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잊지 않은 '이태원'…작년보다 부쩍 줄어든 인파
서울시 열린 데이터 광장에 따르면, 이날 오후 11시 50분 기준 1만에서 1만2천여 명 가량의 시민들이 이태원을 찾았다. 지난해 토요일 오후 10시를 기준으로 5만 8000명이 모인 것과 비교했을 때, 5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 셈이다.
핼러윈 데이를 맞아 코스튬을 차려 입은 사람도 드물었다. 시민들은 대부분 평상복 차림으로 일행들과 삼삼오오 모여 걸었다. 흔하게 볼 수 있었던 핼러윈 기념 장식들도 가게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다.
남자친구와 함께 이곳을 찾은 시민 박모(23)씨는 "집 앞이니까 이태원에 자주 오는데, 오늘은 거의 경찰이 20%인 것 같다"면서 "사람이 전혀 없는 편이다. 신나지도 않고 파티 분위기도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이태원역 1번 출구 인근에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공간이 마련됐다. 시민들은 종종 이 공간에 잠시 멈춰 고개를 숙이고 애도를 표했다.
추모공간을 둘러보던 시민 노모(24)씨 또한 "벌써 1년이 지났구나 싶다"면서 "이런 일이 있었는데 (내가) 이렇게 이태원에 오니까 뭔가 좀 죄송한 마음도 들고, 경찰들이 많은 걸 보니까 참사 때 생각이 나서 마음이 좀 적적하다"고 말했다.
공간을 관리하던 이태원참사시민대책회의 피해자권리위원회 활동가 박한희(38)씨는 "작년이나 평소 핼러윈 때 인파 정도까지는 안되는 것 같다"면서도 "추모객분들은 많이 오시는 것 같고, 내일이 1주기다 보니 오신 분들도 있다"고 말했다.
박씨는 "사실 핼러윈을 즐기는 것과 추모가 분리된다고 생각하진 않고, 추모하면서 충분히 핼러윈을 즐길 수 있다. 유가족들도 최근에 (이태원이) 핼러윈을 오히려 더 즐기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고 얘기했다"면서 "참사가 핼러윈 때문에 일어난 게 아니라 국가의 관리 부실 때문에 일어난 것이기 때문"이라면서 부쩍 줄어든 인파에 아쉬움을 표했다.
상인들도 더는 '핼러윈 특수'를 누릴 수 없다며 울상이었다. 외진 골목에서 술집을 운영하는 상인 A씨는 "작년 핼러윈에 비하면 10분의 1도 안오는 것 같다"면서 "평소 주말보다도 사람이 없고,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고 한숨을 쉬었다.
A씨는 "경찰이 이렇게 많은데, 누가 와서 술을 먹으려고 즐기려고 생각을 하겠냐"면서 "이렇게까지 사람이 심각하게 없을 줄은 몰랐다"면서 "(매출이 너무 줄어) 버티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다"고 토로했다. A씨의 술집은 한 테이블을 제외하고는 모두 텅 비어 한적한 분위기가 맴돌았다.
상인 B씨 또한 "핼러윈 때 보통 다른 때에 비해 못해도 매출이 두 배 이상 뛰는 날인데, 오늘은 평소 주말에 비해 반의 반도 안 된다"면서 "어차피 사람 많이 안 몰리고 조용히 지나갈 것 같았는데, 이렇게까지 분위기가 안 좋을지는 몰랐다"고 넋두리를 늘어놨다.
한 라운지바 직원 노윤성(22)씨도 "내가 일해서 아는데 평소보다 사람이 없다"면서 "망하는 가게가 많다. 이제 이번 핼러윈을 끝으로 장사를 접겠다고 하는 데가 많다"고 말했다.
홍대로 몰린 핼러윈 인파…각양각색 코스튬에 축제 분위기 물씬
반면 서울 마포구 홍대거리(레드로드)는 축제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추모객이 몰린 이태원과 달리 게임이나 영화 속 캐릭터의 코스튬을 하고 핼러윈을 즐기는 시민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홍대거리를 가득 메운 인파 속에서 게임이나 영화 속 캐릭터를 쏙 빼닮은 코스튬 복장들이 눈에 띄었다. 일 년만에 돌아온 '코스튜머(customer)'들은 지나가는 시민들과 함께 사진을 찍으며 흥을 돋구었다.
게임 캐릭터 코스튬 복장을 한 김모씨는 "좋게 봐주는 분들도 있고 '굳이 올해 축제를 해야 하느냐'라고 안 좋은 시선으로 보는 분들도 있다"며 "불상사만 일어나지 않고 (핼러윈을) 안전하고 재밌게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귀신, 유령 등 분장을 한 시민들은 지나가는 시민들을 놀래키는 장난을 치기도 했다. 놀란 시민들은 핼러윈 축제인 만큼 즐겁게 웃으며 가던 길을 멈추고 이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엄마와 함께 홍대를 찾은 이민정(8)양은 "분장한 사람들이 무서웠다"며 "사람들이 핼러윈 파티를 잘 즐기고 갔으면 좋겠다"고 수줍게 웃었다.
일러스트레이터 황지은(25)씨는 "오후 7시에 메이크업을 열자마자 사람들이 주변으로 몰렸다"며 "제가 잘 할 수 있는 일이고, 사람들의 얼굴에 메이크업을 해주는 일이 재밌다"며 미소를 띄었다.
지자체·경찰·소방 등 관계당국 '총력 대응'…사건사고 없이 마무리
이태원과 홍대 모두 경찰, 소방 등 관계당국이 인파 및 안전 관리 '총력 대응'에 나선 모습이었다.참사가 발생했던 골목 인근의 이태원역 1번출구에서부터 경찰들이 여럿 배치돼 시민들의 통행을 안내하고 있었다. 경찰은 이태원의 유명 술집들이 몰려있는 메인도로인 세계음식문화거리에 안전 펜스를 길다랗게 설치해 일방통행을 유도했다.
통행을 통제하던 경찰들은 "시민 여러분들 우측통행 부탁드리겠습니다"라고 수차례 확성기로 안내 멘트를 내보냈다. 시민들은 일제히 경찰의 안내에 따라 질서정연하게 움직였다.
행사 전부터 '풍선효과'로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된 홍대거리에도 삼엄한 경계 태세가 유지됐다.
이에 더해 이태원 참사 당시 골목을 좁힌 불법 설치물 등도 올해 홍대거리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경사로 주변으로 빽빽이 들어선 가게마다 입간판, 매대 등을 매장 안으로 들여놓은 모습이 눈에 띄었다.
덕분에 우려했던 인파밀집사고를 비롯해 큰 사건사고 없이 핼러윈 기간 첫 주말 저녁이 지나갔다.
용산구청과 경찰, 소방, 교통공사 등은 전날까지 다음달 1일까지 3575명을 이태원 주변에 배치해 안전을 확보하고 통행을 관리하는 등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다.
서울 마포구 상상마당 인근에는 마포경찰서와 마포소방서, 마포구청 관계자 등이 함께 합동상황실을 설치해 만일의 사태를 대비했다. 다음달 1일까지 마포구청 직원 6백명, 경찰 1750명, 소방 3백명 등이 홍대 주변에 배치된다.
남은 핼러윈 기간에도 경찰은 '고밀집 위험 골목길' 12개소(마포 곱창골목·포차골목 등)와 다중운집 예상지역 16곳(건대 맛의거리·강남역 등)을 선정해 경계강화 비상근무에 나선다. 경찰 관계자는 "서울시·구청, 소방, 서울교통공사, 유관단체 등과 유기적으로 협업해 핼러윈 데이가 안전하게 종료되도록 대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