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맹이' 빠진 연금개혁 로드맵…보험료 '연령별 차등인상'에 방점

재정계산위案 등 특정모수 채택 안해…"국회 특위 구조개혁 논의 고려"
"OECD 반토막 보험료율↑불가피"…수급개시 임박할수록 高인상률 적용
'더 늦게 받기'는 소득공백 감안해 유보…"고령자 계속고용여건 성숙돼야"
보장강화측 주장한 소득대체율 인상·국고지원엔 부정적…"實소득 확대 방점"
해외투자 비중 28년까지 60%로 대폭 늘려 수익률 1%p↑…소진시점 늦춘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인기 없는 일이지만, 꼭 해내야 한다"고 강조했던 연금개혁 로드맵에 해당하는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이 나왔다. 급속한 고령화로 위협받는 연기금의 수명을 연장할 수 있도록 보험료를 연령별로 '차등 인상'하겠다는 게 골자다. 현 정부의 국정과제인 '기초연금 단계인상(40만원)'은 거듭 약속하면서도, 소득대체율 인상에 대해서는 다소 부정적 입장을 드러냈다.
 
예상대로 '재정안정화'에 초점을 맞춘 가운데 구체적으로 '얼마나 내고 얼마를 받을지' 등 모수개혁 관련 수치는 아예 빠졌다. 정부가 특정 단일안(案)을 내놓지 않으리란 건 전문가 기구의 '총의'라 할 수 있는 연금재정계산위원회의 최종 시나리오만 24개였다는 점에서 일정 예상된 부분이다.
 
다만, 역대 국민연금 개혁시도가 좌초한 이유가 '복수안'을 좁히지 못한 것이란 점을 상기하면 또다시 힘든 결정은 차후로 미룬 게 아니냐는 지적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 논의 등 총망라됐지만…결국 '얼마나 내고, 받을지' 빠져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제5차 국민연금 종합 운영계획 발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보건복지부는 27일 오전 이기일 제1차관 주재(위원장)로 열린 제3차 국민연금심의위원회에서 이같은 내용을 담은 5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안)을 심의·확정했다. 올 3월 재정추계전문위원회가 내놓은 장기 연금재정 전망(2023~2093년), 복지부 산하 연금재정계산위원회의 자문안 등을 토대로 향후 제도 개선 방향을 정리한 정부의 공식적 개혁안이 도출된 것이다.
 
정부는 국민연금을 '지속가능한 제도'로 개편하는 데 최우선 목적을 뒀다. 운영안에는 △노후소득보장 강화 △세대 형평 및 국민 신뢰 제고 △재정안정화 △기금운용 개선 △다층노후소득보장 정립 등 5개 분야의 총 15개 과제가 망라됐다.
 
지금까지 전문가 그룹에서 이어진 논의를 비롯해 정부가 24차례에 걸쳐 진행한 이해관계자 FGI(집단 심층면접·Focus Group Interview) 결과가 총정리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다만 당초 대다수 국민이 기대했던 모수(母數) 관련 개혁 구상은 누락됐다. 재정계산위가 지난 19일 제출한 최종 보고서를 통해 제안한 24가지 방안 중 특정안을 선택하지 않은 것이다.
 
앞서 재정계산위는 현 9%인 보험료율을 12%·15%·18%로 올리고, 올해 기준 63세인 수급개시연령을 66세·67세·68세로 늦추는 안과 함께 연기금 운용 수익률을 0.5%p 또는 1%p씩 올리는 안을 조합한 시나리오들을 제시한 바 있다. 소득대체율(생애 평균 소득 대비 연금 수령액 비율) 인상안도 뒤늦게 일부 포함됐지만, 위원회가 무게를 둔 방향은 아니었다.
 
일각에선 정부가 보험료율을 15%로 인상하고 '받는 연령'을 68세로 상향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결과적으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복지부는 단일안을 내지 못한 이유에 대해 "의견이 다양한 만큼 특정안을 제시하기보다 공론화 과정을 통해 폭넓은 논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방향성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적어도 그 방향성만큼은 '구체적으로' 제시하고자 했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스란 복지부 연금정책관은 "가장 큰 이유는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에서 '구조개혁'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구체적 수치를 내게 되면 특위 논의에 제약이 생길 수도 있다. 이번에는 지금까지 논의된 자료를 충실히 제공하는 게 정부의 역할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또 '충분한 논의'와 '사회적 합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보험료율·소득대체율의 '미래 수치'는 국회 특위의 공론화를 거쳐 결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보험료율, 연령 따라 '차등인상'…'받는 돈'↑엔 부정적

 
이해관계자별 FGI 주요 현장 의견. 보건복지부 제공

정부가 가장 역점을 둔 부분은 역시 '내는 돈'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과 비교할 때 소득대체율은 유사(한국 42.5%, OECD 평균 42.2%)한 반면 보험료율은 '반토막' 수준(한국 9%, OECD 평균 18.2%)이란 점을 들어 "지속가능성 제고를 위해 점진적인 보험료율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단, 세대별 형평을 고려해 인상속도는 연령별로 '차등화'해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스란 연금정책관은 "보험료 인상률이 정해지면 기존 가입자 중 (수급이 더 임박한) 40~50대의 경우 보험료 인상폭을 더 높게 하고, 20~30대는 인상폭을 (상대적으로) 낮춰 오랜 기간에 걸쳐 목표 인상률에 도달하게 설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가령, 보험료율을 5%p 올린다고 가정했을 때 중장년층은 매년 1%p씩 더 내게 한다면 젊은층은 15~20년에 걸쳐 총 인상분(分)을 순차적으로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이스란 정책관은 "보험료율 인상률이 일단 결정돼야 이 구조를 설계할 수 있다"며 "논리만 이해해 달라"고 설명했다.

