹기·치매 노인 배려 규칙도


평일에는 40~50명이 주말에는 70~80명이 급식소를 찾는다. 이 급식소의 규칙은 모두 4개다. 첫째는 '절대 자리에서 다리를 바깥으로 내놓지 않는다'이다. 발에 걸려 넘어져 다치면 회복하는 데 시간이 오래걸리고 병원에 갈 엄두도 못내는 노인들이 많기 때문이다. 둘째는 '밥은 천천히 꼭꼭 씹어 먹는다'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하루 종일 허기진 상태에서 급하게 식사하다 오히려 소화를 못하는 경우를 피하기 위한 조치다.
 
셋째는 '밥과 반찬, 물은 두 번 주지 않는다'이다. 급식소 운영을 위해 불가피한 조치다. 밥 한 주걱, 반찬 한 움큼을 더 주면 너도 나도 더 달라는 노인이 많아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사람이 생길 수 있어서다. 또 치매를 앓는 노인들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이기도 하다. 방금 밥을 먹고도 그 사실을 까먹은 노인들이 여러 차례 밥을 먹은 노인이 병원에 실려가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대신 식사량이 많은 노인을 위해 급식 전에 미리 밥을 많이 먹는지 묻고 배식한다.
 
마지막으로 '남은 음식은 절대 포장해 가져가지 않는다'이다. 치매 노인들이 허기 달래기 위해 남은 음식을 몰래 집으로 가져갔다가 가져간 사실을 잊고 있다가 한참 뒤 먹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 있어서다. 실제 몰래 음식을 집으로 가져갔다가 며칠간 방치된 반찬을 보고 자식들이 "상한 음식을 배식했다"며 급식소에 찾아와 항의하는 일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고 한다.
 

"우여곡절 있었지만 매일 밥을 주기 위해"…정부·지자체 지원 안 받아


작은이들교회 급식소는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없이 박대관 목사 개인 비용으로 운영한다. 정부의 지원을 받으면 주말이나 공휴일에 급식을 줄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급식소의 밥과 국은 박 목사가, 반찬은 부인 김순복(63)씨가 요리한다. 매일 최소 40~50명분의 밥과 국, 반찬을 요리하기 위한 비용 지출이 만만치 않다. 이 때문에 박 목사는 한때 매일 폐지를 주워 고물상에 팔았고, 부인은 동네 시장과 마트를 돌며 가장 싼 식재료를 찾아 나서는 게 일과가 됐다.
 
이 급식소는 연중무휴 운영한다. 설·추석같은 명절은 물론이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여파로 방역 수칙에 따라 대면 급식이 어려웠을 때에도 박 목사와 자원봉사자들이 KF-94 마스크를 두겹 세겹 쓰면서 급식을 이어갔다. 코로나19 시기에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무료 급식을 배식하는 곳으로 여러 매체를 통해 알려지기도 했다.
 
코로나19 시기에는 정부의 방역수칙에 따라 두 달여가량 급식소 운영을 중단했는데 "방역수칙 지기키다가 배고파 죽을 것 같다"는 노인들의 호소에 운영을 재개했고 이후 다시 급식소 문을 닫는 일은 없었다.
 
박 목사에게 급식소 운영은 개인사보다 중요했다. 어머니와 장인·장모가 세상을 떠나 장례를 치를 때에도, 세 자녀들이 결혼을 할 때도 급식소 문은 닫히지 않았다. 박 목사는 "급식소를 운영하면서 자식·부모 노릇을 제대로 못 한 것 같아 미안했다"고 말했다. 심지어 교통사고로 허리를 다쳐 병원 신세를 져야 하는 상황에서도 초인적인 의지로 급식소의 문을 열기도 했다.

인천 동구 송림동 작은이들교회 무료급식소를 운영하는 박대관(65) 목사. 주영민 기자

"무료 급식 받는 노인들은 이웃일 뿐 불쌍한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고 급식소 운영을 주변에서 환영한 것도 아니었다. 재개발로 더 이상 교회와 급식소, 공부방을 운영할 수 없어 지금의 동네로 터전을 옮긴 뒤 급식소가 문을 열었을 때 이웃들의 반발이 거셌다. '주변 식당 매출에 타격이 크다', '무료급식소가 들어서면 주변 집값이 떨어진다'는 등 다양한 불만이 쏟아져 나왔다. 박 목사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한 첫 행동은 매일 새벽 동네 거리를 청소하는 것이었다. 식당 주인들에게는 급식소를 찾는 이들이 돈을 내고 식사를 할 수 형편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며 설득했다.
 
투박하지만 꾸준한 박 목사의 설득은 결국 이웃들도 도움을 보태는 결과를 냈다. 이웃 통닭구이집의 지원으로 3개월가량 닭다리를 반찬으로 내놓은 적도 있었다.
 
20년 가까이 자비로 무료급식소를 운영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돕겠다며 급식소를 찾아 왔지만 대부분 돌려 보냈다. 한 번은 이 급식소를 소개하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시청한 취업준비생이 200만원을 송금하겠다고 연락했지만 "뜻은 고맙지만 지금은 자신을 위해 돈을 쓰라"며 정중히 거절했다.
 
