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3대(노동·교육·연금) 개혁'으로 꼽아 온 연금개혁의 방향성이 담긴 정부안(案)이 27일 윤곽을 드러낸다.
보건복지부는 이날 오전 이기일 제1차관 주재로 2023년도 제3차 국민연금심의위원회를 열고 '제5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안)'을 심의한다. 올 1월 말 시산결과가 발표된 5차 연금재정추계(2023~2093)를 바탕으로 복지부 산하 연금재정계산위원회 등 전문가 논의와 여론 등이 반영된 개혁 로드맵이라 할 수 있다.
위원회 안건으로 다뤄진 연금종합운영안의 구체적 내용은 오후에 조규홍 복지장관이 브리핑을 통해 직접 설명할 예정이다. 운영계획은 최종적으로 오는 30일 국무회의를 거쳐 의결된다.
복지부는 국민연금법에 따라, 지난 2003년부터 5년마다 장기적 관점에서 재정건전성을 평가하는 추계치를 도출하고 이를 토대로 제도 개선방향 등을 담은 종합운영계획을 당해 10월 말까지 국회에 제출해 왔다. 지난해 7월 출범한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연금특위) 및 전문가 기구의 시계가 모두 이달 말을 향하고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의무가입이 원칙인 국민연금 개혁에서 '당사자'인 국민들의 관심이 가장 컸던 부분은 앞으로 얼마나 내고(보험료율), 받을 수 있을지(소득대체율) 등 이른바 모수(母數)개혁이다.
그간 연금특위 민간자문위원회를 포함한 전문가 진영은 연기금 유지를 최우선으로 한 '재정안정론'과 소득대체율(생애 평균 소득 대비 연금 수령액 비율) 인상을 통해 노인빈곤을 완화하자는 '소득보장 강화론'으로 양분돼 대립했다.
정부의 무게중심은 전자에 다소 쏠려 있다는 게 중론이다. 재정추계전문위원회가 올 초 밝힌 추계결과도 2018년 4차 추계 당시보다 수지적자 전환이 1년(2042년→2041년), 기금 고갈시점이 2년 더 앞당겨졌다(2057년→2055년)는 데 방점이 찍혔다.
급속한 저출산·고령화로 '내는 사람'(생산가능인구)은 줄고 '받는 사람'(수급대상)은 늘면서 미래세대의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졌다.
실제로 현재까지 보험료율의 인상 필요성에는 상당 부분 공감대가 모인 상황이다.
정부안의 밑그림이 된 연금재정계산위원회의 최종 보고서에는 현 9%인 보험료율 12%·15%·18%로 올리는 방안이 담겼다. 올해 기준 63세인 수급개시연령을 66세나 67세·68세로 각각 늦추자는 안도 함께 제시됐다.
'더 많이' 내고(보험료율 인상) '더 늦게' 받는(수급개시연령 상향) 방향성이 유력하다는 분석이 나왔던 배경이다.
소득대체율 인상 시나리오를 완전 배제한 재정계산위 보고서 초안에 반발해, 전날 대안보고서를 내놓은 보장강화론 측 전문가들도 '단계적으로' 보험료율을 올려야 한다는 데엔 이견이 없었다.
재정계산위원에서 자진사퇴한 남찬섭 동아대 교수와 주은선 경기대 교수는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연금행동) 기자회견에서 '2025년 소득대체율 50%로 일시인상'을 골자로 한 자체 보고서를 발표했다. 두 전문가는 공적연금인 국민연금의 특성상 소득보장 기능의 제고가 없는 연금개혁은 큰 의미가 없다고 주장해 왔다
그럼에도 해당 보고서 역시 2025년부터 현행 9%인 보험료율을 매년 0.5%p씩 올려 2030년 12%를 만든 뒤 2033년까지 13%에 도달케 하자는 방안을 담고 있다.
적립금을 키우고 유지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님을 전제하면서도, 2070년대까지는 인구 고령화 충격에 대비하는 '완충 지대'로서 기금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게 연금행동의 판단이다.
하지만 재정계산위의 시나리오만 '24개'에 달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구체적 수치를 적시한 방안을 명확하게 제시하기는 어려울 거란 관측도 나온다.
재정계산위는 '더 받는' 방안까지 아우른 최종보고서에서 "적립기금 소진에 대한 국민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재정계산 기간 중 적립기금이 유지될 수 있는 방안이 존재하고, 이를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금 20세인 가입자의 평균수명 기간 동안 연기금이 고갈돼선 안 된다는 것이다.
결국 단일안을 내지 않았다는 세간의 비판을 의식한 듯 "각 대안별 장·단점을 국민이 판단하기에 필요한 정보를 충분하게 제시하는 것이 재정계산 보고서가 해야 할 일로 판단했다"면서도 '행간'을 읽으면 위원회의 메시지는 분명하다는 여지도 남겼다.
즉 '재정 안정'이 급선무라 보면서도 판단의 공은 넘긴 셈인데,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으로 민감한 의제에 대한 책임을 회피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정부안과 대비를 이룰 것으로 기대하고 대안보고서를 공개한 연금행동 측은 "구체적 수치가 제시되지 않는다면 황당할 것 같다"며 당혹감을 나타냈다.
그동안 복지부는 △재정의 지속가능성 △세대 간 형평성 △적정한 노후소득 보장 등 '3가지 목표'가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원론적 입장을 밝혀 왔다.
다만, 정부안 발표가 임박한 지난 25일 종합국정감사에서는 기금의 지속가능성을 좀 더 강조하는 듯한 발언도 나왔다.
조규홍 장관은 소득대체율 인상을 전제로 '연금재정 안정화를 위해선 보험료 인상 외 (정부)재정 투입도 필요하지 않느냐'는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의 질의에 "소득대체율 인상과 관련해서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좀 다른 것 같다"고 답변했다.
정 의원이 '국고 지원' 등과 관련한 입장을 재차 묻자 "보험료율 조정(인상)이 우선돼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조 장관은 연금 고갈 우려에 대한 책임을 국민에게 전가해선 안 된다는 정 의원 지적에 "재정투입 필요성에 대해서는 저희도 느끼고 있고, 그 방안을 찾고 있다"면서도 "일단 중요한 것은 가입기간 확대 등 실질적인 소득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해 드리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금재정을 위해 정부 곳간을 직접적으로 열기보다는, 평균 가입기간을 늘리고 수입이 불규칙한 지역가입자 보험료 납부 지원을 확대하는 등 기존 기반을 넓혀 재정건전성을 높이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