급격한 인구변화를 감안해 '적정 보험료율'을 검토하고, 전체 사회 보험료 및 조세부담 등도 함께 고려해 국민부담 수준을 논의하겠다는 방침이다.

 
재정추계전문위원회 제공

4차 추계 시보다 앞당겨진 기금소진(2057년→2055년 예상)을 늦추고자 유력하게 거론된 '수급개시연령 추가 조정'은 유보됐다. 이미 2033년까지 65세 상향이 예정돼있단 점에서 은퇴 후 '소득공백'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정부는 법정 정년인 '60세'도 잘 지켜지지 않는 상황에서 "고령자 계속고용 여건이 성숙된 이후" 논의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기초연금·퇴직연금 등과의 정합성 제고 방안도 고민하겠다고 했다.

그간 최대 쟁점이 됐던 소득대체율 인상 여부는 "다층노후소득보장 틀 속에서 구조개혁 논의와 연계해 검토하겠다"고만 했다.
 
이는 지난달 초 공청회 당시 '재정안정론 편향' 논란으로 파행을 빚은 재정계산위가 최종 보고서에 추가 반영한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정부는 "명목소득대체율 상향 시, 지속가능성 제고를 위해서는 보험료율 인상이 불가피하므로, 미래세대의 부담 등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재정계산위 사퇴 후 전날 소득대체율을 2025년 현 40%에서 50%로 일시 인상하자고 제언한 남찬섭 동아대 교수·주은선 경기대 교수 등의 입장과는 뚜렷이 구별된다.

국고 지원보다 '實소득' 확대…해외투자 대폭 늘려 기금수익 1%p↑


보건복지부 제공

다만, 정부는 수급자의 실질소득 제고 등 기존 재원기반을 확충하는 데 주력하겠다는 계획이다. 지역가입자 보험료 지원대상은 '납부재개자'에서 '저소득 지역가입자'로 넓히고, 지원기간도 12개월보다 확대하기로 했다.
 
고용보험·산재보험 사례를 참조해 배달라이더 같은 플랫폼노동자 등 '특수형태근로종사자'를 사업장 가입자로 단계 전환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소득 파악이 용이한 대상부터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나머지 직종은 지역가입자 보험료 지원을 확대한다.
 
아울러 국민, 특히 연금 수급에 대한 불안이 높은 청년세대의 불안을 해소할 수 있도록 '지급보장 명문화'를 추진한다. 현행 법령상으로도 급여 지급은 반드시 보장되지만, 국가의 보장 책임을 보다 명확하게 규정하겠다는 취지다.
 
정부는 "다만, 지급보장 명문화로 현행 제도가 유지될 수 있다는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연금개혁과 동시에 법률 개정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출산크레딧 지원대상 확대(현행 둘째 출생아→첫째, 12개월씩 가입기간 인정) △군복무 크레딧 인정기간 확대(현 6개월→전체 복무기간, 복무종료 직후 크레딧 인정) 등도 병행한다.

 
복지부 제공

보장강화론 측에서 주장해온 '국고 지원'에 대해선 재차 선을 그었다. 기초연금이 전액 국고·지방비로 부담되는 현실과 국민연금 보험료율이 저조한 상황 등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외 눈에 띄는 대목은 '기금수익률 1%p 이상 추가제고'다. 정부는 기금운용 수익률이 오르면 보험료 인상부담을 낮출 수 있단 점을 강조해왔다. 수익률이 1%p 높아지면 기금 소진을 5년 더 늦출 수 있다는 재정추계전문위원회의 분석도 근거가 됐다.
 
정부는 이같은 목표 달성을 위해 해외투자 비중을 2028년까지 '약 60%'로 확대하기로 했다. 내년부터는 대체투자 분야 인력도 대폭 확충한다.
 
사모대출 등 중위험·중수익의 성격을 지닌 신규 자산군도 유연화·다변화하겠다고 밝혔다. 성과급 체계 개편 등을 통해 전문운용인력의 보수수준을 합리화하고, 전략적 자산배분 권한은 기금운용본부로 이관한다.
 
일각에서는 해외·대체투자 비중이 늘수록 환율 등에 의한 '리스크'는 오히려 더 커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스란 정책관은 이에 대해 "그 부분이 영향을 주는 것은 맞다"면서도 "국민연금의 투자기간은 굉장히 길기 때문에 변동이 있다 하더라도 단기적 변동(에 그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종합운영안은 30일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31일 국회에 제출된다. 복지부는 연금특위와 협의해 향후 공론화에 필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지원단을 운영하는 등 국회 논의를 뒷받침하겠다고 강조했다.
 
조규홍 복지장관은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은 연금개혁을 위한 본격적 논의의 시작점이 될 것"이라며 "연금특위와 협력해 구체적인 개혁안을 만들어 가겠다. 국회에서 사회적 논의가 충실하게 논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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