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초 결혼을 앞두고 있는 직장인 박모(32)씨는 지난달 결혼자금 약 1000만원을 대출받기 위해 은행 문을 두드렸다. 시중은행에서 대출을 거절당한 박 씨는 인터넷은행과 저축은행까지 문의했지만 원하는만큼 대출을 해주는 곳은 없었다. 중소기업 인턴에서 정규직이 된지 갓 1년이 된 박씨의 신용점수는 700점대였다. 박 씨는 "이렇게 대출이 어려울 줄 몰랐다. 마지막 보루로 생각했던 저축은행 다섯 곳에서도 연달아 거절당하고 나니 허탈한 마음만 들었다"고 털어놨다.
서민에 대한 대출 문턱이 높아지고 있다. 시중은행은 물론이고 제2금융권에서도 대출을 받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최근 가계대출이 급증하자 금융당국이 은행들에게 관리를 요구하고 나선 영향이다. 여기에 연체율과 조달금리가 급등하자 서민들의 급전 창구인 저축은행과 대부업체도 다시 대출 문을 걸어 잠그고 있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지난 8월말 기준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에서 신용대출을 받은 고객의 평균 신용점수는 925.13점이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4.29점 높아진 수치다. 지난달 5대 은행 개인 신용대출 규모 역시 107조3409억원으로 8월보다 1조762억원 줄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정부의 지침이 가계대출을 관리하라는 것이어서 은행으로서는 대출 영업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려운 분위기"라면서 "연체율 등 건전성 지표도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대출 문턱이 불가피하게 높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저축은행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특히 서민을 대상으로 한 중금리대출 규모의 감소세가 크다. 저축은행의 상반기 중금리대출 규모는 3조 3437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6조 1317억원)의 절반 수준이다. 저축은행의 경우 신용점수 하위 50%인 중저신용자들을 위한 민간 중금리 대출을 주로 취급한다.
은행채 등으로 자금조달이 가능한 시중은행과 달리 저축은행들은 조달창구가 수신으로 한정돼 있다. 따라서 수신 금리가 올라가면 조달금리도 따라 오른다. 거기다 금리 상한선 규제가 있어 대출금리를 올리기가 힘들다.
저축은행업계 관계자는 "대손충당금을 늘리는 등 대비는 하고 있지만 연체율이 계속 높아지고 최근 경제 악화로 차주들의 대출 상환 능력이 악화했다"며 "건전성 관리도 당연히 필요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신규 신용대출이 나가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카드론이나 현금서비스 문턱도 높아지고 있다. 카드론 규모는 지난 8월 35조 8635억원에서 지난달 35조 5951억원으로 약 3000억원 줄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서민들이 불법 사금융에 내몰릴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한국대부금융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불법 사채 피해 건수는 6712건, 평균 대출액은 382만원, 평균 금리는 414%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대전에서 작은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서 모(28)씨는 "코로나로 이미 받을 수 있는 대출을 다 받았다"며 "신용대출을 좀 받으려 했는데 저축은행에서도 거절당해 사채를 알아본 적이 있다. 이자가 감당이 안되어 포기했지만 현재 상황이 계속되면 별다른 수가 있겠나 싶다. 대출금을 갚을 수 없어 폐업도 쉽지 않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금융당국은 서민금융 공급 현황을 점검하며 주의를 기울이는 모양새다. 자금줄이 막힌 서민들이 불법 사금융에 노출될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다. 하지만 금융회사들은 정부의 우려를 이해하면서도 서민금융 확대와 건전성 관리,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는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서민층을 위한 정책금융을 확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다만 가계부채가 급증한 상황에서 건전성과 서민지원을 동시에 진행하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다 세밀한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