또 한 번은 대학생 2~3명이 급식소 관련 보도를 접한 뒤 감동을 받았다며 돈을 보냈지만 거절하자 직접 급식소를 찾아와 왜 안 받느냐며 따진 적도 있었다. "젊은이들의 미래를 위해 쓰라"며 재차 돌려보냈지만 "제발 받아달라"며 돈 대신 식재료들을 한가득 구입해 급식소로 가져와 어쩔 수 없이 받았다고 한다. 박 목사는 "급식소를 운영하면서 주변에 폐를 끼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면서 "그들의 의지와 마음도 이해하지만 식재료를 받은 뒤 마음이 편치 않았다"고 말했다.
 
박 목사의 대답 뒤에는 무료급식이 "불쌍한 이들을 향한 강자의 동정심"이 되질 않길 바라는 속내가 감춰져 있다. 그들이 비록 지금은 늙고 힘없어 밥 한끼 제대로 해먹지 못하는 처지가 됐지만 그들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동정이 아니라 사랑과 존중이길 바란다는 의미다. 급식소로 향하는 많은 지원과 기부를 뿌리치는 주된 이유다.
 
박 목사가 이러한 기준을 갖게 된 건 그가 지낸 삶과 무관하지 않다. 10남매로 태어났지만 초등학교 입학 전 아버지를 여읜 박 목사는 홀어머니 슬하에서 청년기까지 밥과 국, 반찬이 차려진 제대로 된 밥상을 받아 본 기억이 많지 않았다. 자기가 벌어 자기가 공부하고 밥을 지어 먹어야 하는 청소년기를 보냈다.
 
그의 서재 한 벽면을 채운 종교서적도 젊은 시절 책을 사기 위해 며칠을 굶고 돈을 모아 마련한 것들이었다. 직감적으로 허기를 채울 때 자신에게 닿은 손길이 동정인지 존중인지를 알았다. 타인은 쉽게 구분하지 못하지만 당사자만 알 수 있는 마음의 상처까지 끌어안을 때 비로소 봉사와 나눔이 공동체에 뿌리내릴 수 있다는 게 박 목사의 신념이다. 타지역에서 보내온 돈 백만원보다 이웃주민들이 내놓는 쌀 한되가 박 목사에게 더 필요한 지원인 것이다.

지난 27일 인천 동구 송림동 '작은이들교회 무료급식소' 내부 모습. 주영민 기자

자원봉사자들도 60~80대 베테랑들 "나도 당신도 건강하길"


작은이들교회 급식소의 자원봉사자들도 대부분 지역 이웃들이다. 연령대도 60~80대로 짧게는 수년째 길게는 20년째 이 급식소를 찾는다. 밥을 주는 사람도 먹는 사람도 당사자들인 셈이다. 자원봉사자들 모두 기초·광역자치단체장 또는 장관급 표창을 받지 않은 사람들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자원봉사계의 베테랑들이다. 자원봉사 관련 단체장을 지낸 사람도 있다. 이들은 모두 "나도 급식소를 찾는 노인들도 매일 건강히 밥 먹는 모습을 볼 수 있길 바란다"고 입을 모았다.
 
20년째 작은이들교회 급식소에서 배식을 하는 자원봉사자 맹세영(74·여)씨는 "처음에는 집 주변에 무료급식소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봉사한다는 생각으로 나왔는데 지금은 박 목사에 대한 존경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더 크고 건강이 허락하는 한 급식소에 나오고 싶다"면서 "매일 급식소에 나오는 어르신들이 하루라도 나오지 않으면 걱정이 앞서고 제발 그들이 내일도 모래도 건강히 나오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고 말했다.
 
맹씨는 급식소를 다녀간 사람들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느냐는 질문에 "기본적으로 급식소를 나와서 밥을 먹는 게 이곳의 규칙이었는데 유일하게 집으로 매일 밥을 가져다 준 노인이 있다"면서 "몸을 거의 움직이지 못해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분이었고, 나중에는 건강이 악화돼 집을 나와 요양병원으로 옮겨진 뒤 세상을 떠나셨는데 그분이 생전에 내 손을 꽉 잡으면서 너무 고마웠다고 수차례 말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대답했다.
 
지난 27일 작은이들 급식소에는 밥과 시래기 된장국, 제육볶음, 콩나물무침, 김치가 식판에 올라왔다. 식사를 마친 노인들의 손에는 라면 5봉지와 콜라 2병이 쥐어졌다. 지역 주민들의 기부로 마련한 식품들을 나눠준 것이다. 고령의 노인에게 라면과 콜라를 나눠준다는 게 생소하다는 질문에 "급식소에서 아무리 밥을 많이 먹어도 허기가 지는 건 어쩔 수 없어 라면으로나마 허기를 해결할 수 있고, 콜라는 노인들 사이에서 소화제보다 더 많이 쓰이는 소화제"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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